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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May 01. 2017

토요일 부녀의 아침

유부초밥 이야기

나와 아내의 생활패턴은 정반대다. 나는 아침형 인간, 아내는 저녁형 인간에 속한다. 자연스레 주말 아침식사와 딸아이와 노는 것은 나의 몫이다. 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배가 고프다고 보챘다.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던 나는 벌떡 일어났다.


어~ 아빠가 밥 줄게


아침을 준비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반쯤 접힌 포장제품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어머니가 만들고 남겨둔 유부 피. 그래 오늘 아침은 유부초밥이다.


요즘은 유부초밥 만들기 세트를 사면 유부 피, 초밥 소스, 야채볶음까지 다 들어있다. 그래서 밥만 있으면 전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인스턴트 야채볶음 대신에 미리 다져둔 볶음밥용 재료를 쓰기로 했다. 아무래도 집에서 만든 재료가 더 영양가 높고 맛이 좋으니깐.


밥을 열심히 비비고 있는데, 딸이 다가왔다.

"아빠, 내가 도와줄게."

"음.. TV 보고 있으면 아빠가 맛있게 만들어줄게."

"아니야, 내가 도와줄래. 비벼줄게"

"그래, 그럼 한 번만 딱 해줘."


호기심도 많고, 적극적인 딸은 직접 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냥 뒀다간 쏟아버릴 수도 있으니깐 한번 정도 시켜주고 달래는 것이 좋다. 막무가내로 거절하면 기분이 상하니깐 적당한 타협이 좋다. 다행히 숟가락질을 몇 번 하고는 나에게 넘겨줬다.

 

"잘했어. 아빠 도와줘서 고마워."


유부 피가 이렇게 작았던가? 생각보다 밥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억지로 넣어보려고 했더니 유부 피가 찢어져버렸다. 에잇, 망가진 초밥은 입에 쏙 넣어버렸다.


"어, 아빠 나도 먹을래. 그래 너도 하나 먹어봐."


우리 부녀는 유부초밥을 만드는 족족히 먹어치웠다. 그냥 거실로 재료를 가지고 가서  TV를 보면서 사이좋게 하나씩 만들거니 먹거니 하면서 사이좋게 시간을 보냈다. 딸이 잘 먹어서 기분이 좋다. 부모들이 자녀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느낌이 이런 거겠지? 요리를 잘하거나 좋아하지는 않지만, 딸이 잘 먹어주고 원한다면 배워볼 생각이다.




학창 시절에 소풍 갈 때 어머니가 싸주시던 유부초밥이 생각난다. 김밥을 싸오는 친구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많았다. 친구들에게 나눠주다 보면 내 입에 들어가는 초밥은 1~2개뿐이었다. 유부초밥을 싸가서 김밥으로 배를 채우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친구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어깨가 으쓱했다.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은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기분 좋게 하는 그런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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