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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Feb 23. 2018

직장 다니는 목적

땅위를 걷는 사람

신입사원 때 멘토였던 선배가 이번 달까지 일하고 퇴사한다. 같은 부서 동료 한 명도 2월까지만 일하기로 했다.

알고 지내던 누군가의 퇴사는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퇴사하고 뭐한데?"

"집에 돈이 많나 봐"

"이직하는 회사는 괜찮데?"

"부럽다"


퇴사에 대한 숱한 말들이 오고 간다. 진실도 있지만 과장된 소문도 있다. 퇴사하는 당사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거리일 뿐이다.



매번 함께하는 이가 퇴사하면
마음이 복잡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이직, 학업, 사업, 가사, 육아, 정년, 신병, 사망..


사유가 다양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왜 흔들렸을까?

서운함, 부러움, 슬픔, 걱정스러움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서 마음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나의 미래도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일까?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

'언제까지 다니는 게 좋을까?'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여기에 대한 정답을 시원히 알려줬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모른다. 각자의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최선인지 알 수 없다.

 

그저 확실한 것은 내 선택이 옳을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뿐이다.

설령 그 선택이 최선이 아닌 들 또 어떠하리?



직장 다니는 목적은 다양하다.

나는 일단 돈이다. 밥벌이.생계를 위해서 다닌다.

그 안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만족감을 느끼고, 안도감도 느낀다.

오늘도 월급이 나오겠지. 그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겠지.


함께 일하는 선배 중에 (상속받을) 재산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사람이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직장에 다니는 거지?

돈이 필요해서 일하는 게 아닌 사람이다.

명함이 필요하고, 번듯하게 나갈 곳이 필요한 사람이다.


"선배는 왜 직장 다녀요?"

"그럼 그냥 놀까?"

"사업을 하거나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 수도 있잖아요."

"그게 쉬운 게 아니야. 그리고 내가 백수면 부모님이 좋아하겠냐?"


선배는 몇 대가 먹고 살 걱정이 없겠지만, 나름대로 직장 다니는 이유가 있다.

물론 눈치 안 보고 성과 따위는 콧방귀를 뀐다.




가끔 마음 편히 직장 다니는 꿈을
꾸기도 한다.

눈치 보지 않는 사람, 적당히 일해도 되는 사람, 경쟁으로 너덜너덜해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


직장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성취감과 보람만 느끼면 좋으련만..

힘들고,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이 더 많다.

불합리한 경험도 한다.


그렇게 어렵게 돈을 번다.

생계를 유지한다. 가족을 부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번 더 잘해야 하고, 많이 해야 하고, 경쟁해야 한다. 퇴사하고 나가는 순간까지 그럴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맞물려 있다.

잘게 나누어진 하부조직이 잘해야 상위 조직이 잘할 수 있는 구조. 끊임없이 경쟁시키고 이긴 자에게 승진과 인센티브로 동기부여를 한다. 경쟁에서 지는 자는 도태되고 교체된다. 조직에 들어오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서있다. 계속해서 대체되고 살아남은 자들은 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끝까지 올라가더라도 결국 퇴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사원이든 사장이든 월급쟁이인 건 매한가지.


언제 퇴사하는가?

어디까지 올라가는가?

얼마나 돈을 받고 퇴사하는가?


그게 다를 뿐인데..

그걸 알면서도 아등바등거리고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회사는 돈보다 무서운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회사의 경쟁 시스템'이 맞물려서 돌아간다. 어느 정도 규모와 시스템이 갖추어지면 오너는 의사결정만 한다. 대부분의 불합리함과 부조리는 오너가 아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임직원에 의해 생겨난다.


얼마 전 깨어 있는 오너가 모든 의전을 없애고, 일정 공개와 수행원 없이 혼자 출장을 다녔다. 그런데 오너에게 인정받고 싶은 임원이 오너 일정을 모르니 예상 장소에 8시간씩 직원들을 대기시켜서 표 안 나게 의전을 지시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하라는 것도 하고, 하지 말라는 것도 한다. 내가 인정받아야 하니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불합리해도 되고 그 과정에서 부하직원이 도태되어도 된다. 그러고는 변명한다.


"나도 살아야지(인정받아야지)"

"내가 도태될 수는 없지 않나?"

"시키는 데로 해야지(시키지 않는 것도 해야지)"

"나 잘 되려고 그러냐? 다 같이 잘되라고 하는 거야"




결국은 인정받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조금 편해질 수 있는데 그게 잘 안된다. 나부터 그게 안된다. 조금은 완급조절이 필요한 시기일까?


'잘해야 돼'

'잘하고 있어'

'믿고 있다'

'실망시키지 마'


이런 부담스러운 말보다 어쩌면 이런 말이 더 필요한지 모른다.


'못해도 괜찮아'

'하는 데까지 하자'

'그럴 수도 있지'

'고생했다'


※ 인생은 마라톤이라면서 왜 매 순간 전력질주를 시키는 겁니까? 어쩌면 러닝머신 위를 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눌러주는 속도에 맞춰서 죽어라 뛰다가 지치면 선수를 바꾸고 또 바꾸고..


제 페이스대로 땅위를 걷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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