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의 시간은 싸움의 대상이다. 학업 성과를 위해 분초를 쪼개가며 자신을 몰아붙인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 시간은 곧 돈이다. 통장에 꼽히는 월급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시간을 맞 바꾼다. 퇴직하고 나면 느닷없이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 뚝하고 코 앞에 떨어진다. 이 시간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쓰여야 한다.
힌두교에서는 50세부터를 임서기(林棲期)라 하여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홀로 숲 속으로 들어가는 시기라고 한다. 도연명은 세상과의 연이 다했으니 빈 수레를 끌고 나가 무엇을 구하겠느냐며 고향으로 돌아가 술 단지를 끌어안았다. 정약용은 19년의 귀양살이 끝에 남양주 조안의 5대 조가 살던 집으로 돌아가 심경(心經)을 읽으며 마음공부에 매진했다고 한다.
이분들에 따른다면 나는 이미 고향 숲 속에 들어가 마음공부하고 있어야 한다. 사실 그럴 생각이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은' 생각 말이다. 모 방송사 자연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중장년 남자들에게 시청률 1위인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닌듯하다.
'그림 같은 그 집'의 이름도 이미 지어 놓았다. '운종재(雲從齋)'이다. 역경(易經)에 나오는 운종룡풍종호(雲從龍風從虎)의 앞 글자를 따온 말이다. 용 가는 데 구름 가고 범 가는 데 바람 간다는 뜻이다.
다만, 조건을 맞추기가 아직은 여의치 않다. 일단은 압도적인 뷰(view)가 필수적인데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몇 년 전부터 몰아닥친 귀촌 열풍 탓에 시골 빈집이라도 값이 말도 안 되게 올랐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가는 문제는 더욱 고려할 바가 많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그래서 우선은 그런 삶을 지향하는 러스틱 라이프부터 시작하려 한다.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코리아 2022'에서 '러스틱 라이프'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다. '시골 특유의'를 뜻하는 러스틱(Rustic)과 라이프(Life)의 합성어로 도시를 떠나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고 편안함을 즐기는 시골 지향형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한다. 그냥 떠나기, 잠시 머무르기, 자리 잡기, 둥지 틀기의 네 가지 형태로 구현된다고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러스틱 라이프는 궁극적으로는 운종재에서 둥지 틀고 하고 싶은 일들이지만, 일단은 일주일 살기 또는 한 달 살기 같은 잠시 머무르기를 통해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시작해 보기로 한다. 러스틱 라이프는 나의 네 번째 버킷리스트이다.
서울 따릉이를 한 번 타보기로 했다. 앱을 깔고 회원 가입을 하고 결제를 한 다음 가까운 대여소로 향했다. 그런데 자전거가 한 대도 없었다. 가까운 다른 대여소에 가보니 다행히 고장 난 한 대를 포함해서 두 대가 남아 있었다. 서울 따릉이가 이렇게 인기가 좋은지 몰랐다. 자전거도 차(車)이기 때문에 자동차처럼 차도로 주행해야 한다. 문제는 안전을 담보할 수가 없었다. 차로 한쪽으로 조심조심 타 보았지만 아슬아슬하고 위험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반납하고 말았다. 역시 서울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무리이다. 모처럼 자전거를 타보려던 계획이 보기 좋게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 역시 자전거는 시골길에서 타야 제맛이지.
'리틀 포레스트'는 임순례 감독의 2018년 작품으로 팔색조의 연기력을 뽐낸 김태리와 내공이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문소리가 출연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혜원(김태리 분)이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장면이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 있고 황금빛이 물결치는 시골길을 그녀는 긴 머리와 옷자락을 휘날리며 달린다.
볕이 좋은 봄날, 산들바람이 부는 가을날, 툭하면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다.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는 "피아노의 길이 험난하고 멀고 끝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음악이란 원래 할 수 있다거나 잘한다거나 하는 것 이전에, 덧없는 세상에 휘말리다가 단단하게 오그라든 사람의 마음을 해방시켜 주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기 위해 매일 맹연습을 한다.
나는 피아노 보다 기타의 선율 특히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연주하는 소리를 좋아한다. 여러 차례 배우려는 시도를 했으나, 두꺼운 토익 책의 관사 편만 반복해서 공부하는 것처럼 번번이 실패했다.
고교 시절 다른 과목은 전부 '수'였는데 유독 미술과 음악에는 자신이 없었다. 미술 선생님께서 나에게만 특별히 실기 재시험의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성적은 '우'였고, 음악은 각종 기호와 음표, 박자와 리듬을 이해하느라 매번 진땀을 뺐다. 다 카포, 달 세뇨, 볼타, 알 피네, 알 코다... 암호 해독 수준이다. 게다가 심각한 '똥 손'이며 동시에 여러 가지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손가락은 그렇다 치고 어깨는 또 왜 그렇게 아픈지. 세상에는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그래도 괜찮다. 음악을 하거나 전문적인 연주를 배우겠다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나 만 즐거우면 되지. 굳이 학원이나 교습소를 나가지 않아도 인터넷 강의를 통해 기본적인 수준까지는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어차피 결국에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기타 연주의 대가 함춘호님이 말하기를 기타는 혼자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내 나이의 감성과 정서에 맞는 7080 노래 20곡 정도만 배울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으면 가족들을 초대하여 연주회를 한 번 여는 것도 재미있겠다. 내가 밥을 사주고 차비를 줘가며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가을바람이 소슬한 저녁이면 툇마루에 앉아 7080 노래를 연주해야지. 열심히 연습하면 아내가 60이 되는 날에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연주를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전주나 간주 부분이 없어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기타를 튕기며 노는 '베짱이 모드'는 나뿐만 아니라 오늘도 지옥철과 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많은 이들의 로망이 아닐까?
아파트 베란다 같은 집안의 사각 지역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붐이라는 보도 기사를 보았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로망이겠지만 특히 서재는 김정운 작가가 말하는 '남자의 물건'이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햇살 가득한 서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데카르트와 칸트를 사고(思考) 하는 시간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지적 충만을 준다. 비록 생산적이지는 못해도 창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나에게도 꼭 필요한 슈필라움이다.
김정운 작가는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삶이란 지극히 구체인 공간 경험의 앙상블이라며, 불안 없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공간이 도시에 있는 집이라든지 집 근처 카페라면 큰 의미가 없다.
푸른 숲이나 너른 바다가 그대로 내다보이는 넓은 창이 있고, 꽃 차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쉼의 공간이 있으며, 복잡한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살짝 벗어나 있는 곳 이어야 한다. 그런 곳에서라면 베스트셀러 작가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님들 죄송합니다. 기분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우선은 벤치마킹도 할 겸, 아쉬운 대로 '원정(遠征) 서재'라도 부지런히 찾아봐야겠다.
누가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다면 김정운, 정민, 조용헌, 김진명 같은 작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고 책을 낸다는 것은 더더욱 먼 나라 얘기로 여겨진다. 아직은 '많이 쓰다 보면 길이 보인다.'라는 어느 작가의 조언에 따라 많이 읽고 많이 쓰려 애쓰는 수준이지만 죽기 전까지는 책 3권을 쓰고 싶다.
주인공들의 운명이 만나고 갈리는 과정을 통해 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온 어떤 삶을 이야기하는 장편 소설, 나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해 가는 과정과 운종재에서 일어나는 러스틱 라이프에 관한 에세이, 그리고 캘리그래피로 직접 쓰고 압화(押花)를 붙여 넣은 아날로그 시집이다. 소설은 주인공 세 명이 각자 또는 교차하여 맞닥뜨리는 운명과 이를 감내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삶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를 그릴 것이고, 에세이는 시골 지향형 생활과 자연의 정취,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발자취를 담담하게 담을 것이다. 시집은 박범신 작가의 '구시렁구시렁 일흔'과 비슷한 콘셉트로, 중요한 것은 컴퓨터가 아닌 내 손으로 직접 쓰고 만든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등단하거나 출판사를 통하지 않아도 책을 낼 수 있는 길이 많다고 한다. 이를테면 웹 소설 같은 걸 말하는 거겠지만,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이 진짜로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매체의 작가들은 대개 의사, 변호사 같은 백그라운드가 단단한 사람들이 전문적인 주제와 자극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꾸며낸다. 즉 나 같은 사람의 글은 그저 한구석에 처박혀 구색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책을 낸다.'에 집착하지 않고 '글을 쓴다.'에 집중한다면 방법과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게다가 내가 책을 낸다면 출판비를 내주겠다는 '무모한' 투자가들도 있다. 뭐 나중에 발뺌을 한다 해도 충분히 이해한다. 다 그런 거니까.
'누구에게나 재능, 독창성, 이야깃거리와 상상력이 있으며 그 상상력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오는 것이니 낙담하거나 기죽지 말자. 사자처럼 또는 해적처럼 경솔하고 무모하게 글을 쓴다면 윌리엄 블레이크같이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다.'라는 브렌다 유랜드의 가르침에 공감하는 것일 뿐 전문 작가의 수준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정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쓰고 내가 읽으면 되지.
이혜숙 작가는 예순여덟의 나이에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라는 책을 썼다. 신내림을 거부한 무당의 운명처럼 작가의 꿈이라는 자신의 삶에 빚 진채 끌려다녔고, 마침내는 식당 손님들이 뿌리고 간 이야기들을 적기 시작한 것이 출발이었다고 한다. 나도 내 삶의 경험과 교훈을, 당신의 이야기를, 이름 모를 들풀과 야생화의 꽃말을, 씨 뿌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신비로움을, 나의 작은 숲에 퍼지는 웃음꽃 이야기를 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