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죽기 전에 09화

존엄한 죽음 맞이하기

by 화문화답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만약 이런 법이 시행된다면 어떻게 될까? 가키야 미우의 소설 '70세 사망 법안 가결'의 이야기이다. 정부가 고령화에 따른 국가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더불어 안락사 방법을 몇 종류 준비할 방침이며, 대상자가 그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사회 전체를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 전 세계를 경악시킨 이 법안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파고들자,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과 현실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르게 반응한다.


고령화에 따른 사회 문제를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복선이 깔려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키야 미우의 작가적 상상력에 한 번 놀랐고, 아직 그런 나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도 70세가 머지않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죽을까 봐 조심한다든지 하는 막연한 관념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다. 그만큼 죽기보다는 사느라고 바빴다는 얘기이다. 아니다. 사실은 죽음이 전제되지 않은 삶은 없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죽음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느니 하는 듣기 좋은 소리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나이가 들면 죽는 거니까.


나는 종교가 없으므로 사후 세계에 관한 것은 알지 못한다. 즉,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밝은 빛을 내며 타오르다가 마지막에는 한줄기 연기를 남기고 스러져 버리는 촛불처럼. 따라서 죽음에 대한 나의 관심의 초점은 죽음 이후보다는 '잘 죽는 것(well dying)'이다.


병원 침대에 누워 호스를 주렁주렁 달고 숨만 쉬는 상태가 지속되면 가족들까지 고통 속에 빠지게 되고 심할 경우 가정 경제에 파탄을 가져오기도 한다. 무엇보다 너무 오래 아프면 자신이 가장 고통스럽다. 자는 듯 죽는 것을 큰 복이라며 기원해 보지만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결정지어지지는 않는다.


만약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 때 본인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다. 아, 이제 때가 되었구나. 이만하면 되었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어야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아마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반대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형법 제252조에 '사람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하거나,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를 처벌한다.'라고 규정하여 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논란 끝에 2016년 1월 '호스피스·완화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18년 2월부터 일정한 요건에 의한 연명치료 중단 자체는 불법이 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다른 경우는 여전히 모두가 불법이다.


일명 존엄사법이라고 불리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존엄사(尊嚴死)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죽음의 방법으로, 고통 없는 죽음만을 중시하는 안락사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김범석 서울대 교수는 '중환자실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만약 말기 암인 부모님을 응급실에 모시고 온 당신에게 응급실 의사가 중환자실로 옮길 것인지를 묻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생명이 위독한 부모님을 응급실에 모시고 온 가족들의 대부분은 ‘중환자실=최선=효도’라는 인식 체계가 발동하면서 중환자실 행을 택한다. 그러나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해 ‘호흡당하고’ 있는 부모님을 보면 살아계셔도 살아계신 게 아님을 금방 깨닫는다. 연명의료 중단 서류에 서명하면 마치 자신이 부모님을 죽이는 것만 같은 죄의식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 예정된 죽음을 조금 미루는 것치고는 잔혹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환자는 임종을 맞고, 유가족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피멍이 남는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적 특성상 어떤 기적을 바라면서 연명 치료 중단 서류에 서명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방식으로 '존엄한 죽음'을 맞으셨다. 티끌 하나 없었던 당신의 삶처럼, 아버지의 죽음에는 정결하고 준비된 존엄이 있었다. 반복되는 수술과 입원, 투병 생활을 의연하고 담담하게 해내셨다. 자신보다는 병간호하는 사람들을 먼저 살피시며 언제나 '괜찮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누나들은 땅을 치며 후회하지만 돌아가시기 전 요양병원에 쓸쓸히 누워 계시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을 안 하셨다. 논이며 밭이며 훌훌 다니며 사시던 분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셨을까.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안 쓰고 아끼고 모아둔 통장을 내어놓으시며 자신의 삶을 정돈하셨다. 엄마가 투병 중 일 때는 집에서 병 수발을 다 하셨고, 두 분이 손수 마련하고 가꾸어 두었던 자리에 엄마를 모셨다. 엄마의 옆자리에는 당신이 들어갈 곳이라며 미리 빈 관을 짜 넣어 두셨고, 심지어는 본인의 수의까지 다 마련해 두셨다. 돌아가시던 날도 일요일 밤 11시쯤 떠나셨다. 그러니까 사실상 3일장이 아니라 2일장으로 하게 해 주신 거다. 그 해 여름은 회사 일 때문에 휴가를 못 갈 상황이었는데 그때가 딱 7월 말 휴가철이었다. 오히려 내게 쉬어가라고 휴가를 주신 거다.


위중하시다는 누나의 연락을 받고 급히 공주로 내려가는데 다시 한번 전화가 왔다. 말하는 것은 아직 듣고 계실 거라며 전화기 아버지 귀에 대 드릴 테니 마지막으로 할 얘기 있으면 하라고 했다.


"아버지!... 아버지!..."


그 말 이외에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성격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나도 내 죽음에 대해서 정리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단 사는 동안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도록 열심히 운동한다. 그게 돈 버는 길이고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예방책이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지금까지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해 주었고, 앞으로도 짐이 되지는 않을 작정이다. 나의 아버지처럼 혹시라도 내 아내가 늙고 아프면 병시중을 다 해줄 것이다.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남의 손보다는 내가 낫지 않겠나.


혹시 내가 갑작스럽게 죽음과 맞닥뜨리게 되어도 연명 치료를 하지 않도록 아내와 아들에게 부탁해 둔다. 내가 죽을 때쯤이면 적극적 존엄사 또한 합법화되고 좀 더 보편화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모든 사람들의 소망처럼, 건강하게 살다가 더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이 오게 되면 가급적 짧게 아프다가 자는 듯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상태가 더 나빠지게 될 경우, 그때는 존엄하게 죽는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따뜻한 햇살이 가득하고, 산들산들 바람이 코 끝을 간질이는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하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나의 마지막 버킷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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