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설문 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 국민이 가장 가고 싶은 섬 1위가 바뀌었다고 한다. 부동의 1위였던 제주를 제치고 독도가 차지했다는 것이다. 제주는 울릉도에 이어 3위로 내려섰다. 물론 '최근 다녀온 여행지 중 가장 좋았던 섬', '가장 기억에 남는 섬', '힐링이나 치유하기 좋은 섬'을 묻는 질문에는 모두 제주가 1위였다.(매일경제 보도 기사)
제주는 비싼 물가와 일부 상인들의 바가지 상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섬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앞으로도 부디 국민들의 제주 사랑을 잃지 않도록 제주에서 관광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물론 관련 기관 모두가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주에 사는 한 지인에 의하면 평일 초특가 항공권을 이용하여 당일치기로 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숙박은 고사하고 심지어는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온다고 탄식한다. 저가 항공사가 생기면서 이런 현상이 예견되기는 했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과 얇아진 지갑이 이를 더욱 부채질하는 모양새이다. 입장에 따라서 '오죽하면 이러겠느냐'라며 목청을 높일 수 있겠지만 서로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처음 제주에 간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집이 서귀포에서 큰 귤 농장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고교 시절 펜팔(pen pal)을 통해 만난 자신의 서울 여친과 나를 포함한 친구 두 명을 제주로 초대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완도까지 갔고 거기서 제주행 배를 탔다. 지구가 천천히 흔들리는 것처럼 전정기관을 자극하는 롤링과 함께 두 시간을 달려 제주항에 도착했다. 천해(天海)를 붉은색으로 물들인 채 짙은 회색 띠를 두르고 바다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거대한 석양, 아직 쉴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짧은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을 맴도는 갈매기, 항구에 정박하여 하루를 마감하는 크고 작은 하얀색 배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소리를 끌어모아 뱉어내는 듯 울림이 큰 뱃고동 소리, 우리 모두는 한순간에 넋을 잃고 그 속에 빨려 들어갔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은 다시 배를 타고 가보고 싶다. 당연히 해 질 무렵 제주항으로 도착해야 한다. 그날 그 감동이여 다시 한번! 사실 제주는 이미 여러 번 다녀왔기 때문에 특별히 색다를 것은 없다. 다만 아직 제주에서 못 해본 것이 있다면 올레길 완주이다. 제주 올레길 완주는 나의 세 번째 버킷리스트이다.
'올레'는 큰길에서 집까지 연결하는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어(語)이다. 폭이 2미터를 넘지 않는 좁은 길로 소 한 마리가 드나들기 넉넉할 정도로 만들었다. '올레길'은 처음에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올레 여행'의 작가 서명숙 님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착안하여 개발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관리하는 둘레길이다. 제주도 내에 23개 코스가 있고, 우도, 가파도, 추자도 코스를 포함하면 모두 27개 코스가 된다. 이 27개 코스를 모두 완주해야만 메달과 증서를 준다.
굳이 문제라면 제주 섬과 가까운 우도와 가파도는 모르겠지만 추자도까지 가는 것은 아무래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주항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고 뱃길이 만만치 않아 멀미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고역이 될 수도 있다. 나도 기왕이면 올레길을 공식적으로 완주하고 증서도 받고 싶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무리하지 말고 추자도를 제외한 26개 코스 완주를 개인적인 목표로 정하면 된다. 내 마음대로니까.
추자도를 일단 제외하고 매일 1개 코스 씩 걷는다면 완주까지 26일이 걸린다. 매주 일요일엔 휴식을 취하고, 가는 날 오는 날까지 합치면 총 31박 32일이 소요된다. 긴 시간이고 오래 걸린다. 중간중간 끊어서 해도 되기는 하겠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내친김에 쭉 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특히 작심삼일 타입이라면 중단했다가 다시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주의할 점은 코스에 따라 숙소, 식당 및 편의점이 거의 없다시피 한 곳이 있고, 길을 잃을 위험도 있으므로 저녁 6시 이후의 트레킹은 조심해야 한다. 오며 가며 택시를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 제주와 서귀포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저녁 시간대 택시를 잡는 것이 쉽지 않다. 대중교통이 없는 코스도 있기 때문에 자차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동선과 숙소 계획을 적절하게 짜야한다. 복잡하다.
다행스럽게도 격하게 공감이 가는 올레길 완주 패키지가 활성화되어 있다.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350만 원가량의 참가 비용을 내면 호텔급 숙소와 세끼 식사를 제공해 주며, 안내자가 동반되고, 매일 시작 지점에 데려다주고 끝 지점에서 픽업해 온다. 심지어는 세탁 서비스까지 해준다고 하니, 일일이 개인이 알아보고 준비하는 것보다 간편하고 비용도 얼추 비슷할 거 같다.
다만, 이런 패키지가 인기를 끌자 여러 업체들이 뛰어들면서 과잉 경쟁으로 인한 사기와 부실이 판을 치기도 한다니 주의가 필요하다. 사실 적지 않은 돈을 도착과 동시에 일시불로 지불하는 조건은 적잖이 부담스럽다. 운영자, 호텔, 교통수단 등 수많은 구성 요소 중에서 어느 하나가 어긋나면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의심을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 부분에 대한 개런티가 좀 더 확실하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살짝 아쉽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똑떨어지는 목표와 명확한 일정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얘기한 올레길 여행 도중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다 해결해 준다. 또한 '개고생' 열정을 원치 않는 나에게 적절한 편의성을 제공한다. 그리고 예약과 동시에 '한 발 들여놓기'가 되기 때문에 막상 떠나려면 늘 발목을 붙잡던 심리적인 장벽을 넘기에 수월할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보자.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 보니까 80%가 혼자 오는 사람들이고 거기서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글이 많았다. 새로운 친구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이 계획이 품고 있는 보너스이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이 패키지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내키지 않을 경우 다른 사람들과 섞이거나 관여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해치면 안 된다. 모아놓고 '자기소개'나 '장기자랑' 시키면 딱 질색이다.
지난 33년 동안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이 많이 쌓여있다. 사람을 보면 자꾸 뻔히 그 속이 보인다. 올레길 완주에 도전하는 동안 관계 맺기의 강요를 받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싶다. 하지만 방향성이 같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은 대환영이다. 당연히 같이 놀 친구이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제주 올레길 완주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도 사귀게 되면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제주는 성수기나 비수기 그리고 계절적인 변수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언제 이 계획을 실행하느냐 타이밍이 중요하다. 여름휴가 기간, 연휴 기간, 장마 기간, 명절, 추울 때를 빼고 나니 그나마 3월 또는 4월이 상대적으로 나을 것 같다.
아마도 이 일정이 끝나면 많은 이야기들, 좋은 추억들, 좋은 친구들이 선물처럼 나에게 남겨질 것이다. 좋은 예감이 든다. 나의 세 번째 버킷리스트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