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좋아서 자동차로
해외여행의 본질은 다른 나라(異國)로 떠난다는 것이다. 즉, 자기 나라와 다른 언어, 문화, 기후, 시스템 속으로 들어간다.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없지 않지만 국내 여행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역시 천양지차이다. 그런 희소성과 다양성 때문에 사람들은 버킷리스트 상단에 해외여행을 자주 올린다. 반면 국내 여행은 금강산이나 백두산이라면 몰라도 큰 결심을 하지 않아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게다가 이미 가볼 만한 곳을 어느 정도 가본 사람이라면 굳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라고 버킷리스트에 올리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뭔가 의미가 더해진다면 몰라도 말이다.
나의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국내 여행에 초점을 맞추거나 사람들이 많이 가는 유명 관광지에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좀 싱겁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그 삼면을 자동차로 쭉 돌아보자는 콘셉트이다. 서해, 남해, 동해에 스며있을 지난 추억을 되짚어 보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찾아내 기억하고 싶다.
도보 여행자이자 여행 작가인 황안나 님은 교직 생활을 하다가, 정년을 7년 앞두고 은퇴했다. 이후 65세에 800km 국토종단을, 67세에 4,200km 해안 일주를 혼자서 해내 화제가 되었다. 세상에, 혼자서 말이다! 73세에 해안 길 4,400km를 다시 걸어 완주했고, 국토종단기 ‘내 나이가 어때서?’의 출간으로 66세에 작가의 꿈을 이뤘다. 72세에 쓴 ‘엄마, 나 또 올게’는 4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제 여생을 정리하며 살아갈 나이에도 끊임없는 열정으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고 한다.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나도 해볼까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기초 체력이 약한 편에다 나이가 들면서 지구력까지 떨어지고 있는 마당이라 따라 할 자신이 없다. 그만큼 도전 정신이 투철한 편도 아니다. 무엇보다 '사서 고생'하는 콘셉트는 내 취향이 아니다.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고행 수준의 이런 노력은 하지 않기로 한다. 내 맘대로 이니까.
감사하고 추억하고 서해
나는 공주ㅇㅇㅇ고를 졸업했다. 충청남도에서는 대전고등학교가 명문으로 인정받아 왔으나 내가 입학하기 전 해부터 고교 뺑뺑이로 바뀌면서 선발시험을 보는 이 학교를 지원했다. 남학생 4개 반, 여학생 2개 반이 한 학년으로 구성된 남녀 공학이었다. 오작교로 불리었던 다리로 이어진 채, 남학생과 여학생의 건물은 앞뒤로 떨어져 있었고 통행로도 분리되어 남학생은 좌측, 여학생은 우측 길을 이용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저녁 무렵 옥상에 올라가 있으면 봉황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과 그 바람 자락에 실려오는 소쩍새 소리가 고즈넉한 절간의 풍경 소리 같았다.
등교하려면 선생님들이 긴 막대기를 들고 서있는 교문과 아담한 타원형 운동장을 지나 45도 정도의 오르막 경사로를 올라가야 하는데, 눈이 쌓이거나 얼어있는 날에는 다리가 불편한 여학생을 등에 업고 올라가는 용감한 남학생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교실 창문에 고개를 내민 학생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영화관에 몰래 갔다 걸리면 일주일 정학을 받을 정도로 규율이 엄격하던 시절이었다.
두 살 위인 작은 누나가 이미 3학년에 재학 중이었기에 누나와 함께 자취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있으면 두꺼비집을 차단하는 집주인의 횡포를 겪으면서도 남매는 한 가지에만 매달렸다. 같이 어린 나이였음에도 누나는 늘 어른스럽게 동생을 보살펴 주었다. 덕분에 나는 3년 동안,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 5락'에 충실하며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나는 결국 자신의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은행에 취업했고,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자신의 월급을 덜어서 보내주는 나의 후원자가 되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정말 캔디 같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어느 언저리 여름방학이었다. 누나와 둘이서 원산도에 간 적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연인이 아니고 친남매간이었으나 우리는 학창 시절의 낭만을 꿈꾸며 배낭에 텐트까지 짊어지고 대천항에서 배를 탔다. 둘 다 캠핑이 처음인지라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해변을 걷고 노을도 보며 놀다가 새벽녘에야 파도 소리와 함께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텐트를 열고 나오려던 나는 깜짝 놀랐다. 텐트 밖에 벗어둔 신발이 사라졌다. 발 냄새를 없애준다는 놀라운 내용의 광고를 하던 빨간 줄이 세 개 있는 흰색 운동화였다. 지금으로 치면 나** 정도의 브랜드 로열티를 가졌던, 우리 형편에 신기 힘든 신발이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신발 가게를 찾아서 엄지발가락을 끼우는 슬리퍼를 샀고 돌아올 때까지 그걸 신고 다녀야 했다. 결국 나중에는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서 고생을 했다. 우리는 신발을 텐트 안으로 들여놓고 자야 한다는 기본적인 도난 방지 조치조차 알지 못하던 순박한 청년들이었다.
그 원산도를 이제는 배가 아닌 자동차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원산안면대교과 보령해저터널이 개통되었기 때문이다. 보령해저터널은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항과 원산도를 연결하는데, 해저터널로는 국내에서 가장 길고 전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라고 한다.
인간의 놀라운 기술력에 경의를 표하며, 나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던 누나의 헌신에 감사하며, 누나와 함께 했던 추억 속의 그 섬으로 다시 떠나보자. 이번에는 자동차를 타고. 혹시 아나? 그때 잃어버린 운동화를 되찾을지도.
반도(半島)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은 육지에 이어진 땅으로 대륙에서 바다 쪽으로 좁다랗게 돌출한 육지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한반도(韓半島)’라고 불리는 하나의 반도이며, 여기에 크고 작은 부속 반도가 산재한다. 부속 반도는 주로 남해안과 서해안에 분포하며 대부분 노년기 산지의 말단부가 침수되면서 돌출부가 남은 것이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대표적인 반도는 태안반도와 변산반도가 있다. 원산도가 있는 태안반도를 떠나 이번에는 변산반도로 향한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군산에 멈추면 약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고군산군도가 있다. 새만금방조제를 타고 넘어가면서 섬 여행이 시작된다. 야미도, 무녀도, 신시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를 당일로 돌아볼 수도 있고 끌리는 곳과 적당한 숙소가 있으면 더 머물러도 좋다. 이렇게 여러 개의 섬이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어 배를 타지 않고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신시도에서 새만금무궁화공원과 가력도를 넘는 바다 위 길을 지나 30번 도로로 이어지는 곳에 변산반도가 있다. 변산의 경치는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혀 왔으며 산의 변산인 내변산과 바다의 변산인 외변산으로 나누어진다.
'조용헌의 인생 독법'에 변산반도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적혀있다. "장광(長廣) 80리로 불리며 그 안에 작은 산봉우리 300여 개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예로부터 난리가 났을 때 숨어살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 가운데 하나이며, 허균은 선계폭포 정사암에서 홍길동과 율도국을 탄생시켰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선운사와 도솔암 바위 절벽의 미륵불은 낡은 세상을 해체하고 새 세상을 만드는 부처로 여전히 일대를 지배하고 있다. 특히 도솔암에서 기도하면 기도발이 영험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내변산 내소사의 대웅보전 후불벽에는 유명한 ‘백의관세음보살좌상’이 있다. 바위에 앉아있는, 백의(白衣)를 입은 관세음보살을 묘사한 것으로 조선 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눈을 보면서 이동하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벽화 속 시선이 따라 움직이는데 이렇게 관음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변산반도에 가서 십승지의 좋은 기운도 받고 도솔암과 내소사에 들러 소원을 빌어 보자.
원산도와 고군산군도 그리고 변산반도로 서해 일주를 마무리하고 이어서 남해로 향한다.
머무르고 싶은 섬 남해
'남해같이 해안선이 복잡하고 섬이 많은 해안을 뭐라고 하는지 아는 사람?' 통영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에 올라가던 중 아내가 퀴즈를 냈다. 학교 다닐 때 지리 시간에 배운 건가? 아들과 내가 잠시, 아주 잠시 버벅거리는 사이 아내는 리아스식 해안을 모르냐며 기고만장했었다.
남해는 다도해(多島海)이므로 당연히 섬 여행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섬들을 다 볼 수는 없다. 특히, 한 시간이 넘는 뱃길이라면 멀미가 심한 나로서는 무리이다. 여수, 통영, 거제를 거점으로 비진도, 금오도, 소매물도, 청산도, 욕지도, 보길도 중에서 바다 전망이 좋은 숙소가 있는 섬을 택해 열흘이고 한 달이고 오래 머물러 볼 계획이다.
언덕배기 즈음에 파란 기와지붕과 낮은 시멘트 블록 담장을 가진 집, 집게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빨랫줄과 마당 가운데 평상이 놓여 있는 집, 작은 섬들과 파란 바다와 하얀 구름이 함께 어우러져 햇살 가득 한바탕 향연을 펼치는 곳, 과연 그런 곳을 찾을 수 있을까? 만나고 싶다. 그러다 어쩌면 아예 눌러 살지도 모른다. 때로는 가당치 않은 신선유(遊), 은자거(居)를 흉내 내기도 하고, 바다처럼 거친 섬사람들의 일상을 였보기도 하면서.
사랑에 빠지다 동해
동해안의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길은 바닷길의 정취를 한껏 누릴 수 있는 사랑스러운 길이다. “아프니까 사랑 이랬지. 잊으려 애를 쓰니 더 보고 싶더라. 7번 국도 바닷길 따라 끝없는 나의 사랑 길”, 트로트 가수 장민호가 부른 '7번 국도'라는 노래 가사이다. 7번 국도는 부산시 옛 시청 교차로에서 시작하여 함경북도 온성을 잇는 총연장 1,192km에 달하는 길이다. 1번, 3번, 5번 국도와 더불어 대한민국을 종으로 가로지르는 4개의 국도 중 하나이다. 등뼈 국도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누구에게나 '가장 좋았던 시절'이 있다. 만약 나에게 직장 생활 33년 중 가장 좋았던 시절을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부산에서 근무하던 3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순환 보직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통상 3년에 한 번씩 인사이동을 했고, 과장 진급을 하면서 나도 부산으로 발령이 났다. 인사명령이 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3일 이내에 새로운 근무지로 출근해야 한다. 아내 역시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기에 준비고 뭐고 할 것도 없이 혈혈단신 부산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새로 발령받아 온 과장입니다."
"아, 예. 여기와 안즈이소."
"뭐하노, 와서 인사들 안 하고."
단단한 체구에 머리가 절반쯤 벗어진 한 직원이 큰소리로 부르자, 자리에 앉아있던 몇몇 직원들이 모여들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다. 그룹 공채가 아닌 현지 경력직 채용으로 입사한 대리 두 명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지금 와서 솔직이 말하는데 그 부산 아저씨들 좀 무서웠다.
"식사나 하러 가입시다."
새벽 기차를 탔지만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이들은 아마도 서울에서 신임 과장이 온다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5층 직원 식당에 들어서자 낯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평소 나는 눈앞에 있는 먹을 것의 비주얼이 명확하지 않으면 먹기를 주저한다. 또한 비린내가 나면 아주 질색한다. 가자미 미역국, 내가 싫어하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가자미 미역국이 부산에서 먹은 첫 번째 음식이었다. 설마 그 무서운 부산 아저씨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겠지.
대화하자는 건지 싸우자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말투, 거친 몸짓, 급한 성격, 온천지 생선 비린내, 꼭두새벽에 '과장급 이상 금정산 매표소 앞 집합'을 강요하는 '등산 마니아' 높은 분 때문에 한참 동안 힘들었다.
대리 직급 세 명 중에서 나 보다 나이가 두 살이 많았던 한 명이 자신에게 분담된 매출 목표에 불만을 품고 과장인 내 앞에서 북북 찢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사건도 있었다. 물론 나중에 그 대리가 인사이동으로 발령이 났을 때는 '회의 시간에 과장님이 하신 말씀들을 적은 다이어리는 꼭 챙겨 간다.'며 아쉬워했다.
시작과 처음은 그랬다. 하지만 그곳에는 코앞에 광안리와 해운대 그리고 송정 바다가 있었고, 나중에 여기 와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달맞이 고개와 청사포, 회를 전혀 못 먹던 내게 회 맛을 알게 해 준 복어집 사장님, 조방 앞 돼지국밥집이 있었다. 매일매일 재미있게 일했고 서울에서 벤치마킹을 올 정도로 업무 성과가 좋았다. 과장을 믿고 리드에 잘 따라주었던 '겉과 속이 달랐던' 직원들 덕분이다. 그들과 함께했던 부산은 여전히 나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때 그 사람들이 보고 싶다.
부산에서 출발한다. 부산 남포동에서 출발하여 7번 국도를 따라 북쪽 끝 고성 화진포까지 이동한다. 주로 해수욕장을 따라 해안 절경을 감상하면서 내키는 대로 인근 도시들을 경유해 볼 수 있다. 전망이 좋은 한적한 카페에 들르게 되면 반나절의 절반쯤은 책을 읽고, 절반쯤은 '바다멍'하며 시간을 보내도 좋다. 이 루트의 킬링 포인트는 가급적 가보지 않은 지역을 가보는 것, 서두르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이든 계획하지 않는 것이다. 7번 국도를 따라 주마간산(走馬看山)이 아닌 주차간해(走車看海)하면서, 세월이 덧없음을 아쉬워하기도 하고 그때 부산에서 동고동락했던 보고 싶은 동료들을 하나씩 떠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