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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Feb 15. 2024

급식은 급하게 먹는 식사?

밥 빨리 먹기 신공

학교 급식은 무상?


출근을 시작하기도 전이었던 어느 날, 학교 영양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급식 신청할 거냐고 물었고, 인수인계받으러 간   재차 확인했다. '역시 학교는 사람들이 다르네. 이 학교, 나한테 신경 써 주고 있구나. 나도 그만큼 잘해야겠다.' 내심 마음이 훈훈해졌다.


아니었다. 친절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식수 인원 확보 차원에 가까웠다. 학생이 아닌 사람들은 끼당 6,800원을 내야 했다. 첫 달이 지난 어느 날, 20일 분 밥값 136,000원을 입금하라고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달부터는 7,400원으로 인상 예정이라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교사의 점심시간과 나의 점심시간


교사들의 점심 식사 시간은 유동적이다. 수업 시간과 혼잡 시간대를 감안하여 각자 루틴이 정해져 있다. 대부분의 여자 선생님들은 간단한 도시락을 지참해서 휴게실에서 먹고, 급식을 먹는 분들은 상황에 따라 혼자 또는 식사 파트너들과 함께 교직원 급식실에 가서 식사를 다.


교직원 급식실은 학생 급식실과는 달리 열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이다. 보통스러운 자율급식대이고 특별히 감동적이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전형적인 '구내식당 밥'이다.


취업부장은 대부분 10시 50분이면 식사를 가는데, 그 시간대가 가장 한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같이 가자고 해서 몇 번 따라갔다. 나를 챙겨주고 배려하는 마음이 고마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더니, 원래 식사 파트너였던 다른 남자 교사들과 합류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 학교의 남자 교사는 통틀어 다섯 명 정도에 불과하다. 식사가 끝난 후 주차장 한구석에 모여 서서 수군수군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그분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식사하는 날이 많아졌다. 뒤늦게, 그리고 본의 아니게 요즘 대세라는 '혼밥 문화'를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다른 분한테 느닷없이 '같이 식사하러 가시겠어요?' 하는 것도 모양이 이상하다. 물론 내가 그렇게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탓도 있겠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특별한 이슈가 없고 공유되는 일들이 없다 보니 서로 말 붙일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이 여자분들이어서, 끼어들기가 용이치 않았다.



학교 급식은 위험해


학교 급식은 가깝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불편한 점도 적지 않다. 교사들은 점심시간이 근무에 포함되어 이지만, 나에게는 엄연한 휴식 시간이다. 그럼에도 취업부장은 할 얘기가 있으면 그 시간을 활용했다. 식사 후, 운동장이나 주차장 한쪽 구석에 끌려가서(?) 얘기를 듣다 보면 한 시간이 훅 지나가 버리곤 했다.


무엇보다 가장 불편한 점은 '자발적 눈칫밥'이었다. 좁은 공간에 길게 줄을 서있는 선생님들을 보면 불안했다. 혼자 앉아서 밥을 먹다가 간혹 서있는 분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빨리 먹고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어떤 때는 내가 식판을 들고 빈자리에 앉으면 사람들의 대화가 뚝 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다시 일어날 수도 없고,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얘기하라며 그분들의 대화를 촉진시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주는 사람 없는 눈치'를 스스로 보며 빠르게 먹어 치워야 하는 밥은 항상 속을 더부룩하게 했다. 즐거워야 할 식사 시간이 급하게 먹는 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었다.



외부인 식사 환영


그래서 결심했다. 학교 급식을 먹지 않겠다고. 일단 영양사 분께 급식 중단을 통보했다. 먼저 손에 쥔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만질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외부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든 분들이 그렇듯,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매 번 어디서 무얼 먹느냐 하는 고민에 빠졌다. 오늘은 육개장, 내일은 돈가스, 며칠 동안 학교 근처 식당을 전전하는 점심 식사 노매드를 겪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배너의 광고가 생각났다. '구내식당 외부인 식사 환영!' 학교 인근에 있는 통신 대기업 지사 앞을 지나가다 본 적이 있었다. 검색을 해 보니 평이 괜찮았다. 특히 넓은 공간이라는 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거다 싶었다.


그 기업의 구내식당은 내 걸음으로 약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교직원 급식실보다 5분 정도 더 걸었다. 지하 1층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계단을 내려갔다. 입구에 식권 판매 키오스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6,000원이었다. 현금으로 6만 원을 내면 식권 11장을 준다. 실질적으로 한 끼에 5,500원 꼴이다. 외부인은 11시 50분부터 식사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배식대에서 자율 배식을 하고 8인용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앉았다. 잡곡밥을 따로 보온밥통에 준비해 두는 디테일까지 있었다. 사실 식판에 퍼 담는 짬밥의 수준은 오십 보 백보이다. 다만 넓은 공간이 여유로웠고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 좋았다. 어차피 혼밥인데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다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으니까 마음이 편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갔다.



먹고사는 문제


먹는 문제는 사는 문제이고 중요하다. 그래서 그냥 '산다.'라고 하지 않고 '먹고 산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33년 차 직장인이 뒤늦게 부딪친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고민은 이렇게 해결되었다. 날씨가 나쁜 날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좋아졌다. '급하게 먹는 식사'에서 벗어나 한 시간의 여유와 행복을 되찾은 기분이다. 영양사나 취업부장은 외부에서 식사하면 불편하지 않느냐며 뭔지 모를 서운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계약이 만료되는 그날까지 쭉 여기서 식사를 할 계획이다.


본인의 식사 파트너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들어 온 취업부장이 내일은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며 시간이 괜찮으냐고 물었다. 당연히 괜찮지요. 근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하루 전에 예고까지 할까? 내일은 점심시간에 나가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인가? 취업부장이 나에게 '긴히 할 얘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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