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채용 박람회
고졸 취업에 관한 유용한 정보나 학생들에게 추천할 만한 채용 공고를 검색하여 제공하는 일은 취업지원관인 내 업무 중 하나이다. 언론 매체의 관련 기사를 살펴보던 중, '국내 최대 고졸 인재 채용 취업 박람회 개최'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기사 내용 중에 '최대'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하여 규모가 크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참가 기업 수가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고, 금융 기관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이 학교 학생들이 참고할 만한 기업은 없었다. 도대체 뭐가 최대라는 것인지. 그래도 그렇다 하니 개인적으로 가볼 요량으로 일단 사전 참가 신청을 해놓았다.
그런데 박람회 시작 일주일 정도를 앞두고 취업부 선생님들 사이에 이 행사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취업부장에 의하면 본인도 해당 취업 박람회 참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교육청에서 참가 권유 공문이 오는 바람에 상황이 반전되었다고 한다. 작년에 대통령이 다녀간 행사라서 교육청이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고 했다.
여기까지의 흐름만 보면, 언제든 있을 법한 평범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 이와 유사한 사례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그런데 이 건을 두고 교무실이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학생들 참가는 기정사실이 되었지만, 그 방법론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다.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낯선 상황이었다.
당초 취업부장은 3학년 4개 반 전원, 종일 참석, 전세 버스 두 대로 이동, 도시락과 음료 제공, 담임 인솔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이 안은 일명 '레인보우'의 반대에 부딪혔다. 레인보우는 ㅇㅇㅇ선생님과 그를 추종하는 여섯 명의 교사를 지칭하는데, 이분들은 교내의 이런저런 의사결정에 적지 않은 막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일종의 교내 파벌 같은 것이었다.
레인보우는 취업 희망자에 한하여 참석, 반나절이면 충분, 담임도 가되 인솔 책임은 취업부가 질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렇게 결론이 났다. 취업부장에 의하면 이런 식으로 주무 부서의 의견이 묵살되거나 뒤집히는 일이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나도 얼떨결에 인솔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33년 차 직장인 출신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소통 방식이나 의사결정 과정이 좀 어이없게 다가왔다.
도착한 박람회 현장에는 이미 수많은 학생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광장에서 공놀이하는 학생들, 그늘진 곳에서 도시락으로 식사하는 학생들, 여기저기 바닥에 주저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관람을 마친 후 남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박람회장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들어가려는데, 학생들의 개별 입장권이 있어야 한다며 입장을 제지당했다. 취업 부장과 함께 급히 입장권 발급처로 갔으나 이번에는 인솔 교사 등록부터 해야 한다며 다른 창구 먼저 다녀오라고 했다. 입구 쪽을 바라보니 우리 학생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그 뒤로 입장 대기 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혹시 개인 자격으로 사전 등록을 했는데 나를 인솔 교사로 간주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이름을 확인하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교사가 아니니까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취업부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개인적으로 사전 등록을 해놓았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더 곤란을 겪을 뻔했다.
6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부스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좁은 통로마다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과 머리를 올려붙이고 면접 복장을 빼입은 학생들도 보였다. 산업ㅇㅇ공단 부스에 같이 가 달라는 학생들을 데리고 해당 부스를 찾아갔지만, 상담석은 비어 있었고 안쪽에 앉아 있던 직원 역시 자신은 홍보 담당이고 채용 상담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취업 특강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의자에 앉아서 쉬는(?) 사람은 많았지만, 제대로 듣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소리가 퍼지고 주변 소음이 있어 강사의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오픈된 공간이라서 집중하기가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사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저만치 앞쪽에 취업부장이 보였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손 선풍기 같은 사은품을 챙기기에 바빴다. 저런 건 받아서 뭐 하려고 저러실까? 벌써 쇼핑백에 한가득 인 데 별걸 다 욕심부리네.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니 잠시 근처 카페에 가자고 했더니 다른 교사분들과 같이 가자며 흔쾌히 동의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전시장 내 카페에 앉아 처음으로 3학년 담임 선생님들과 대화를 해볼 수 있었다. 그분들은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담임이고 나는 명색이 취업지원관인데, 그동안 '학생들 취업'이라는 공통분모에도 어떤 의견이나 정보 교환이 없었다는 게 신기했다.
특히, 그중 한 분이 레인보우파의 수장으로 알려져 있어 관심이 갔다. 그분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취업부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충고를 했다. 취업부장은 그에 대해 반론하거나 해명하기보다는 '고려하겠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노련한 편인 취업부장이 주눅이 들었을 리는 없고 충돌을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 자리에서 오고 간 일부 대화가 하나의 팩트가 되어 거기에 여러 말이 보태져 돌아다녔다. 대부분 좋지 않은 얘기들이었지만, 그중에는 결과적으로 내게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다. 예를 들어, 취업부장이 취업지원관을 너무 '원칙대로' 대하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은 교장 선생님께서 취업부장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취업지원관의 역할에 대해 취업부장이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부분을 적시한 것으로 보인다. 즉, 어느 정도 자율성을 주기보다는 제한된 범위의 업무에만 운용하려는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담임들이 취업지원관과 소통할 기회가 없다는 불만을 말한 것이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쨌든 여기서 지내는 동안, 가급적 입을 다물고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탑승 시간이 다가와 주차장으로 갔더니 이미 많은 학생이 근처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학교로 복귀하는 버스 안에서, 취업부장이 열심히 모아 온 사은품의 용도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른 교사와 학생들이 눈과 입을 닫고 있는 사이에 그가 나섰다.
옆에 앉은 나에게 아이들한테 낼 수 있는 가벼운 퀴즈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나는 난센스 퀴즈 몇 개를 검색하여 알려주었다. 예를 들면, '깨뜨리고 칭찬받는 것은? 신기록' 같은 문제였다. 그가 큼큼거리며 마이크를 들더니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그리고 답을 맞히는 학생에게 사은품을 상품으로 주었다.
모든 학생이 호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호흡하려는 선생님으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이 엿보였다. 학교로 돌아오는 한 시간 동안 버스 안은 그렇게 학생들의 탄성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 행사 참가를 두고 어떤 분은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평했고, 어떤 분은 무사히 지났으니 그걸로 됐다고 하기도 했다. 나에게 묻는다면, 눈앞에 구체적인 성과가 있었느니 없었느니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물마다 물고기가 들지는 않는 법이다.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는 뭐든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경험하고 겪어보게 해야 한다. 어느 순간, 어떤 접점에서 그들이 자신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발견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 날에도 학교는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갔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취업부장이 구시렁거리는 모습이 전보다 자주 눈에 띄었다. 대체 어떤 상황이 그를 점점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