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부장 VS. 레인보우
고졸 취업에 관한 유용한 정보나 학생들에게 추천할 만한 채용 공고를 검색하여 제공하는 일은 내 업무 중 하나이다.
'국내 최대 고졸 인재 채용 취업 박람회 개최'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기사 내용에 '최대'라는 단어가 여러 번 쓰이고 있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참가 기업 수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고, 금융 기관 한 두 개를 제외하고는 이 학교 학생들이 참고할 만한 기업은 없었다. 그래도 '최대'라 하니 개인적으로 가볼 요량으로 일단 사전 참가 신청을 해놓았다.
그런데 며칠 후부터 취업부 선생님들 대화 내용에 이 행사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취업부장 역시 이 취업 박람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교육청에서 참가 권유 공문이 오는 바람에 상황이 반전되었다고 한다. 작년에 대통령이 다녀간 행사라서 교육청이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고 했다.
여기까지의 흐름만 보면, 언제든 있을 법한 단순한 일이다. 하지만 이 건을 두고 교무실이 한동안 설왕설래하며 소란스러웠다.
당초 취업부장은 3학년 4개 반 전원, 종일 참석, 전세 버스 두 대로 이동, 도시락과 음료 제공, 담임 인솔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이 안은 일명 '레인보우'의 반대에 부딪혔다. 레인보우는 ㅇㅇㅇ선생님을 중심으로 서로 뜻이 잘 맞는 일곱 명의 교사를 지칭하는데, 이 분들은 교내의 이런저런 대소사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레인보우는 취업 희망자에 한하여 참석, 반나절이면 충분, 담임도 가되 인솔 책임은 취업부가 질 것을 주장했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렇게 결론이 났다. 그 과정에서 나도 얼떨결에 인솔자 명단에 올랐다. 33년 차 직장인 출신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소통 방식이나 의사결정 과정이 좀 낯설었다.
소문난 잔치에 없는 것
도착한 현장에는 이미 수많은 학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광장에서 공놀이를 하는 학생들, 그늘진 곳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는 학생들, 여기저기 바닥에 주저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기념사진을 찍은 후 들어가려는데, 학생들의 개별 입장권이 있어야 한다며 입구에서 입장을 막았다. 취업 부장과 함께 입장권 발급처로 갔으나 인솔 교사 등록부터 해야 한다며 다른 창구부터 다녀오라고 했다. 입구 쪽을 바라보니 우리 학생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그 뒤로 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개인 자격으로 사전 등록을 했는데 나를 인솔 교사로 지정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가능하다고 했다. 창구에서는 나를 교사로 알았을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교사가 아니니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취업부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6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부스가 그렇게 많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통로마다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과 머리를 올려붙이고 면접 복장을 빼입은 학생들도 보였다. ㅇㅇㅇㅇ공단 부스에 같이 가 달라는 학생들을 데리고 해당 부스를 찾아갔지만 상담석은 비어 있었고 안 쪽에 앉아 있던 직원 역시 홍보 담당이고 채용 상담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취업 특강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앉아서 쉬는(?) 사람은 많았지만, 강사의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집중하여 듣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사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취업부장은 돌아다니며 손 선풍기 같은 사은품을 챙겼다. 저런 건 받아서 뭐 하려고 저러실까?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니 잠시 근처 카페로 가자고 말씀을 드렸더니 교사분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흔쾌히 동의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전시장 내 카페에 앉아 처음으로 3학년 담임 선생님들과 대화를 해볼 수 있었다. 특히 그중 한 분이 레인보우파의 수장으로 알려져 있어서 관심이 갔다. 그분은 취업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충고를 했고, 취업부장은 '고려하겠다.'라고 답변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 자리에서 오고 간 일부 대화가 하나의 팩트가 되어 여러 말들이 더하여졌다. 대부분 좋지 않은 얘기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취업부장이 취업지원관을 너무 '원칙대로' 대하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은 교장선생님께서 취업부장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쨌든 여기서 지내는 동안, 입을 다물고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물마다 물고기가 들지는 않는다
버스 탑승 시간이 다가와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갔더니 이미 많은 학생들이 근처에 모여 있었다. 학교로 복귀하는 버스 안에서, 취업부장이 모아 온 사은품의 용도를 알게 되었다. 그는 마이크를 들더니 학생들에게 간단한 퀴즈를 내고 답을 맞히면 그것들을 상품으로 주었다. 모든 학생들이 호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호흡하려는 선생님으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이 엿보였다.
이번 행사 참가를 두고 어떤 분은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평했고, 어떤 분은 무사히 지났으니 그걸로 됐다고 하기도 했다. 나에게 묻는다면, 눈앞에 구체적인 성과가 있었느니 없었느니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는 뭐든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경험하고 겪어보게 해야 한다. 어느 순간, 어떤 접점에서 그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발견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학교는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갔고 그날 이후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취업부장이 구시렁 거리는 모습이 전보다 자주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