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죽기 전에 01화

바르고 고요하게

by 화문화답

북한산 족두리봉의 하얀 바위들이 햇살을 받아 언 몸을 덥히고, 여기저기 무리를 이룬 나무들은 서로 몸을 비비며 추위를 견디고 있다. 둘레길을 걷던 사람들 대신, 아직 녹지 않은 하얀 눈이 그늘마다 얼굴을 내민다. 온 산을 휘휘 맴도는 바람은 여름내 암컷을 부르던 매미 울음을 흉내 내는 듯 나뭇가지를 흔들어 댄다. 모든 것이 무겁게 식어 있고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바르고 고요하게.


주자(朱子)는 반일정좌(半日靜坐) 반일독서(半日讀書)라 하여, 하루의 절반은 바르고 고요히 앉아 명상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책을 읽으며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나는 반나절을 바르고 고요하게 앉아 지켜내야 할 나의 마음을 생각하고 있다.


행여 다른 사람의 아픔을 미처 살피지 못하고 비난을 일삼지는 않았던가. 눈앞의 작은 이익에 현혹되거나 분에 넘치는 욕심을 품지는 않았던가. 당면한 일에 대하여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이미 지난 일에 연연하지는 않았던가. 모면할 궁리부터 하거나 남의 탓을 하지는 않았던가.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우유부단하여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던가. 자기 연민에 빠져 상실이나 슬픔에 젖어 있지는 않았던가. 마음이 안으로 향하지 않고 밖으로만 기웃거리지는 않았는가.


돌이켜 보면 결코 가볍지 않았다. 치열하지 않았던 때가 한순간도 없었다. 하지만 빛이 강했던 만큼 아쉬움의 그림자도 짙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생각조차도 지우고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혼자서 가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곁을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나무처럼 그늘을 내어주고,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여야 한다. 그런 마음이어야 한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지적 거장인 정약용이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다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추락했을 때, 스스로의 마음을 지켜내기 위한 인생의 마지막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심경밀험(心經密驗)이라는 또 하나의 대작을 저술하여 그동안의 모든 경서 연구를 마무리하였다.


감히 그 거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문득 마음공부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마음공부는 어떻게 하는 거지? 음, 일단은 이어령선생님의 말씀처럼 마음이 그럴 때는 연필 한 자루 잘 깎아 마음을 쓰는 걸로 시작해 보자.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시작과 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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