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한국 기업의 COO 자리를 제의받았을 때 생각할 것들이 적지 않았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그 무더운 나라에서 잘 견딜 수 있을지, 낯설고 물선 외국 생활에 적응할 수는 있겠는지, 현지 비즈니스 환경에 맞춰 현지인들과 일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 건지, 무엇보다 말년에 이직이라니.
그냥 딱 두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가장 비중 있게 고려할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고 내 마음이 진정 원하는가?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일이고, 그쪽에서는 이미 오는 걸로 전제하고 있어 거절하기가 난처하기도 했다. 그래,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하자! 누구 말대로 추억 여행 떠난다고 생각하지 뭐.
베트남 직원들한테 내 별명은 '슈퍼맨'이었다. 그만큼 바쁜 시간들을 보냈고 옵션으로 약속받았던 '다낭 미께비치의 독채 별장'이 진짜 실현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점점 커졌다.
그러나 COVID19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인류를 지배하게 되면서, '코로나 퀘이크'는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지속적으로 촉발하여 많은 사람들을 고난에 빠뜨리고 말았다.
델듯한 햇빛이 작열하다가 종말 같은 스콜이 어김없이 퍼붓던 날, 하늘과 바다가 예쁜 오토바이의 나라를 떠나고자 긴팔 옷을 챙겼다. 일단 휴가로 대표와 협의하였지만, 내 몸과 마음은 다시 돌아갈 용기를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비록 '다낭 미께비치의 독채 별장'을 받지 못했고 아직 정년을 일 년 앞두고 있어 꽉 채운 숫자로 피날레를 장식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며 회사에 가시적인 성과를 남겼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무엇보다 베트남에서 보낸 시간들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고 좋은 추억이었다.
풋풋했던 이십 대 청년은 이제 노년의 초입에 이르렀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채 시작한 나의 33년 직장 생활은 끝이 났다. 그리고 33년 전에 미처 자신에게 못다 한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쿼바디스(Quo Vadis)?"
내 나이 또래 지인들 대부분은 이미 은퇴하고 현직에 남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중 몇몇은 빚더미라고 투덜대면서도 여전히 자영업을 하고 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중장비 학원을 다니거나 '건강 삼아서'라며 허드렛일을 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그들의 얼굴에는 팔자 주름이 깊게 파였고 드문 머리카락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다. 단추가 터져 나갈 듯 배가 불룩하고 팔다리는 가늘어져 영락없는 ET 모양을 하고 있다. 그렇게 각자의 가치관과 방식대로 ‘당위(sollen)’가 아닌 ‘존재(sein)’가 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그런 때가 된 것이리라.
오라는 데도 없겠지만, 나이 제한 없는 일에 새롭게 입직하자니 늙은 나이와 볼품 없어진 외모가 발목을 붙잡을 것이고, 경력과 경험은 꼰대로 해석될 것이다. 새로 사업을 시작하거나 공격적 금융 투자를 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공산이 크다. 정부나 지자체가 주관하는 공공 일자리는 자칫 내상을 입기 쉽다. 성별과 나이 불문이라지만 실제로는 차별이 심하고, 전문적인 경력이 필요한 것처럼 지원 자격을 설정해 놓았지만 현장에서는 공공 알바로 취급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는 자격증을 5개나 취득했는데도 '안된다'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려 봐야 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새 나는 그냥 논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전혀 지루하지도 않고, 뭘 하며 시간을 보내나 걱정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도 있다. 소소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이러다 진짜 백수가 과로사하는 거 아냐?' 하는 웃픈 생각도 든다. 이런 매일이 꿀처럼 달달하다. 다만, 세월이 너무 빠르게 가는 것이 아쉽다.
물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소속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수시로 머릿속으로 쳐들어 온다. 바이러스처럼 잠재되어 있다가 약한 부분을 뚫고 올라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듣기 좋은 말로 '청춘이고 한참 때'라고 하지만 내 의지와는 별개로 더 이상 어떤 근사한 기회를 갖기 어려울 것이다. 즉, 결론은 이미 나 있고 별다른 대안도 없으니 머릿속 침입자들이 괴롭힌다고 덩달아 고민할 하등에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 잘 놀자. 잘 노는 것도 잘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못해준 것들을 해줘 가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자. 돈이라는 것은 많을수록 좋겠지만 적당히 있으면 그걸로도 괜찮다. 말에 타면 종 부리고 싶은 법,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고 물러서는 것이 현명하다. 감사하게도 풍족하지는 않지만 돈에 쪼들리지는 않는다. 향후 의료비 지출이 가장 많을 것이므로 건강을 유지하도록 열심히 운동하고 스트레스받지 않게 마음을 잘 다스리면 된다.
함께 놀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마음을 나눌 친구나 지인은 딱히 없다. 내가 못난 탓도 없지 않겠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각자 생각에 매몰되어 버리기 때문에 합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방향이 맞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편이 낫다. 지금까지 합의 동기가 어떤 목적, 의도, 이해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익 사회에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의도적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발생한 공동 사회에 속해 사는 것이다. 만약 그것도 안되면 혼자 놀면 된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이고 언제나 외로운 존재이다. 가족들은 영원히 조건 없는 내 편일 테니까 가끔 같이 놀아 줄지도 모른다.
우선은 마음을 바닥까지 몽땅 비워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조금은 아플 수도 있지만 '현타'를 잘 넘기면서 이 겨울을 나다 보면 머지않아 봄소식이 올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뭔가 아쉽다. 지금은 노느라 바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남은 인생에 마지막 임팩트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손대면 툭 깨질 듯 짙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몇 바퀴 허공을 맴돌던 솔개 한 마리가 고단한 듯 산자락에 내려앉는다. 둘레길을 따라 중무장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속도를 맞춰 걷는다. 시린 날씨가 반가운 듯 집집마다 보일러 연통은 하얀 김을 숨 가쁘게 내뿜고 있다. 사방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때 어떤 생각이 빛의 속도로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쳤다. 아주 반짝이는 생각 하나를 해낸 것이다.
"맞아, 바로 그거야!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