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환상을 가지고 있는가.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웃으며 왜 굳이 번역 일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긴 직업수명, 부가수익 창출, 프리랜서의 ‘프리함’에 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비관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의 꿈을 꺾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그저 애매하게 웃는다. 혹독한 현실을 알려주면서까지 누군가를 이끌어주고 싶다는 열의가 나에게는 없다.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저 마냥 좋은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말하지 못한 진심은 고이고 고여 응어리가 되고, 결국 마음의 병이 된다. 글을 읽는 사람은 나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 않기에 그들의 기분이 약간 상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이런 글을 찾아들어온 사람이라면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알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에 못다 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어 보려고 한다.
프리랜서는 과연 프리한가. 프리하다, 라고 대답하는 프리랜서는 분명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 너무 프리한데......?’라며 손발을 벌벌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프리랜서는 일을 한 만큼 돈을 번다. 일과 수입이 직결된다. 그러니 납품을 할 때마다 떨릴 수밖에 없다. ‘월급쟁이’들이야 퇴근하면 다음날 출근이 당연시되지만, 프리랜서는 납품 후 새 일을 받을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 일이 있으면 빠르게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음이 짓눌리고, 일이 없으면 일감을 따와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음이 짓눌린다. 출근이 없는 프리랜서에게는, 퇴근도 없다.
하루 한두 시간만 투자하여 월 백만 원의 부가수익을 창출하세요! 하루 네 시간만 일하고 월 오백을 벌어요!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의 강사들은 번역 업을 이렇게 광고한다. 평소에야 무심코 지나치지만, 지친 상태에서 자극적인 섬네일을 만나는 날이면, 나만 힘들게 돈 버나 싶어 박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저 사람은 정말로 비법을 가지고 있나 싶어서 결제 버튼을 향한 강한 충동이 튀어 오른다. 그럴 때마다 동료 번역가들에게 일러바친다. 일을 열심히 전문성을 가지고 잘하는 번역가들에게.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바보라서 이렇게 일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이토록 유능한 사람들도 모르는 비법을, 단돈 오만 원에 배울 수 있을 리가 없다.
직업수명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언어를 변환하는 직업이라는 면에서는 나이가 많이 들어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번역은 생각보다 체력과 건강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다. 시력저하, 손목 증후군, 불면증 등은 번역가들 사이에서 빈번한 질병이고, 디스크나 허리 협착증 때문에 일 년에 몇 달은 일을 쉬는 번역가도 종종 보았다. 게다가 온통 온라인 기반으로 작업 문서를 주고받는 탓에 컴퓨터 활용에도 능해야 한다. 영상이나 게임 분야는 어렵고 복잡한 최신 프로그램을 필수로 사용하고, 점점 더 많은 번역회사들이 자체 시스템이나 공유 방식을 가지기 시작해서 빠르게 익혀야 적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번역 업이 타 업종보다 수명이 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근데 번역, 왜 하세요?
나는 문학번역을 꽤나 즐긴다. 끊어낼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느껴지는 상쾌함이 있다. 마음에 꼭 드는 문장으로 바꿔낸 그 순간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하지만 가끔 업무가 너무 많고 힘들고 괴로울 때면, 헷갈리기도 한다. 번역하는 행위 그 자체를 진정 즐기고 있는지, 아니면 문학번역가라는 수식어가 가져다주는 이지적인 느낌에 도취되어 있는 건지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둘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취해버리기로 했다. 문학번역가라는 타이틀은 문학을 번역하는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꽤나 순수한 동기가 아니겠냐고 은밀히 반발한다. 어찌 되었든 그 기분에 취하기 위해서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견뎌내고 있으니까.
어쩌면 세상에는 나는 모르는 치트키가 존재할 수도 있다. 번역 업계의 누군가는 하루에 단 몇 시간만 일하고도 대단히 많은 돈을 벌면서 여유롭고 호화롭게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롭게 무언가를 꿈꾼다면, 그 일을 하는 모두가 느끼고 있는 면을 가지고 가늠해야 하지 않을까.
업계의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어떠한 보상을 바라보며 꿈을 꾸는 건, 자신을 너무 잔혹한 길로 인도하는 행위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