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있는 조기퇴진이라는 말장난
“질서 있는 조기퇴진”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정치의 지향을 떠나 이 혼란의 원인은 분명해 보입니다. 상식과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가장 형편없는 자에게 권력이 쥐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의 해결을 위한 방법은 법과 규율에 따른 절차의 조속한 진행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질서 있는 조기퇴진’ 운운하며 절차를 일시 정지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체적 정치 해석을 뒤로하고서라도 이 말은 언어도단에 가까운 말장난으로 보입니다.
질서(秩序)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혼란스러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 혹은 그것이 지켜지고 있는 상태 자체”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한자로 차례 질(秩)에 순서 서(序)를 쓰는 단어로 순리적 차례를 의미합니다. 차례라는 것의 대원칙은 선결되어야 할 것의 매듭과 그 후속의 시작에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질서를 유지할 방법은 조기퇴진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질서안정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다시 고쳐 말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조기퇴진으로 질서유지”
질서의 반대말로는 '혼돈(混沌)'이 있습니다. 이 말을 보아도 지금의 상황을 빗대어 볼 수 있습니다. 섞을 혼(混)에 엉길 돈(沌). 다시 말하자면 순리적인 차례를 헝클어뜨려 섞어 대고 엉겨 붙는 상태를 말합니다. 근원적 악의 해소가 목적인데도 다들 아전인수격으로 유불리와 이해득실을 따져 순리를 섞어 대고 차례에 엉기는 모습이 과연 질서 있는 수습일지 의문입니다. 법으로 규칙으로 가능한 대통령이라는 자의 직무 정지는 탄핵 아니면 하야뿐입니다.
우리나라 역사 중 어두운 면은 정치사의 영역이 많습니다. 그중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로 대통령이 정상적인 임기를 마무리한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임기 기수별로는 더 많습니다. 4.19 혁명으로 하야하고 5.16, 12.12로 내쫓기며 탄핵의 역사는 물론, 정당하지 않은 부정 선출에 의한 연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45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대통령제를 채택해 민주주의 국가로 존립하는 경우가 대한민국이 유일하니 대통령제는 분명 불완전한 통치채제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질서라는 말의 영어 단어 중 Cosmos가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주를 말합니다. 그 우주의 섭리를 말합니다. 별이 생성되고 사그라들며, 지구가 돌고 밤낮이 구분되고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자고, 생명이 생로병사를 겪고 영혼의 존재로 남는 것이 섭리입니다. 이 우주의 섭리에도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그 순서를 따르는 일이 이 우주에 티끌 같은 존재가 임해야 하는 소명이 아닐까 합니다.
기다림은 그저 멈추어 바라보는 일이 아닙니다. 순서와 차례를 따라 주어진 모든 것을 묵묵히 해 내는 준비의 일입니다.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 바로 기다림의 기본이 됩니다. 그 질서의 유지에는 선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그 일처리의 슬기로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번 일로 작게나마 우리의 우주에 좋은 영향으로 기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