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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Dec 03. 2024

대림, 기다림의 시간

웅이가 여니에게

누구나 기다림은 곤혹스럽고 무료하기까지 합니다. 간절히 기다림 그 자체로 이미 무언가 새롭고 변화된 날은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대림 시기가 교회력에서는 새해를 알리는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런 심신 가득한 이야기 끝에 모든 종교와 신앙이 융합, 교섭되는 마음을 품어 봅니다.


두어 해 전 강남에서 가장 큰 절에 갔더니, 동갑내기인 아내와 함께 삼재(三災)라고 하더군요. 저를 만나기 이전 불교에 깊게 뜻을 두었던 아내와 함께 초를 밝히고 만 원이나 들여 부적을 지갑에 넣고 다녔습니다. 올해가 삼재 마지막 해인데, 마지막 몇 날이 여전히 비루하기 끝이 없기에 낙심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중 또 월요일이 되어 병원에 새벽같이 갔습니다. 병원 성당에 아직 주인은 없지만 그럴듯한 구유가 놓여 있었습니다. 네 '대림절'이 시작된 것이지요. 대림은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서울 성모 병원 성당 앞 구유


교회력으로 대림(待臨 , Advent) 시기는 새해의 첫번  주간이자 기다림의 시기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4주간을 그리스도교회에서 대림 시기라 이르지요. 어원인 adventus가 ‘온다’라는 뜻에서 옛날에는 강림(降臨)이라 일컫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강림보다 대림이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 구세주가 되었든 기다리는 임이 되었든, 내려오는 강림의 행위가 주체가 아닌, 그것을 기다리는 이 땅의 사람들의 기다림이 주체가 되는 말이라 느껴져서 그러합니다.


예수의 탄생은 정작 예수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는 환영받지 못하기는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가지입니다. 기독교 국가의 최우방 유대인들의 종교에서는 예수를 사기꾼으로 단정 지었고, 예수 고향에서는 예수의 먼 조상의 한 갈래에서 나온 이웃종교와 여전히 의미 없는 전쟁 중이니까요. 그런 예수의 생일을 기다리는 마음은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 캐럴로 의미 변절된 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의 탄생과 그 후 변모와 십자가의 부활을 기대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양말 가득한 선물과 빨간 날이 주는 잠시의 현실 도피성 도취를 바라는 것일까요.


저마다 기다림이 다르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고만 고만한 행복을 넘어 나름의 고통을 특별한 날의 기쁨과 환희로 지울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특별한 날이 아닐까 합니다. 이 기다리는 자리의 묵상과 생각을 끄적여 낼까 합니다.


무엇이든 기다리는 사람들의 쉬어 가는 자리가, 그 쉼표로 다시 걸음걸음 걸을 수 있는 아주 미소한 응원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기다리는 무엇이 이미 다가왔음에도 알아 채지 못한 자 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긴 기다림 속에 작은 결실 하나 이루어지는 대림을 기대합니다.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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