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묵상 01
인류 역사상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른
로마제국 사람 중 의외의 일인은
이 사람일 것입니다.
Pilate Pontius (본시오 빌라도).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더라도 불행에 빠지게 될 것이 뻔해 보이는 경우에 우리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한다. ‘딜레마(Deilemma)’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di(두 번)와 lemma(제안 ·명제)의 합성어로, 진퇴양난(進退兩難) ·궁지(窮地)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원래는 삼단논법에서의 특수형식을 일컫는다.
어느 쪽을 취해도 나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증명하는 강한 주장의 논법 중의 하나다. 논거의 논법을 모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딜레마’의 선택지에 마주 설 경우가 없지 않아 많이 있다. 선택지는 두 가지뿐인데 두 가지 중에 무엇을 선택하든 내게 완전한 행복이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딜레마에 빠진 사화나 인물들은 참 많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딜레마가 ‘빌라도의 딜레마’일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라 자처하며 군중들을 선동하는 나사렛 사람 예수를 재판에 세운 로마 파견 총통 본시오 빌라도의 딜레마는 인류 최대 사건이라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가려져 있는 한 속물적 인간의 전형적 고뇌를 이야기한다.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문건으로 그 고뇌와 딜레마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도 있는데, 이렇다 할 위법사항을 찾지 못해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자니 무고한 사람에 대한 괜한 핍박이라 생각이 들고, 그를 방면하려 하면 예수를 이용하여 입지를 다지고자 하는 토호세력인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가이들의 저항이 두렵다.
십자가에 처하든 방면하든 빌라도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은 어느 하나 없어 보인다. 그래서 빌라도가 취한 얄팍한 결론은 대중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이다. 살인 도적 바라빠와 예수 중에 누구를 십자가형에 처할 것인가 본인이 결정하지 않고 대중들에게 묻는다. 그리곤 예수의 처형을 본인의 결의가 아니라고 여기며 손을 씻는다. 실제로 물을 받아 손을 씻고 만다.
예수를 심문하다 죄를 입증할 수는 없고
유대인들의 대중 광기를 꺾을 수도 없던 그는
스스로 결정자에서 한 발을 빼고 만다.
대중의 바람대로 대도 바라빠 대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로 결정하고 나서 그가 한 행동은 그저
손을 씻는 것이었다.
때로는 눈감고 불의를 회피하고 묵인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을지도 모른다. 쓴소리가 유일한 덕목이었는데 어느 순간 피드나 글들에 겸양인척 눈치가 늘었다. 도움과 응원을 구걸하는 처지에 시시비비를 따지는 모습이 이해득실에 맞지 않아 보였다. 참 못났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핍박받는 선의를 나몰라 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비겁한 손 씻음이 없는 삶을 바라며 사순을 보낸다.
*대문 그림 설명:
안토니오 시세리의 '에케 호모'(이 사람을 보라).
빌라도(그림 가운데)는 좌측의 예수를 군중들에게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