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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카니발 (Carnival), 사순

사순의 시작, 부활을 기다리며

by 박 스테파노

오늘이 2025년의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의 시작 '재의 수요일'이다. 부활도 성탄처럼 매년 찾아 오는 연례의 행사가 된지 오래지만 믿음 강한 이들은 이 사순을 더 뜻깊게 보내기 마련이다.


재의 수묘일 전례 (사진=GoodNews)


'재(灰)'의 수요일은 말그대로 타고 남은 잔여물인 재(Ash)를 말한다. 가톨릭 전례예식 중 사제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라고 명하며 신자들의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재를 얹는다. 인간의 유한함과 그 티끌만큼의 인생에서 죄를 짓고 사는 모두에게 내리는 일침의 환기다. 수난주일의 예수의 귀향 환대의 종려가지를 상징하는 성가지를 가정에 배부하여 십자가 고상에 걸어 두는데, 거의 일년 후 이를 수거하여 태워 재를 만든다. 한 해의 모든 행동과 사유를 재와 함께 뒤돌아보고 회심하는 의미다.


엄숙한 전례도 있지만 서구 기독교 문화에서는 보통 사순전 '카니발'을 행한다. 그저 축제의 의미가 아니라 고행 전 마지막 기쁨과의 작별의 의식으로 해석하는 이 의식은 생각보다 의미 깊다. 바흐찐의 '카니발 이론'을 살짝 엿본다면 이 카니발의 의미에 대한 실체적 고민이 앞서야 한다. 현대 문학의 근간인 후회, 반성, 회심과 자성의 근본이 이 카니발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몇해 전 카니발 관련 글을 올리며 올 해의 사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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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동정에 유럽권의 ‘카니발(Carnival)’의 모습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사순시기가 다가옴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카니발은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사순 시기 직전 3~7일에 걸쳐 행하는 축제기간을 이르는데, 사육제(謝肉祭)라고도 부른다.


본래 '고기'를 뜻하는 Carne와 '안녕, bye'를 뜻하는 Vale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예수가 광야에서 40일(사순)간 단식한 것을 기려 부활절 전 40일(주일 제외)간 금욕하였는데, 이를 기리는 사순시기에 일상생활 속에서 속죄와 회개를 실천하면서 금욕, 금육, 단식(절식)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사순 시기에 돌입하기 직전 며칠간 방탕하게 즐기는 축제를 연 것이 카니발, 사육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Carne Vale, 즉 고기여, 안녕!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란다.


재미 있는 것은 카니발을 번역한 '사육제'는 고기를 사양한다, 즉 고기와 굿바이 한다는 뜻이라는 점이다. 고기와 작별하기 전에 실컷 고기를 먹어치우는 축제가 카니발이다. 이별전 뜨거운 포옹이랄까.


서양에서 카니발은 연례적으로 예수의 고난을 기념하는 사순절 직전에 치러진다. 사순절에는 금식, 회개, 경건, 자기 반성 등에 힘써야 한다. 카니발은 사순절을 견디기 위해, 겨울잠 준비하는 곰처럼, 지방질을 비축하고, 울기 전에 실컷 웃어두자는 축제다. 내일은 없다는 식이다.


고기살은 참 좋은데, 그 좋은 것과 잠깐이지만 작별을 고하는 아쉬움이 카니발의 정서랄까. 금연을 결심하고 마지막 빨아보는 담배 맛? 금주를 맹세하고 마지막으로 따라 마시는 소주 한 잔? 좋은데 좋다고 못하고, 싫은데 싫다고 못하는 이 애매모호함, 바흐친은 카니발은 기본적으로 양가적이라고 한다. 고기를 사절하는 축제에 일년 중 가장 많은 고기가 소비된다.


그렇더라도, 카니발은 고기를 찬양하고, 고깃살에 코를 박는, 그래서 금욕주의를 조롱하는 것은 아니다. 카니발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 권위를 조롱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바흐친에 의하면 그런 것은 카니발에 대한 "천박한 보헤미아적인 이해"일 뿐이다.


정교일체의 중세 기독교국가에서 농노와 소작민들에게 귀해서도 못 먹지만 영양분이 되는 단백질 고기와 노동 윤활유의 주류섭취의 금기는 참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유발하였을 것이다. 아마 이런 응축된 스트레스의 폭주를 막기 위해 일종의 ‘금기 해방의 날’을 만들었을 것이다. 영화 <퍼지>처럼, 유신시절 크리마스 통행금지 유예처럼.


바흐친은 요란스럽고 무질서한 카니발에서 상생과 공존의 원리를 이야기한다. 거꾸로 된 세상은 극적으로 대립하는 것들의 공존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사실 카니발은 시간적으로 연중 가장 무거운 고난의 시기인 사순절과 이어져 있다. 카니발이 보여주는 무질서의 극담에는 곧이어 지는 사순절의 참회와 극기가 내포되어 있다. 같은 원리에서 모든 부정적인 의미는 긍정적인 의미와 경계를 마주한다. 카니발은 긍정하기 위해 부정하고,존중하기 위해 조롱하며, 올라오기 위해 내려간다.


카니발 속에서 삶은 죽음을 내보이고 죽음은 또 삶을 인다. 그래서 바흐친은 카니발적인 세계관의 핵심을 '교체와 변화,죽음과 갱생의 파토스'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카니발은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부활과 갱생의 축제라는 것이다.

카니발, 사순 (사진=ste)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늘 카니발 중이다.

테마파크에서는 연중 카니발 중이고, 언론은 일어나지 않을 위기에 대해 말잔치로 덮어쓰고 있으며, 성찰보다 만족이 앞장서는 일상은 늘 고된 축제중이다.


요즘 ‘등가의 법칙’이란 말이 유행이다.

받은 만큼 내어 놓게 되어 있다나? 40일 간의 고행에 등가를 주려 7일 간의 축제에 금기의 해제를 허용한 것일까? 등가의 법칙의 내면에는 ‘가치의 교환’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면의 계약이 있다. 등가의 계산을 위해 가끔 우리는 구간 구간에서 자기만의 계산기로 두드려 적자 만히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등가로 교환되는 가치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찌보면 양가성(兩價性:ambivalence)이 용인되기 힘든 양자택일의 선택만을 강요받으며 살아 온 것 아닐까?


Carnival이 Cannibal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사순을 기다린다. 사족으로 Carnival과 Cannibalization, Cannibalism과 혼동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사육제의 carnival과 동종식이나 식인을 뜻하는 cannibal은 전혀 다른 말이다. 누군가 용감하게 시장잠식과 적대적 인수합병의 cannibalization을 이야기하면서 카니발 축제의 무질서와 소란에서 유래했다 용감하게 설명하는 이야기를 듣고 웃지 못해 슬펐던 기억이 났다. 무려 대학교수의 이야기였다. Cannibal은 carib에서 유래한 어원임을 인지 못했다는 것.


어찌 되었든 무식과 다식은 양가적일지도 모르겠다.

카니발 다음의 정제된 회개와 고뇌의 시간이 오듯,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이 시대의 접경에 보다 반성과 성찰의 의미된 날들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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