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드라마 <서초동> 6화 '따뜻한 말 한마디'
드라마 <서초동>은 젊은 변호사들의 일상을 담담하고 소박하게 그려낸다. 기존의 드라마에서 변호사는 대개 재벌과 권력에 기생하는 해결사이거나, 거대 로펌에서 회사를 분할·매각하며 능력을 과시하는 엘리트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 방영 중인 <서초동>은 이러한 관습적 서사를 정면으로 비껴간다.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이상화된 이미지가 아닌, 일터에서 몸을 움직이는 노동자의 삶으로 재현하면서, 거창하지 않지만 당사자에게는 절실한 송사들의 겉과 속을 정교하게 엮어낸다.
이 드라마의 서사는 다섯 명의 또래 변호사들의 일상으로 이루어지며, 주형(이종욱)과 희지(문가영) 사이의 우연인 듯 필연 같은 러브라인이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이 전형성을 무너뜨리는 힘은 각 에피소드에 배정된 사건들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의뢰인과 참고인의 삶, 그리고 다른 변호사들의 은밀한 속사정에 있다. 변호사라는 동일한 직함 아래서도, 그들의 내밀한 현실은 제각각이다.
사법시험 세대의 대표 변호사나 연차 높은 파트너들과 달리, 어쏘(associate, 일종의 페이 변호사)들은 대부분 로스쿨 출신이다. 이들에게 ‘별산’ 파트너가 되거나 독립을 도모하는 일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큰 변화 없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그 반복은 굴레라기보다는 오히려 평온한 동일성을 부여하며, 그 안에서 ‘그저 한 사람으로 존재하길 원하는’ 지금 시대의 우리 자신과 닮은 얼굴을 지닌다.
문제는 그 누구나가 ‘저마다의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에 터져나온다. 헤어진 연인을 상대로 이혼 조정을 진행하는 주형, 돈 많은 의뢰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구치소로 출근 도장을 찍는 창원(강유석), 변화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임신 사실과 마주한 문정(류혜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눈치채면서도 끝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희주까지. 변호사라는 위치와 처지는 엇비슷하지만, 그들의 사연은 모두 다르다.
특히 6화의 중심은 ‘봄의 정령’이라 불리는 상기(임성재)의 이야기다.
‘봄의 정령’, 침묵의 계절 봄이 오기 까지
각자 근무하던 법인과 법률사무소가 건물주 형민(엄혜란)의 제안으로 외형상 합병된 이후에도,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의 시선이 상기에게 집중되기 시작한다. ‘로스쿨의 음서제’를 비판하는 기사 속 인물이 상기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퍼지고, 그가 거대 재벌 ‘한국그룹’의 장남이라는 소문까지 번진다.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재벌 2세라는 의심이 쏟아졌지만, 상기는 묵묵히 침묵할 뿐이었다. 특히 한국그룹의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창원은 혼란과 배신감에 휩싸인다.
결국 그 모든 의혹은 이름이 비슷한 로스쿨 동기와의 오인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드러난다. 이쯤 되면 시청자들 역시 답답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진작 ‘아니라면 아니다’라고 해명했더라면 불필요한 오해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그 오해의 진실은, 상기의 고백이 담긴 게시글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그 글에는 왜 그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상기의 대학 시절 별명은 ‘봄의 정령’이었다. 봄이 되면 학교에 나타났다가, 가을이면 자취를 감췄다. 다시 다음 해 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상기는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흙수저’였다. 잘하는 것이라곤 공부뿐이었지만, 늘 문제는 등록금이었다. 봄학기를 마치고 여름엔 일터로 나가 돈을 벌어야 다시 봄에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그렇게 노동자와 학생을 오가며 8년에 걸쳐 겨우 대학을 마쳤다. 주위의 도움과 로스쿨이라는 제도 덕분에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침묵한 까닭은 단순하다. ‘가난을 증명해야 사는’ 삶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가슴이 조여온다. 그의 묵묵부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이가 있다면, 아마도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가난을 증명하며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이 세계는 손을 내밀기 전에 먼저 증명부터 하라고 한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얼마나 더 밑바닥인지 보여야 겨우 장학금이든, 보조금이든, 지원금이든 받을 수 있다. 증명하는 일이 곧 생존의 조건이 되는 세계.
프랑스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은 자전적 회고록 『랭스로의 귀향』에서 자신이 노동자 계급 출신임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숨죽여 살아왔는지 고백한다. 파리 지식인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그는 계급적 뿌리를 지우려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토로한다. “나는 계급을 떠났지만, 계급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 고백은 상기의 침묵과 정확히 포개진다.
가난은 단지 물질적 결핍만이 아니다. 말을 앗아가는 감정의 상처이기도 하다. 말할수록 다시 증명해야 하고, 증명할수록 수치심이 따라붙는다. 그렇게 감정은 꾹꾹 눌러진 채로 층을 이루고, 끝내 자기검열과 고립의 습관을 만든다.
상기의 침묵은 자기연민이 아니다. 말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구조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었다. 그는 그저 더는 증명하지 않기로, 침묵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가난을 증명해야 살아내는 시간들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근면과 몇 번의 기회 덕분에 우리 집 살림은 또래에 비해 넉넉한 편이었다. 용돈이 좀 모자랄 때가 있었지만, 궁핍이라는 단어는 삶의 언저리에서 멀찍이 있었다. 국민학교 무렵까지는 대여섯 식구가 계단 밑 단칸방에서 지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하나, 다행히 그 시절의 기억은 또렷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년 시절을 비교적 밝고 신나게 통과했지만,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집안의 가계는 무너져 내렸다. 부친의 연대보증 문제로, IMF가 오기도 훨씬 전, 우리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추락했다.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부친은 사업체 부도로 지명수배자가 되어 도망자가 되었다. 모친은 그 책임을 자신 명의로 사업체를 두지 않았던 부친의 고지식함으로 돌리며, 강남의 30평대 아파트로 피신하듯 거처를 옮겼다. 형은 당시 수도회 신학생이 되어 가족의 곤란으로부터 잠시 벗어난 상태였다. 나는 압류 딱지가 빼곡히 붙은 집을 점유하며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소주를 나누고 돌아오는 밤, 대문 앞에서는 수배 전담 형사가 고생 많다며 담배를 건넸고, 채권자들은 전기와 난방을 끊으며 나의 자진 퇴거를 종용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청춘이라는 이름의 희망이 있었고, 괜찮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자의식도 버틸 수 있는 근거였다. 차비가 없어 친구 자취방을 여인숙처럼 드나들었고, 옷은 동네 의류수거함에서 괜찮은 것을 통장 아주머니가 골라 건네주셨다. 대학 이름 덕분에 과외는 끊이지 않았고, 목동 신시가지의 학원에도 출강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각종 고지서를 처리하고 부모의 도피 비용 일부를 보태고 나면, 등록금은 늘 뒷전이 되었다. 그래서 학점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장학금은 절실한 목표였다.
문과대학이었기에 기업과 연계된 장학금은 없었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일반 장학금을 신청해야 했다. 성적이 가장 기본 조건이었지만, 그다음은 가계 형편이 주요한 심사 기준이었다. 학교는 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학생에게 우선순위를 두려 했지만, 그 판단을 위한 증명의 몫은 오롯이 학생 본인에게 맡겨져 있었다. 말하자면,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입증하는 일이었다. 구청과 시청, 국세청과 법원을 오가며 내가 처한 상황의 증거들을 모아야 했다. 부모가 등록금을 낼 수 없음을, 집안의 재산이 남김없이 사라졌음을, 회복의 가능성이 아득함을 문서로 남겨야 했다.
그때 처음 실감했다. 가난은 단지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증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결심했고, 치열하게 버텨냈다. 졸업 후에는 내 집을 마련하고, 내 차를 운전하고, 메뉴판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할 수 있는 일상에 도달했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가늠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찾고자 했던 여정의 도착지였다.
또다시 선별되는 ‘나의 가난’
십 수년 전, 서울시장이 아이들 무상급식 문제를 두고 시장직을 걸었다가 결국 사퇴한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해 보궐선거가 치러졌고, 나는 그때 시민정치에 직접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의 바탕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가난을 증명해야만 하는 파국의 처지’를 경험했던 기억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과연 세상은 변했을까? 내 대답은 단호하다. ‘아니다.’
최근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이 시작되었다. 자영업자들의 회복을 위한 소비 진작책임에도 불구하고, 실행 직전부터 ‘퍼주기식 시혜’라는 거친 반대에 직면했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얼핏 보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누가 더 가난하고 더 힘든지를 서로가 증명하고 또 증명되어야 한다는 ‘선별’의 요구는, 시스템 주변부에 놓인 약자들에게 또 하나의 폭력이다. 이것은 마치 수확한 과일 중에서 상품성을 판별해 파과를 걸러내는 일과 다름없다. 다만 예전에는 손으로 했던 일이, 이제는 데이터 자동화 시스템이라는 기계 장치로 전환되었을 뿐, 그 구별짓기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에서 현대 사회가 어떻게 감정마저도 자산처럼 거래하고 관리하는 체제로 전환했는지를 통찰한다. 감정은 더 이상 순수한 주관적 경험이 아니라, ‘도움을 받을 자격’이라는 자격의 구조 안에서 평가되고 서사화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고통이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증명’하고 ‘합리화’할 수 있는지가 결정적이다. 슬픔과 절망마저도 정형화된 서류와 절차를 거쳐야만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대에서, 감정은 불평등하게 배분된다. 누군가의 감정은 공감받고, 또 다른 누군가의 감정은 서류심사에서 반려된다. 선별은 물질적 문제를 넘어, ‘감정의 정치’가 되어버렸다.
나 역시 그러한 선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차례 금융 사고로 인한 누적된 채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생계 불안, 그리고 백혈병이라는 육체의 병마까지 더해져, 삶은 끝없이 궁핍했다. 주위에서는 공식적인 도움을 청하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그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궁핍의 증명’이라는 잔혹한 시스템 앞에서 매번 실패했기 때문이다. 시스템 속에서 존재하는 채권과 채무는 내게 ‘자산’이 되었고, 나의 불안정한 현실은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기묘한 존재로 등록되어 있었다.
이처럼 ‘가난의 증명’은 단순히 경제적 현실의 표출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사회적 제도의 산물이다. 그것은 내가 겪는 고통의 실체를 오히려 왜곡하고, 끝없이 반복되는 선별의 굴레에 나를 가두는 감옥과 같다. 내가 ‘진짜로’ 가난한 사람임을, ‘진짜로’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회는 그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궁핍한 이들의 삶을 더욱 고립시키고, 삶의 재건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가난을 증명해야만 하는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모순으로 직시해야 한다. 경제적 결핍을 넘어, 감정과 존엄이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선별되는 이 ‘증명의 정치’에 맞서, 진정한 연대와 포용의 공동체를 모색해야 한다. 그 시작은 ‘가난한 자의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나, 그 고통 자체를 온전히 인식하고 수용하는 사회적 태도와 제도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누군가의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가난한 이들의 고통이 문서와 숫자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는 그날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