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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Oct 27. 2023

<마스크걸>과 <무빙>, 서사와 캐릭터의 그 사이

서사는 결국 인물을 이야기한다

1.

최근 콘텐츠들의 종류를 불문하고 길고 깊은 이야기를 기피하고 자극적이며 소비적인 캐릭터, 즉 인물에 집중하는 경향에 대한 존경하는 선배의 단상을 읽고 생각을 거듭해 보았다. 서사가 사라지고 캐릭터가 앞장서는 스토리텔링의 시대라는 의견에 많은 부분 동의가 되었다.


그런데, 무릇 서사는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인물은 서사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다. 서사는 인물을 특정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이야기꾼의 고뇌와 노력이다. 어느 편이 더 도드러지는가의 경향은 있지만 결국 이야기라는 세계는 이 둘을 갈라 설명할 수는 없을 듯하다.


2.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은 웹툰 기반의 드라마 시리즈다. 굳이 장르적 정의를 내리자면 '잔혹 복수극'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붙이기 힘든 이유는 잔혹한 복수극 앞에 '단순한'이라는 수식이 붙어 마땅하다는 생각에서다. 원작에서의 캐릭터가 매만져서 다소 아쉬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의 플롯과 서사는 단순하고 조악하다.


사회에서 자의든 타의든 고립된 인간의 무차별적인 사적 복수를 담아낸다. 이야기는 그뿐이다. 에피소드를 모미, 미모 등 인물로 구성하여 빈약한 서사를 메우는 작화적 노력을 했지만, 서사는 시놉시스 한 줄로 마무리할 수 있다.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의 드라마, 영화화가 되는 트렌드의 단편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빈약한 이야기를 캐릭터의 부각으로 채우려 한다. 아니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배우의 연기에 도박을 거는 느낌이 강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


3.

그렇다고 <마스크걸>을 재미없게 관망했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요'다. 생각보다 몰입감이 있었다. 그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인적으로 '그로테스크'에 있었다. 음산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하는 것은 디렉팅의 능력이기도 하고, 그것에 잘 녹아든 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서걱서걱', '푹푹' 대는 하드고어적인 묘사도 참 오랜만에 시원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딱 여기까지였다.


베이컨이 말했듯이 '복수는 가장 야생의 것'이라는 복수의 플롯에 충실한 점. 그 점이 유일한 이 작품의 끌림이었다. 아무리 캐릭터 각각에 스포트라이트를 세게 비춘 들, 약한 서사의 힘은 그들을 '뻔한 캐릭터', 즉 '프로토타입'으로 만들 뿐이다. 이야기가 사라지는 요즘의 문제다.


4.

<마스크걸>과 마치 맞은편에 서 있는 것 같은 작품이 있다. 바로 디즈니플러스에서 스트리밍 하는 <무빙>이다. 이 드라마에 대한 흔한 평은 '뻔한 전개'라는 이야기들이다. 이야기의 서사구조가 뻔하고 흔하다. 고전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이들이라면 알 수 있는 '영웅 신화'의 플롯을 고담하고 있다. 탄생의 비밀-고난의 성장담-모험과 퀘스트-그리고 세평과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신화적 구성이 모범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드라마 <무빙>의 장점을 꼽으라면 바로 이 '뻔한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뻔하지만 몰입하게 되는 이야기는 서사의 힘이 있다 수십 세기 동안 증명되고 온갖 비평에 살아남은 이야기 구성, 서사의 플롯은 여간해서는 배신하지 않는다. 이번  시작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2' 나온 진짜 스트릿 크루 WolfLo 리더 할로가 자신들에게 '올드'히다는 평가를 다른 크루에서 하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올드랑 클래식을 구분도 못하는 애들에게 클래식이 무언지 알려 주어야겠네!"


5.

<무빙>의 원작은 1세대 웹투니스트이자 웝툰의 붐을 일으킨 시조라 할 수 있는 강풀의 작품이다. '강풀. com'을 매일 방문하던 묶은 팬심이 크게 작용했을지 몰라도 <무빙>은 올해 작품 중 가장 애정이 간다. 팬심이나 소구 되는 분위기일지 모르지만 가슴에 담아 두고픈 이유는 강풀의 작품 기저에 흐르는 '휴머니즘'이 아닐까 싶다.


무빙은 강풀 작품에 등장하던 남다르지만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돌연변이들을 집대성했다. 이 남다르고 이상한 녀석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힘이 있기에 사회질서를 기득 했다고 믿는 부류들에게 그저 '괴물'로 다가설 뿐이다. 그들이 살아갈 방법은 그 괴물들이 필요한 인간 욕심에 편승하는 것뿐이다. 휴머니즘은 이 갈등과 부조리의 경계에서 일종의 동조의 감동, 즉 무빙을 준다. 독특한 외톨이들이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가장 뻔한 이야기를 쏟아 낼 때 묘한 울림을 주는 것.

디즈니플러스 <무빙>


6.

<무빙>도 캐릭터의 에피소드를 부각하며 뻔한 서사의 고루함을 덮는 것이라는 비평도 일견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은 정반대다. 뻔하지만 아직 까지 통용되는 것을 보통 '보편적이고 공번된 가치'라고 이야기한다. 기독교의 구교 '가톨릭'의 말 뜻이 바로 이 보편적 공번성에 있다. 흔하지만 여전히 각자에게 소중한 가치 사랑, 평화, 평등, 자유 등이 이에 해당되고 고루하더라도 여전히 인생사에선 정답이 될 확률이 높지 않은가.


드라마 <무빙>의 이번주 공개된 에피소드는 ep10의 <괴물>과 ep11 <로맨티시스트>다. 사람들과 세상에 손가락질괴 두려움의 대상이 된 '구룡포' 주원의 탄생비밀괴 성장의 이야기다. 괴물인지 영웅인지 백지 한 장 차이의 가름은 그들의 존재기 아니라 결국 타인과 사회의 낙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호한 초인들은 결국 인간의 보편 되고 공번된 가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이 드라마가 캐릭터가 아닌 서사가 중심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뻔하지만 늘 옳은 것이 있지 않은가. 바로 '사랑'같은 것 말이다.


<무빙> ep.11에 괴물 회복력을 지닌 주원은 다방레지 지희를 맘에 품는다. 주원이 읽는 무협지와 매일 틀어 놓는 프로레슬링에 대해 지희가 '치고박고 싸우는 것만 좋아하냐'묻자 주원은 대답한다.

"헐크 호건이 이겨요. 착한 사람이 이기는  프로레슬링이에요. 헐크 호건은 착한 사람이에요."
"무협지는 그냥 싸우는 것이 아니에요. 로맨스에요. 싸우다가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랑하는 것으로 결말이 이어져요. 사랑 이야기에요."


7.

미국 코믹스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추억의 한편에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슈퍼히어로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을 터다. 쫄쫄이 바지에 원색적인 팬티를 덧입은 채 망토를 걸치고 포마드 기름 한가득 쳐 바르신 영웅의 등장이나, 저걸 입고 뛰어다니기나 하겠나 싶은 시커멓고 육중한 가면에 방탄 슈트를 입은 갑부의 출동에 우리는 한때 열광하고 환호하고 했었다. 어찌 보면 유치 찬란한 공상에다가 마초적 욕구의 표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만 나이’와 ‘미국 나이’ 들먹여도 쉰을 넘어가는 내 나이에 가끔은, 아니 이따금, 어쩌면 빈번히 그들과의 조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때때로 마음 한편 깊숙한 곳에서부터 이 갑갑한 세상에서 나를 번쩍 들어 올려줄 초인적 영웅을 기대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꼭 신축성 만땅의 쫄쫄이와 망토를 휘날리며 하늘을 날거나, 도로교통법에서 허락하지 않을 엄청난 스펙의 비이클을 타고 질주해야만 영웅은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쉽게 주변에서 우리는 수많은 슈퍼히어로를 만들어 내고 그들을 평가하고 때로는 그들의 신비스러운 망토를 벗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참 뻔한 이야기지만 이 세상과 조응하기 때문이다.


8.

‘비범(非凡)함’에 대한 동경은 원초적인 것이다.. 야생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성이 개입되기 이전의 본능적인 것이다. ‘비범’하다는 단어의 뜻은 사전적인 의미로 ‘보통 수준보다 훨씬 뛰어나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반대말로 ‘평범’이라는 말이 배치된다. ‘비범’함과 가까운 말은, 그 문장의 의미적 해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비상’함, ‘특이’함, ‘불범’, ‘이륜’이라는 보다 좁은 의미의 단어다. 그중 '별안간 튀어나온 별종'이라는 의미의 '돌연변이'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비범’함이라는 것은 평균적인 기대 이상의 성과나 능력을 나타내는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비범함의 기준이 될 평균적인 기대라는 것은 절대적이고 합리적인 것인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비범’이라는 단어에 대한 단편적 고찰은 자칫 이 사회와 인류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 위험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혹 이 ‘비범’함을 ‘우수’, ‘양질’, ‘절대적 선’, ‘정답’, ‘이상’과 혼동되어 사용하는 해석의 오류는 사고와 행동의 왜곡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위태로운 선택인 것이 된다.


반대로 정상과 비정상은 굳이 선 그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강풀 만화의 초기에서 '비범한 사람'은 보통 바보, 천치, 장애인, 외톨이로 그려졌다. 그저 그들의 특이함으로 평균이 이하의 부류라는 낙인을 찍는 기득의 '노멀리즘'이 작용한 결과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구분하는 자들은 어쩌면 '특별함'에 목을 맨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어렵지 않게 수긍이 가는 말이 된다. '능력주의'가 세상의 유일한 '공정'이라 우기는 세력들에게 소위 능력의 기준 '스펙'은 매우 중요한 변별력을 가진다. 이 '스펙'이라는 단어 'Specification'의 어원과 어근은 '스페셜(special)'과 동일하다. 스페셜은 노멀의 반대말이다.


9.

<무빙>을 보다 보면, 할리우드 마블스코어 영화 [엑스맨] 시리즈가 생각났다. 엑스맨 시리즈의 키워드는 '변종 (Mutant)', '절대선(善)', '비범', '소수와 다양성'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 이야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엑스맨 : 더 퍼스트 클래스]는 이 ‘비범한 변종’들의 집단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한다.


‘매그니토’와 ‘프로페서 X’로 대표되는 돌연변이 초능력자들의 지향하는 세계관의 갈림이다. 영화는 절대적 기준이라는 것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에 대하여 전달하려 하고 있다. 선과 악의 분절을 말하고, 본질과 형상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시작과 지속의 분리를 보여 주려 한다. 그러한 주장의 예로 인류의 진화에 있어서도 호모 사피엔스라는 다수의 ‘범종’이 당시의 ‘변종’이었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생존 경쟁의 우위로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동등한 기회가 있었다면 진화라는 섭리의 세상에서, ‘평범’과 ‘비범’은 분리된 영역에 서 있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아마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국 영화는 비범한 우월성으로 그간의 차별을 복수하려는 ‘매그니토’ 일당과 평범한 다수의 대중에게 인정받아 공생하는 돌연변이로 살려는 ‘프로페서 X’ 집단으로 갈라놓고 만다. 결국 비범함과 평범함이라는 것은 능력의 우수함에 대한 절대적 평가의 분류가 아닌, ‘내가 갖지 못한 부러운 무언가’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기준에 따라 입장을 바꾸기도 하고, 헤쳐 모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다양하다고 이야기한다.


둘 중 하나라는 이분법적, 양자택일적 사고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큰 그림인 다양성이 보이기 어렵다. 다양성이 매몰된 대중에게 비범한 누군가의 등장은 이채롭고 신비로운 것이다. 그것도 그들이 ‘내 마음’ 대로 선택된 존재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엑스맨: 더 퍼스트 클래스>


10.

<마스크걸>은 다양한 존재들의 평범이라는 실재 하지도 않는 가치 기준에 대한 모호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러한 고발의 배후에는 선과 악이라는 것은 원래 모호한 것이며 바라보고 서있는 자리에 따라 가치판단이 달리질 수 있는 세태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주목할만하다.


반대로 <무빙>은 가치판단하기에 복잡하고 헝클어진 세상에서도 결국 빛나는 보석은 보편 되고 공번된 가치, 휴머니즘이라고 이야기한다. 우정, 사랑, 헌신, 감사 같은 가치는 단어 진체로 고루한 오래된 것이라고 치부되는 세상에 주는 일침같이 느껴진다. 결국 사람의, 사람에 대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가 살아남을 때 인생이라는 과대망상을 버틸 수 있다고 말해 주는 듯하다.


이 세상은 나보다 비범한 사람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헌신과 기여로 인해 발전한다. 그들의 비범함은 그들보다 우월하지 못한 사람들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비범한 능력이 각각 개인의 본연적인 인성보다 우월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헌신적 우월함에 우리는 투표도 하고 지지도 하고 인정도 하는 것이다. 그들은 때로는 정치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검찰과 경찰의 모습으로, 때로는 재벌과 기업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한류(인정하기 싫지만)를 이끌어 가는 아이돌의 모습으로, 그리고 가끔은 나 스스로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의 역할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이지 그들의 쫄쫄이 빤스와 망토가 아닌 것이니까.


 비범한 이들은 <무빙> 등장인물들처럼 우리 일상에 이미 함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돌연변이, 괴물이라고 부르는 그들이 우리의 일상의 가치를 버티어 주는 진짜 영웅들이 아닐까.  서사를 찾아 희망과 다짐을 주는 이야기가 늘어났으면 싶다.



<마스크걸>은 넷플릭스, <무빙>은 디즈니플러스가 스트리밍 하는 지점도 재밌다. 트렌드와 클래식, 잔혹동화와 순정만화의 대척이랄까.


짧은 생각들이 늘어졌다. 이야기를 보며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직은 집중할 에너지가 없다. 느지막이 나의 이야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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