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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Jun 19. 2024

[근황업데이트] 호중구야 일어나라

2차 항암의 새로운 고비

죽을 것 같이 힘들게 사는 것이나 죽을 각오로 살아 내는 것은 서로 등을 맞댄 동전과 같아 보입니다.


2차 항암제를 최고 용량으로 4주간을 보내고 유전자 검사를 위한 채혈을 했습니다. 유전자 수치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니 하루하루 기대와 불안으로 보낼 듯합니다.


고용량의 약은 표적 치료라 해도 혈액학적인 부작용을 유발합니다. 백혈구 수치가 하한에 겨우 턱걸이인데 문제는 호중구입니다. 백혈구 내에서 면역, 감염을 담당하는 전위대인 호중구 수치가 800으로 지난번보다 30% 정도  떨어졌습니다. 보통 1,500 이하면 항암 주의가 되고 1,000 이하면 중단 고려, 500 이하면 중단을 하게 됩니다.


800의 수치를 마주하고 담당 교수가 짧은 고민 후 밀고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혈소판도 수혈 후 하한인 50,000에 겨우 턱걸이했지만, 우선 유전학적 의미 있는 결과를 보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었다 하더군요. 다음 주 유전자 수치가 의미 있게 떨어지면 용량을 줄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수혈, 격리, 촉진제 등의 서포트로 밀고 나가자는 치료 방향에 동의를 구했습니다. 환자의 권리를 강조하는 병원답게 의료인 총휴업일에도 어김없이 진료에 임하는 의료진의 의견이 귀하게 다가왔습니다.


다음 주 진료 예약을 하고, 원외 약국을 들러서 다시 병원 셔틀을 타고 지하철역으로 갔습니다. 병원 진료일이면 꼭 들르는 지하철 구내의 1,000원 빵집-모든 빵이 천원인 곳에서 3일간의 아내와 두 사람 저녁을 마련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온라인으로 곁눈질한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알차게 돌아가더군요. 읽고 싶은 책들, 가고 싶은 곳들, 먹고 싶은 것들이 널려 있는 세상  가장 비루한 하루를 보내게  아내가 안쓰러워졌습니다. 화장품은커녕 로션 하나 변변한  없고, 늘어진  티셔츠를 실내복으로 입고, 가늘고 하얀 손가락은 거칠 거칠 붉어졌습니다. 모두가  탓이니 무척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저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기도하며 버티어 봅니다. 아내가 일상의 평화를 찾기를. 이타적인 기도 같지만, 사실 엄청나게 이기적인 구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염치없이 기도합니다.


간절하고 구체적인 기도는 늘 응답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신앙과 종교의 분별에 늘 비판적이지만, 믿음은 늘 품고 살아갑니다. 아직 응원은 유효합니다.

생성형 AI Playgroun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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