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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May 29. 2024

[근황업데이트] 요나의 꿈; 'Fail'의 진정한 의미

1차 항암 실패 뒤, 2차 항암을 기다리며

절망은 희망을 위한 단계이며,
불행은 희망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배철현 교수 <심연>-


몇 해전 소개했던 'Fail'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이 다시 돋았습니다.


작은 게임기  게임이 종료되자 'Fail'이라는 시그널이 떴습니다.

아이: 'Fail이네!'
아빠: 'Fail 무슨 뜻인지 알아?'
아이: ', 아빤 그것도 몰라?'
아빠: '뭔데?'
아이: '다시 시작하라는 거잖아!'


1차 표적 항암제를 사용하고 100일이 지나, 결과가 나왔습니다. 혈액학적 반응은 있으나 분자유전학적 반응과 염색체화학반응 모두 'Fail'로 판정되었습니다. 만성기를 지나 가속기와 급성기 경계에서 병을 발견한 것, 기저의 면역질환이 있는 것, 알 수 없는 유전학적 돌연변이 가능성으로 1차 약제를 접게 되었습니다.


이어 바로 2차 약제 중 가장 고용량이 가능한 약제로 바꾸어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방법이 남아 있음에 우선 감사하지만, 고용량 항암의 부작용은 쉬이 견딜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토, 발한, 고열, 발진이야 익숙하고 단련되어 있지만, 극심한 박동성 두통은 생경하기에 더 무섭고 괴롭기만 합니다. 머리가 깨질 듯 한 두통이 복약 후 심야 시간 5~6시간을 지배합니다.


혈액 항암은 필연적으로 체내의 면역과 항체를 억지 무력화하게 됩니다. '관해'라고 하는 과정인데, 백혈구와 혈소판이 기준치의 1/4 이하로 떨어지고 특히 백혈구내 호중구 수치가 저하되어 모든 감염에 취약하게 되더군요. 그런 이유에서 독감과 대상포진까지 밀려들어 정신없는 수일간을 보냈습니다.


이런저런 조치로 회복의 추이를 보이고 있었는데, 아내가 제 독감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막힌 코에 끓어오르는 가래에 힘든 시간이 가득인데, 제 병간호가 우선순위라니...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개인적으로 회복 탄력성이 매우 좋은 편입니다. 주위의 평가도 그렇지만 스스로도 느끼곤 합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건대, 제 성장기와 청년기는 고난과 위협의 연속이었고, 그런 사건과 사고가 서프라이즈가 되기에는 많은 것을 경험치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행 중 다행인지, 뭣도 모를 시절의 위기 극복은 감당할 "체력"이 "정신력"을 담보해 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헤치고 나왔더니 마음에 근육과 굳은살이 박인 운 좋은 인생이었습니다.


그 "체력"이 소진되니 마음이 휘청댑니다. 그런 때마다, 극복과 회복을 생각할 때마다 구약 성경의 '요나'를 떠 올립니다. 자세히 살핀다면 이 요나만큼 독특한 인물도 없는데, 무슨 배짱인지 늘 신에게 대듭니다. 그러다가 고래인지 백상아리인지 모를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혀 사흘을 보내고 구사일생으로 생환하게 되지요. 한 도시의 멸망의 예언을 전하면서도 소돔과 고모라 같은 스펙터클을 내심 기대하는 살짝 똘끼가 있는 인물입니다.


이 요나는 제게 "탄력 회복성"을 일깨워 줍니다. 무심하라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불가항력인 "신의 섭리"의 영역에 일희일비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매일 일어나는 프로야구 승부처럼 이미 지나간 일, 다음 승부처럼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일에 발을 동동 구르고 탈진해서 스스로 우울의 터널에 침잠할 필요는 없겠지요.


저와 같이 지금 우울한 분들께 "조언" 따위는 않으려 합니다. 다만, 생각보다 체력, 몸의 기력은 회복 탄력성에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것부터가 회복의 시작이 됩니다. 그 일상을 위해 "응원"은 유효합니다.


밤하늘의 별은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깊은 어둠에 맞추어 빛을 내기 마련이니까요.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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