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연주자여, 그 음악을 멈추지 마오
(2022년 어느 글쓰기 플랫폼에서 잠시 절필을 고하며 적어 내린 잡문입니다.)
1.
'나'의 이야기를 다시 '나'로 마주 보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함께 시작한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가 생각에 머문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목에 있듯이 '우리'가 이야기하고 이야기된다. '우리'는 적어도 '나'와 '너'가 있어야 성립하는 개념이 되기에, 끊임없이 나를 마주 보며 결국 자신과 대화하는 '나의 해방'을 그린 <나의 해방일지>와 달리 보인다. '우리들의 이야기'인 이 드라마는 사뭇 다른 느낌과 색깔이 있다. 나 자신은 아무리 힘겹고 절망적이어도, 내 마음을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는 '우리'중 나머지들의 '난리 블루스'로 시끌 복잡하다. 사람 사는 게 이런 거다 싶게 말이다.
2.
좋아하는 음악을 누군가 물어 온다면, 영화 마찬가지로 선뜻 한 장르나 곡을 고르기 쉽지 않다. 꽤 넓은 영역의 음악들을 들어오고 좋아했다. 그래도 한 가지로 추리자고 하면 저는 잠시 고민하곤 '블루스 음악'이라고 말한다. 한 때 나이트클럽의 열띤 댄스 타임 중간에 멜랑꼴리 한 슬로 템포의 음악에 두 남녀가 몸을 밀착시켜 족보에도 없는 스텝을 '부르스 타임'이라 해서, 블루스 음악에는 오해의 시간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 오해와 변용 자체도 넓게 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블루스 음악은 참 우리들의 일상과 닮아 있어 보인다. 그래서 좋아하는 이유가 늘어 간다.
https://youtu.be/RYJIc9bjENk?si=-kQfjV9ENiJUcg1w
3.
'블루스(blues)'라는 음악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면 장황해진다. 그만큼 할 이야기들이 참 많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고, 블루스 음악을 좋아하는 특징적 이유를 꼽아 본다. 블루스 음악은 '일상'의 음악이다. 기원이 여러 설이 있지만,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무한 반복할 수 있는 묘한 구성을 지닌다. 그 구성이 이전 서양음악의 16마디 구조가 아닌 다소 미완으로 보이는 12마디로 되어 있고, 5 음계를 사용하여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이 넓으며, 많지 않은 음계(스케일)로 구성된 기본 코드 진행의 노트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그리고 반음 내린 두 개의 음이 우울함(blue)을 표출하지만, 구성과 리듬으로 그 우울함을 해학과 또 다른 즐거움으로 승화시킨다. 우리들 일상과 참 닮아 있다. 어제가 오늘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엄청난 사건 없이 우울한 요소들 뿐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응원하듯 흥을 보태는 것. 그것이 삶이니까.
4.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곡의 '형식'에 있는데, 흔히 'Call and Response'라고 하는 '부름과 응답'이 그것이다. 12마디 3단의 댓구 형식은 곡의 진행, 덧붙인 가사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블루스 대표라 생각하는 신촌 블루스, 김목경, 김현식의 가사를 들추어 보거나 B.B King이나 Eric Clapton의 기타 즉흥 합주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형식이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도 이 형식에 충실하게 구성한 것으로 느껴졌다. 각 테마의 제목이 '한수와 은희', '춘희와 민기', '옥동과 동석' 식으로 부르는 자와 댓구하는 자를 나타내고, 그 안의 이야기도 내가 너에게 건네는 말과 감정, 희망과 탄식에 너는 나에게 댓구하고 변명하고 되 따져 묻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가열찬 갈등과 마찰 끝에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받아준다. 마치 나이트 클럼 정신없는 댄스타임 '난리'뒤에 서로 부여 안은 '부르스'처럼 말이다.
5.
'우리'가 성립되는 조건은 단지 '성원', '머릿수'가 아닐 것이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쌍방의 인지와 소통, 그리고 교감일 것이다. 이처럼 블루스 음악의 call & response는 그 필요하고 충분한 '우리'로 만들어 주는 형식이라 생각된다. 급전을 융통할 잔머리로 다시는 돌아오기 싫었던 가난한 시절의 고향을 찾은 한수(차승원)의 의뭉스러운 부름에도 진정한 친구란 이런 것이라며 은희(이정은)는 응대한다. 길고 긴 시간 서로를 미워하던 둘만 남은 모자 지간 옥동(김혜자)과 동석(이병헌)도 마지막 여행 아닌 여행길에 부르고 대답하며 '우리'를 노래하듯 이야기한다. 현대 대중음악의 근간이 되는 블루스는 음악의 장르를 넘어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6.
글 쓰면 보상을 준다고 제 안의 글쟁이를 불러 낸 글쓰기 플랫폼에 감사를 전한다. 그 처음의 진솔하고 선명한 부름(call)에 잠시 꺼 두었던 마음속의 펜대를 잡으며 수줍게 대답(response)한 지 제법 되었다. 어줍지 않은 식견에 칭찬도 마다하지 않고, 어설픈 경험치 훈수에도 분에 넘치는 감사를 받았고, 쑥스러운 고백에 응원과 격려도 가득 받았다. 내 안의 나를 불러 내고 제 아우성에 응답해 주신 모든 구성원들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still got the blues'를 일깨워 준 단비 같은 부름이었으니까.
7.
블루스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듬성 듬성함'에 있다. 5 음계의 공백. 넉넉히 비워진 스케일에 12마디의 애매한 길이는 빡빡한 화성으로 채워진 클래식보다 '편하다'는 것이 결국 대중화의 핵심이 되었다. 나 스스로에게 필요한 관점이 이것이었던 것 같다. 과거의 영화로워 보이는 반짝이던 것들은 한순간 기억일 뿐이라는 것을 최근의 부침으로 알게 되었다. 아직 경제적 금전적 송사와 걸림돌에 넘어져 있고, 이것의 해결과 복구가 먼저라 또 다른 노력의 투여는 어렵게 되었다. 외적인 보상도 제법 받았지만, 내적인 보상도 잊지 못할 만큼 감사하게 받았다.
이곳에서 글을 지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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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블루스를 멈추지 마오.
8.
어느 해인가 홀로 제주여행 중 제주 현대미술관에서 마주한 '귄터 그라스'전에서 담은 사진을 발견했다. "회상은 누군가 벗겨주길 원하는 양파와 같고, 껍질을 벗겨내면 진실과 마주한다"는 에필로그가 눈에 들어 사진에 남긴 기억이 난다. 다 지워 버렸다 포기했던 사진을 이중 삼중 백업받는 습관 때문에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곤, 껍질을 벗기고 회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벗겨낸 회상에서 마주한 '나만의 진실'은 버겁지만 애틋했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나중에 뒤돌아 본 삶들이 모두 '휴일'같이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어거지로 생각해 본다. 요사이 몰려오는 다사다난한 일들에도 좀처럼 휘청대지 않는 것도 언젠가 마주할 '진실'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겨 본다.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일들을 위한 날들이 많다는 것.
내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것은 다른 것도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어제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였으니까. 냉수 한잔 들이켜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겠다. 그리곤, 나만의 난리 블루스를 멈추지 않고 계속할 요량이다. 산다는 것의 목표는 아주 찰나 같은 휙 지나치는 행복일지라도, 까고 또 깐 양파 껍질 속의 병아리 눈곱 같은 희망일지라도 말이다.
Good Evening, Good Night, Good Morning and Good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