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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Aug 06. 2024

'세메냐 룰'을 아십니까? -어느 복서의 공정성

스포츠의 공정은 '배타성'에 있다.

XY염색체 여자 복서에 대한 논란


자유, 평등은 현대 사회의 가치의 보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 개념에 대한 해석은 늘 나름이며 제 각기다. 오히려 해석하지 않고 직관으로 받아들일 때, 그 개념의 본질이 고스란히 전해 질 때도 다반사다. 특히 '평등'에 대한 것에 대해서는 공정과 차별이라는 부수적인 개념이 끼어들기 마련인데, 이 가치 평가 또한 각자의 이해관계 안에서 아전인수 격으로 해설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최근에 들어 차별과 공정을 가미한 평등, 합리적 평등, 혹은 평등의 합리화라는 개념이 일반화되고 있다. 유니버설 한 이퀄리티는 모두에게 같은 길이의 바지를 지급하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체형에 맞는 바지를 지급하는 일과 다름없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의 쉬운 예가 베리어 프리라고 하는 시설이나 콘텐츠들이다.


이 합리적 평등에는 차별이 아닌 배타성을 기준으로 두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영역이 스포츠다.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의 축구 경기가 성립하지 않으며, 플라이급과 헤비급의 권투 시합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중 가장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배타성은 성별에 있다. 거의 모든 스포츠가 남녀의 상호 배타적인 체계와 지침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우열을 겨룬다.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납득이 되는 공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차별이 공정의 반대말로 강하게 작용하며 판단 어려운 이슈가 발생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년 하계 올림픽에서 XY염색체를 가진 선수가 '여자 복싱' 부문에 출전한 것이다. 짧게 생각하면 무엇이 문제이냐 싶겠지만, 사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다. 생리학적으로 사춘기를 지낸 후 전환된 트랜스젠더나 남성 염색체를 보유한 사람의 호르몬과 운동 능력은 젠더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공정의 문제를 떠나 생명의 위협이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서로 치고받는 격투의 대명사 복싱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답인지 속단하여 말하기 어렵지만, 이를 단지 정치적 올바름과 성적 정체성에 대한 보편적 이해라는 측면만으로 수용하기에는 숙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 이야기를 조금 깊게 해 볼까 싶다.


https://www.hani.co.kr/arti/sports/sportstemp/olympics/1151905.html#ace04ou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남성 염색체인 엑스와이(XY) 염색체를 지니고 태어났으나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을 지닌 알제리 이마네 칼리프(25)의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부 경기 출전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가운데, 칼리프와 맞붙은 선수가 46초 만에 기권패를 했다. - 기사 본문 중 -


"세메냐 "이라고 아십니까?

- 남성 호르몬과 공정


현재의 엘리트 스포츠 경기 룰 상으로는 '성전환자'의 출전은 '공정성'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이는 스포츠계가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수적으로 바라본다거나, 차별과 괴롭힘으로 그들의 출전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이 최우선인 스포츠의 절대가치 기준의 고민이 된다.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도핑에서 금하는 낭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다.


https://m.yna.co.kr/view/AKR20220721078800007

세계육상연맹은 2018년 11월에 400m, 400m 허들, 800m, 1,500m, 1마일(1.61㎞) 여자부 경기 출전 기준을 테스토스테론 5n㏖/L 이하로 정했다. -기사 본문 중-


육상계와 많은 언론은 위와 같은 규정을 '세메냐 '이라고 부른다. 공식 명칭은 'DSD 규정'(Differences of Sexual Development·성적 발달의 차이)이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호르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호르몬이다. 남성에게선 주로 고환에서 분비되고 여성에게선 부신, 난소 등에서 만들어진다. 스포츠 선수가 체외의 테스토스테론을 인위적으로 투입하면 단기간에 경기력을 높일 수는 있지만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장기적으로 부작용 탓에 선수 생명을 단축시킬 위험이 있어서 엄격히 규저하고 있다. '도핑"'의혹의 선수들이 애용하던 성분이었다.


그러나 일반인에겐 세계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제제의 처방이 급증하고 있으며 제약사마다 다양한 제형을 선보이며 전혀 다른 세상을 창출하고 있기도 하다. 선수에겐 독약이지만 일반인에게는 회춘의 명약이 되는 존재다. 문제는 이것이 인위적인 투입이 아닌 성염색체 특이로 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선천적으로 지닌 경우다. 염색체 이상뿐 아니라 여성으로의 성전환자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캐스터 세메냐 (사진=중앙일보)

일반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0.12~1.79n㏖/L, 남성은 7.7-29.4n㏖/L이라고 한다. 공개한 적은 없지만, 많은 전문가가 세메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7~10n㏖/qqqL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세메냐는 "나를 겨냥한 규정"이라며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CAS와 스위스 연방법원이 세계육상연맹의 손을 들어주었다. 세메냐는 2019년 도하 세계선수권, 지난번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에 굴복하지 않고 세메냐는 유럽인권재판소로 무대를 옮겨 재판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DSD 규정에서 자유로운 5,000m 경기에 출전해 유진 세계선수권 예선에 나섰던 것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는 지금 이슈가 되는 트랜스젠더 복서 이네마 칼리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테스토스테론은 당장의 경기력을 향상하는 것보다는, 훈련과정에서의 훈련 강도를 상향시키게 된다. 20kg을 들던 선수가 40kg을 들고 근육 운동을 하면 당연 그 근력은 증가한다. 이 근육은 테스토스테론이 다 빠져나가도 잘 관리하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근력뿐 아니라, 지구력ㆍ순발력에도 관여되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 선수들은 한 번의 도핑으로 영원한 낙인이 찍히는 이유가 된다.



판을 바꾸면 모두가 공정할 수도


이를 위해서는 당장 출전 가능, 불허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규정은 "동일한 조건"이라는 공정 원칙이 강하게 작동되고, 하나의 예외는 모든 공정을 무너 뜨릴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무조건 성전환자는 배제해야 할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https://www.bbc.com/korean/news-61861550

국제수영연맹(FINA)이 남성으로 사춘기를 보낸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성부 경기 출전을 사실상 금지한다고 19일(현지시간) 밝혔다. -기사 본문 중-


성전환자 리아 토마스는 펜실베이니아 대학대표선수로 '미국 대학체육협회(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디비전 원' 타이틀 여자 수영 500야드 자유형종목에 출전하여 우승한 첫 공개된 성전환자 선수가 되었다. 그녀의 수영 종목 우승 후 열띤 반대의견들이 개진되면서 FINA는 임시총회에서 성전환자선수 출전제한결정을 내리었다. 이를 레퍼런스로 럭비, 축구 등 국제기구가 "여성으로의 성전환자에 대한 엄격한 출전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리아 토마스 (사진=인사이트)

일부 LGBT 운동가들은 '사춘기시 테스토스테론'으로만 출전 금지를 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도 주장한다. 성전환을 하면서 그 남성 호르몬은 벗겨 내고 싶은 낙인이 되어 고통스러운 호르몬 조절을 해야 하는데, 두 번의 괴로운 조처는 반인권적이라는 주장이다. 사생활과 과거의 행적까지 증명하는 것도 인격의 모독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생리학에서는 사춘기를 남성으로 보낸 것이 운동 능력 차별성, 우월성을 기여한다고 증명하고 있다. 엄격 제한 옹호자들은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배타적"이라면서 "12세 이하 부문 경기에 출전하는 15세 소년은 없으며, 밴텀급 선수와 맞붙는 헤비급 권투 선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 경기를 부문으로 나눈 이유이며, (이런 제한이 없으면) 분리해지는 건 오직 여성 선수들이라는 이야기다. 공정하게 스포츠 경기에 임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힌트가 될 이야기를 던진다. "패럴림픽 경기에 (장애 종류에 따라) 다양한 클래스를 나누는 것도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렇다. 장애인 올림픽에서는 다양하게 분화된 장애 유형과 운동 능력, 그리고 보장구 종류에 따라 클래스를 나누어 진행한다. 하지 장애도 절단인지 척추 밑인지 단지 무릎 아래인지에 따라 세분된다. 성소수자의 문제도 이를 참고하면 어떨까.


패럴럼픽 (사진=스포츠경향)

반대의 묘안도 가능하다. 모든 규제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바로 엘리트 수영의 '오픈부' 제안이 그것이다. 수영 연맹 (FINA)도 오픈부 신설 제안을 한 바 있다. 모든 사람이 엘리트 레벨에서 경쟁할 권리를 지닌다는 의미다. 이전에는 시행된 적 없는 방식이기에, FINA가 이 길을 앞장서서 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또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길이 없으면 막거나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새길을 열면 되는 것이 아닐까.



찬반을 넘어선 포용의 마음부터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경기 참여와 관련해 현재 스포츠계 안팎에선 의견이 갈리고 있다. 트랜스젠더 선수가 지닐 수 있는 생리학적 장점이 있기에 여성 부문에 참가해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현실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더 포용적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공존한다.


트랜스젠더 선수에 관한 규정을 섣부르게 잘못 적용한다면 여성 스포츠의 '온전성'과 '미래'는 매우 불안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논쟁의 핵심은 포용성과 공정성 간의 균형이다. 부당한 이득없이 안전하게 여성 부문에서 경쟁할 수 있는가의 걱정이다.


공정과 포용의 균형이 필요히다. 안정성도 위험한 무조건적인 포용도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사진=시사주간)

현재 몇몇 종목에선 제한적으로 출전이 가능하다. 경기 전 정해진 기간에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기준치 이하로 유지하는 등 규칙을 지킨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그러나 남성으로서 사춘기를 보낸 운동선수는 이후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억제한다고 해도 계속 신체적 이점을 지니게 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다. '여성'이라는 젠더에 사로 잡히지 말고, 인류라는 큰 개념이 필요한 때다. 세분해서 성전환자나 염색체 이상자들의 부문을 만들거나, 후천적 젠더만 인정하고 모든 조건을 느슨하게 열어주는 "오픈 클래스"의 창설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된다. 양자택일의 찬반만큼 어려운 결정은 없다. 반대로 그저 찬성하고 반대하는 논의는 느슨하고 직무 유기의 손쉬운 논쟁일지도 모른다. 특히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찬반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관심이 필요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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