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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척하는 행복

(추억에서) 다시 만난 카피 02

by 이유미 Dec 31. 2024

오래전 <알쓸신잡>이란 프로에서 유시민 작가가 어릴 때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런 장면을 이야기했다. 낮에 놀다가 잠이 든 그를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안고 방으로 옮겨 주셨는데 몸이 움직여 설핏 잠이 깼지만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자는 척을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던 다른 패널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어떤 순간이었는지 공감하듯 자신들의 추억을 하나둘 소환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 에피소드를 들으며 ‘왜 눈물이 나지?’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쯤 찰나의 순간이지만 오래도록 기억될 이야기가 있다.


내가 여섯 살 즈음이었던가. 우리 집은 작은 툇마루와 마루가 합쳐진 구조였다. 어스름한 초저녁 거기 누웠던 걸 생각하면 바람이 차지 않은 계절이었던 것 같다. 집에 손님이 몇 분 오셨고 엄마와 아빠는 방에서 그분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혼자 놀던 내가 잠든 걸 보고 아빠가 툇마루로 나와 얇은 이불을 내게 슬며시 덮어줬던 기억이 난다. 그 상황과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나 또한 잠이 깼었나 보다. 하지만 깨지 않고 아빠가 이불을 내 어깨까지 덮어주고 두어 번 토닥일 때까지 그대로 잠든 척했다. 내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어릴 적 행복하고 유일한 아빠와의 순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다음 해에 아빠는 오랜 지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셨다.


눈을 감았다 뜨는 사라질 듯 아슬아슬하게 행복한 기억은 절대 우리 머릿속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몇 없는 큰 행복보다 사소한 행복이 넘칠수록 살아가는데 힘이 된다. 어려운 일 또한 잘 극복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자잘한 행복은 내가 느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당연한 게 아니라 내가 아 이 순간 참 행복하구나,라고 느끼는 수동의 상태여야만 그게 유일한 진짜 행복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똑같은 상황이 있었어도 행복감을 느끼지 않았을 수 있고 그냥 넘겼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건 행복한 순간이야 기억하자,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 셈이다.


깼지만 더 잠든 척하고 싶었습니다.  

자잘한 행복의 순간이 많이 쌓이는 OO침구


대박을 바라고 커다란 만족만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사는 게 쉽게 버거워진다. 기대에 못 미치는 하루가 늘어나기 때문에. 하지만 매사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구나라고 상기하는 사람들은 큰 문제에서도 장점을 찾아내며 어려운 시기를 무난히 넘길 수 있다. 이렇듯 이야기의 작은 씨앗을 사람들에게 공감시키는 노력을 많이 할수록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이미 너무 큰 소재는 여기저기서 다 말하고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내가 느낀 찰나의 순간을 많이 모아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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