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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심삼일 글쓰기 Nov 17. 2019

#8. 순박한 인니들의 순박한 사기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워낙 시골인 탓에, 저울이 없다. 원시적인 방법으로 무게를 잰다.


순박한 인니들의 순박한 사기

오늘은 교장선생님이 돌아오신 날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침에 농군학교의 지붕이 무너졌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농군학교 건물이었는데, 아무래도 인도네시아의 습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진 것 같았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뺀디와 마주쳤는데, 요리사인 뺀디는 “우와 건물이 무너졌네.” 이러면서 재밌다는 듯이 쳐다보고 그냥 지나갔다. 건물이 무너진 것을 봤으면 고쳐보겠다든지, 교장 선생님한테 연락을 한다든지, 그런 조치를 취할 법도 하지만 뺀디는 그냥 재밌다는 듯이 웃고 지나갈 뿐이었다. 아무래도 요리사이다 보니 자기 일이 아니다. 뭐 이런 식인 거 같았다. 천연덕스러운 뺀디의 표정이 어찌나 웃기던지, 나는 그만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에는 고추를 땄다. 우리는 밥을 먹고 8시쯤 농장에 도착을 했지만, 이미 주미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농사를 시작하고 계셨다. 듣기로는 6~7시부터 일찍 농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낮에는 날씨가 너무 덥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선선한 아침 시간에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불과 1시간 쯤 했을까. 허리가 아파왔다. 한국에 있는 커다란 고추가 아닌, 아주 작은 할라피뇨 같은 고추였는데 나무가 어찌나 작던지 쪼그리거나 허리를 굽히지 않고는 고추를 딸 수 없었다. 


조금 따다가 밥을 먹었다. 한국에서 ‘참’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특했던 것은 인도네시아의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주미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먹는 인도네시아식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주미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바나나 잎에다가 밥을 올려놓고 손을 밥을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으시던지, 보는 나조차 군침이 돌 정도였다.


불과 3시간 정도 고추를 땄을까. 점심 먹기 전에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눕자마자 잠에 들었고, 밥을 먹고 또 다시 눕자마자 잠에 들었다. 평소 체력에 자신이 있었던 나였지만, 농사일을 하는 체력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한참을 쉬고 있자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아침에 땄던 고추를 팔러 간다고 했다. 뻘라부한 라투에 간다고 했다. 우리는 시장에 따라가기로 했다. 이전에는 잠시 견학 겸 뻘라부한 라투 시장에 방문했었는데, 직접 물건을 판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우리는 주미란 아저씨의 도움으로 인도네시아 상인들과 흥정에 들어갔다. 물론 인니어를 잘하지 못하는 우리가 제대로 흥정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저울추를 어느 위치에 두냐에 따라서 무게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그런 우리들을 보고 인니 상인들은 속여먹기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곳의 저울은 한국에서 쓰는 그런 신식 저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옛날식으로 추를 달아서 무게를 재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됐다. 가운데 무게중심을 조절하는 추의 위치에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얼마든지 인니 상인들에게 속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니 상인들은 우리를 속이려고 작정했는지 추를 이상한 방향으로 돌려놓았고, 우리는 인니 상인에게 항의했다.


그때 인니 상인이 지었던 표정이란, 정말이지 한국에 가져다 놓으면 청룡영화제 대상 감이었다. 얼마나 능청스럽게 ‘나는 몰랐다.’ 라는 표정을 짓던지, 평소 교장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니 상인들에게 몸짓과 발짓으로 항의했고, 덕택에 제 값을 받고 고추를 팔 수 있었다. 


후에 한국에서 황팀장이 오셔서 아프리카 오지를 돌아다니며 현지 상인들이 자신을 속이려고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니, 속이려면 좀 성의 있게 속여야지.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 잔돈을 덜 주려고 하더라니까요.”


순박한(?) 인니들은 정말이지 사람을 속이는 것마저도 순박하게 속이려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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