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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심삼일 글쓰기 Nov 17. 2019

#13. 말을 할 수 없는 아이 - 빙고게임을 해보자


이곳에는 의외로 자폐가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자폐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아주 천천히 한 단어 한 단어씩 말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느리고, 다른 아이들이 오래 기다려야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참여했을 때 비로소 수업이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잘하는 아이만 편애하고, 못하는 아이들 버려둔 채로 수업을 진행해버린다면 아이들은 좌절감을 느끼며 포기하거나, 오로지 성공하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 그것이 한국어 수업의 목표였다.     


말을 할 수 없는 아이 다 같이 빙고 게임을 해보자!

수업 가운데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내 수업은 회화를 위주로 일일이 아이들에게 찾아다니면서 말을 하도록 시키는 것이었는데, 하필 그 가운데서 말을 못하는 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나는 아이가 수업이 듣기 싫어서 일부러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줄 알았지만, 은당 선생님이 와서 그 아이는 벙어리라고 말해주었다. 

  처음으로 난관에 부딪힌 듯한 느낌이었다. 이 아이를 소외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다른 방식으로 이 아이를 돕고 싶었다. 결국 내가 두 번째로 고안해낸 방법은 바로 ‘빙고 게임’이었다. 


내가 한국어로 숫자를 가르쳐주고 앞에 나와서 숫자를 부르면 아이들이 빈 칸을 칠해가면서 총 5줄의 빙고를 만드는 것이었다. 빙고 게임은 오로지 듣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게임이었다. 첫 번째 수업 시간에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말을 못한다는 것에 시무룩해있었던 아이가, 빙고 게임에서 가장 먼저 5줄의 빙고를 만들고 나자, 방긋하고 미소를 지었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 미소가 참 좋았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게임에는 상품이 있다면 더더욱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먹을 것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누구는 선물을 주고 다른 누구는 선물을 주지 않으면,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한 반에 40명이라는 인원의 선물을 전부 준비하기란 쉽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240개의 선물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작은 과자를 준비하더라도 너무 많은 양이었다.


처음에는 박수를 쳐주는 것으로 상으로 했지만, 조금 더 눈에 보이는 상이 있으면 재밌을 것 같아서, 미스트를 구매해서 얼굴에 ‘칙칙’하고 뿌려주었다. 아이들은 얼굴에 물안개가 뿌려질 때마다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1등, 2등, 3등. 게임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아이들만이 눈에 보이는 상품을 얻는 것은 다른 아이들에게 좌절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게임에 집중을 했고 이기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꼭 게임에서 이겨야만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얼마나 노력했는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1등으로 끝낸 아이만 박수를 받아야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아이들이 5개의 빙고를 완성할 수 있을 때까지 게임은 계속되었다. 아이들 모두가 박수를 받고, 게임을 끝냈을 때 비로소 게임이 끝이 났다. 


빙고 게임은 성공적이었다. 말을 못하는 아이도 다 같이 즐길 수 있었다.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느린 아이가 있으면 기다려주면 되고, 옆에 가서 도와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행동을 보았기 때문일까. 처음에는 아이들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 자신의 빙고만을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2번째 판부터는 아이들이 귀가 잘 안 들리는 친구, 자폐가 있어서 이해가 느린 친구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돕는다는 것에 진정으로 보람을 느꼈다.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서 목이 찢어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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