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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심삼일 글쓰기 Nov 17. 2019

#14. 꿈이 어부인 아이들

꿈이 어부인 아이들

리스마에서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짧았던 2주 간의 수업이 끝이 났다. 한국어 교육은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가르치다보면 ‘내가 지금 가르친다고 해도 아이들이 어차피 잊어버리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이 무의한 일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수업을 대충하고 싶은 생각도 들기도 했다. 하지만 Jago 같은 경우는 이전에 왔다간 한국 선생님들을 많이 그리워했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잊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인도네시아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와 꿈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종이를 주고 아이들에게 꿈을 적으라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아이들의 꿈은 놀랍게도 <어부>였다. 한국의 중학생에게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한다면 과연 몇 명이나 <어부>라고 적을까? 어려운 현실에 아이들이 꿈이 맞춰지는 것 같아서 가슴 아프게만 느껴졌다.


다음 날, 나는 아이들에게 손크기의 종이를 다시 나눠주었다. 그리고, 어부를 제외한 다른 꿈을 적게 했다. 경찰관, 선생님, 축구선수, 연예인 등등... 그제서야 아이들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던 꿈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후에 그 종이를 모아서 무려 240장을 코팅했다. 


아이들에게 꿈이 적힌 종이를 다시 돌려주면서, 교복 가슴팍에 있는 호주머니 넣게 했다. 그러고 은당선생님께 통역을 부탁했다. 


"아마 앞으로 살면서 너희들의 인생에는 힘든 날들이 많을 거야. 그럴 때마다 가슴팍에 있는 종이를 꺼내서 읽어봐. 오늘 적은 너희들의 장래희망을 보면서,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인니들은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렸다.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는 아이들

마치 형이 하는 행동을 보고 따라하는 아이처럼, 인도네시아 아이들은 내가 하는 행동을 따라했다. 같이 축구를 하고 난 뒤, 아이들은 먹은 음료수 병을 바닥에 버려둔 채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먼저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갔고, 아이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음번에 우리가 만났을 때, 축구가 끝이 나고 아이들은 내가 행동했던 것처럼 자신들이 먹은 음료수 병을 주워서 집으로 가져갔다. 문득 나는 이런 사소한 나의 행동에서 아이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한국말을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소한 습관을 바꿔나가는 노력이 아닐까.      



그들의 기억에 영원토록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끔은 아이들이 너무 과하게 친근함의 표시를 해올 때가 있었다. 수업을 하다보면 굉장히 덥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면 기진맥진하여 쉬고 싶을 때, 아이들이 우르르 찾아와서 말을 걸어오면 돌려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고, 웃는 얼굴로 그들을 대했다. 그건 가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사랑이 담긴 진심 어린 행동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받았다. 그건 말이 통하는 한국인에게서도 쉽사리 느끼지 못했던, 말로 전할 수 없는 사랑이 듬뿍 담긴 애정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어설픈 몇 마디 말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우리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아무리 말이 통하지 않아도,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아이들 역시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잊힌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두려워했다. 아마도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짧은 수업을 하고 떠나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르겠지만, “I'll miss u."와 "Don't forget me."라는 어설픈 영어로 나에게 말을 하는 아이들. 

  처음에 이곳에 올 때 나의 다짐은 바로 ‘내가 떠날 때 이곳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이제 그 시간이 다가왔다. 어떤 아이들은 마지막 수업 시간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리움의 눈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눈물을 보는 게 가슴 아프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로 우리가 작별할 시간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버린 아이들. 그들과 헤어져야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헤어지지고 아마도 다시 만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이 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나는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좋은 선생님이자 그들의 친구로 기억에 남기를… 아주 자그맣게나마 그들의 인생의 변화를 가져온 그런 사람이었기를……. 나를 그렇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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