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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Oct 27. 2020

책이 친구가 되기까지

우리는 하이에나 패밀리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야 한글을 배웠다. 집에는 내가 읽을 만한 책이 거의 없었다. 6학년 때 과학의 날에 장관상을 받아 부상으로 주어진 두꺼운 과학백과사전을 갖고 논게 전부다. 중학교에도 교과서나 참고서 외에는 읽은 책이 없었다. 공부를 한다고 밤마다 모여서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 적이 더 많았다. 고등학교 때는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은 마음에 입시공부만 했다.      


대학에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교양, 전공서적이나 자격증 수험서가 전부였다. 누군가 어떤 책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오히려 직접 겪어보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라며, 책이 말하는 간접경험을 애써 무시했다. 그러고 보니 20대까지는 기억에 남는 감동적인 책이 없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야 자녀교육을 위해서 책에 관심이 생겼다. 책을 읽다 보니 차츰 독서가 재미있어졌다. 이때부터 블로그에 간단하게라도 느낌을 독후감을 기록했다. 




첫째 유신이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차분한 성격이다. 외부 활동보다는 집에서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둘째 유찬이는 나를 닮아서 활발하고 달리기를 잘한다. 형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이 강하다. 같은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성격이 반대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다. 둘째는 놀고 싶은데 형이 안 놀아줘서 불만이고 형은 동생이 자꾸 방해하니 짜증을 잘 냈다. 몇 개월 관찰해보니 첫째는 학자 같고 둘째는 운동선수나 군인의 모습이 보였다.

      

둘째 차니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겨우 한글을 배웠지만 엄마가 읽어주기를 바랐다. 책보다는 노는 것을 좋아하니 아내는 걱정이 커져갔다. 나도 대학생들과 한 달에 한 권 독서모임이 전부였고 아이를 위한 독서법을 알지 못했다. 2학년이 되어도 자전거 타기나 축구를 하며 집 밖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밤에 숙제를 하고 준비물을 챙기느라 엄마에게 잔소리를 자주 들었다. 책을 읽으라고 하면 겨우 몇 장 책장을 넘기다가 집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만만한 냉장고만 열고 닫으며 먹을 것을 찾았다. 이대로 두면 안될 것 같았다.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서울에 있는 독서 모임을 찾아갔다. OO나비와 X팟은 토요일 아침 7시에 열린다. 지정도서를 읽고 인상 깊은 문장에서 본 것, 깨달은 것, 적용할 것 순서로 발표했다. 이어서 조별로 대표가 한 명씩 발표를 했다. 마지막에는 그 책의 내용을 생활에 적용할 방법에 대해서 운영자의 짧은 강연도 괜찮았다. OO판이란 독서모임은 한 달에 한 권 고전을 읽고 한 명씩 발제를 해서 발표하고 토론을 했다.


가족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OO나비 방식이 괜찮아 보였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가족나비'라고 지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저녁식사를 마치고 1시간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처음엔 아내도 남편 앞에서 책을 이야기하는 것을 어색해했다. 첫째 시니는 책 줄거리를 말하며 따라왔다. 둘째는 며칠 동안 관찰만 했다.(이 사람들이 도대체 뭘 하는 거지?) 그럼에도 책이 주는 재미를 찾아보려고 밤마다 자리를 이어갔다. 그날 읽은 부분 중에서 인상 깊은 내용을 말하니 새로운 지식도 알게 되어 좋았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독서토론을 하면 절대 안 된다. 책 읽는 것이 재미있고 말하는 것이 즐거워야 한다. 가족이 같은 공간에 둘러앉아 책, 학교 생활, 주말 계획을 세운다고 생각하면 된다. 끝나면 아이들의 참여에 대한 보상으로 엄마는 과일을 내어오고, 아빠는 아이들과 캔디 크러쉬라는 PC게임으로 20~30분 정도 놀아주었다. 


두 달쯤 지나서 둘째가 손에 장난감 대신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보였다. 엄마랑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데 재미있다고 형이랑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아빠, 하이에나 패밀리가 축구만큼 재미있어요." 집에 사두고 계속 읽고 싶다고 했다. 가족나비를 시작하고 처음 보는 둘째의 모습에 아내는 놀라워했다. 나도 손이 떨렸다. 책을 들고 온 차니가 한마디 한다.


"의사 선생님, 제가 자꾸 개라는 생각이 들어요."

"앉아!"


나는 한참 후에야 빵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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