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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Oct 27. 2020

행복, 공간보다는 마음의 크기

베란다 서재, 행복가족연구소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을 읽고 필사를 하다가 한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아이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라’라는 말이 있다. 아이도 부모도 고독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어야 하고 가능하면 자연 속에 있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런 공간을 늘 꿈꾸고 있었지만 네모난 집안 어디에도 아빠를 위한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빌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아파트 1층에서 몇 년을 살았다. 서울에 살 때는 아파트 17층에서 층간소음으로 난처한 경우가 많았다. 아래층 아주머니가 수시로 올라와 시끄럽다고 항의를 했다. 거실 바닥 전체에 깐 매트를 보여드려도 막무가내였다. 아이들에게 조심하자고 타일렀지만 걷고 뛰는 것에 재미가 든 다섯 살 남자아이의 생활소음은 막을 수가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종잇장보다 얇은 도시인의 삶을 이해하면서도 가족 모두 스트레스였다. 포항으로 내려오면서 무조건 1층을 찾았다. 덕분에 마음 편하게 살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나무에 가려져 햇빛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빌라 2층에는 햇볕이 거실까지 쏟아졌고 창문을 열면 마치 개인 정원처럼 초록의 향연을 매일 즐길 수 있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귀가 즐겁고 귀뚜라미와 여치 소리에 잠이 들었다. 공부방(집현전)을 꾸미면서 20년 가까이 사용하는 책상이 고민이었다. 잡다한 물건들이 쌓인 베란다를 정리하고 책상과 책장을 옮기겠다는 말에 생뚱맞다며 아내가 반대했다. 다른 곳을 찾아보아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아내를 설득하고 아빠의 서재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설치 과정>

난방이 없는 베란다는 한겨울에는 양말에 슬리퍼를 신어도 발이 시렸다. 바닥에 깔 7mm 보온 매트를 주문했다. 베란다 전체에 매트를 깔고 전기는 에어컨 배관 구멍으로 연결했다. 우수관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매트를 배관 크기에 딱 맞게 재단해서 덮었다. 창문에는 아트지를 붙여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했다. 바닥을 설치하고 책장과 책상을 옮겼다. 책장과 벽 사이로 남는 공간에는 400mm 6단 책장을 사서 서가로 활용을 높였다. 일주일 후 두 평 남짓한 아빠의 베란다 서재가 탄생했다. 너무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아이들의 반응에 반대했던 아내도 칭찬을 했다.  

     

<사용방법> 

난방이 되지 않아 겨울에는 낮에만 몇 시간 사용했다. 봄, 여름, 가을은 너무나 환상적이다. 아침마다 정원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폭신한 매트에 누워 파란 하늘과 구름을 보는 재미가 좋다. 근사한 피아노 클래식을 들으며 누워서 책을 읽다가 따스한 햇살에 깜빡 낮잠에 빠지곤 한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면 사철나무와 은행나무가 손에 닿는다. 밤늦게까지 글을 쓰고 다음날 계획도 세운다. 주말 오후에는 시니차니 유튜브 스튜디오로 사용한다. 가족회의나 가족영화관에 사용하는 TV도 설치했다. 매월 베란다 백일장이 열리는고, 아빠가 사용하지 않을 때는 시니와 차니가 번갈아 가며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한다. 아내도 가끔 일광욕을 즐긴다.     



  

코로나 시대, 집에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시간에 자투리 공간을 찾아 개성 있게 꾸며봅시다. 이름도 지어보면 어떨까요. 아삭한 연초록의 양상추처럼 신선한 풀내음이 가득한 정원을 품은 베란다 서재의 이름은 '행복가족연구소'입니다.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만들고 적용하는 우리 집 행복발전소입니다.     


공간에 무엇을 담느냐는 당신의 몫입니다.

숨은 공간에 사랑을 담겠습니까, 좁다고 불평을 담겠습니다.

대저택에 살아도 마음에 불만과 욕심이 가득하면 외롭고 쓸쓸합니다.

두 평 짜리 행복발전소에서 피어나는 가족 사랑의 온도, 여러분에게 전해드립니다.      


차가운 베란다에 보온 매트를 설치하고, 책장과 책상을 옮기고 아트지를 붙였습니다.
손이 닿는 초록의 정원으로 행복이란 파랑새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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