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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Oct 26. 2020

집현전과 신사임당

공간의 재탄생

<배민다움>이란 책을 읽었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앱을 만든 스타트업이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담겨 있는 책이다. 특히, 인상이 깊었던 것은 공간이 구성원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보내는 공간의 인테리어와 풍경은 사고방식과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 전체가 하나의 큰 회의실을 지향하고 있었다. 공간 이름도 ‘웬디의 라운지’, ‘피터팬의 다락방’으로 동화 속 상상력을 자극했다. 회사가 하나의 회의실이고 상상력을 키우는 놀이터처럼 보였다. 참 매력적인 활동이라 우리 집에도 적용을 해보았다.    




우리 네 식구는 20년 된 서른 평 빌라 2층에 산다. 일반적인 구조라 방 셋, 거실, 주방, 화장실 둘에 베란다가 있다. 요즘 아파트처럼 디자인이 매력적이지도 않고 마당이 있는 근사한 주택도 아니다. 2년 전 이사를 오면서 거실에 있던 TV를 유배 보냈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배민다움처럼 우리 집 공간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거실은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집의 중심이다. 이름을 근정전(勤政殿)으로 정했다. 조선시대 왕이 신하와 부지런히 토론하고 나라를 다스렸다는 국보 223호를 본땄다. 양쪽 벽에는 책장과 전자피아노가 있고 가운데는 원목 좌탁이 있다. 소파는 거실과 주방을 분리하며 복도처럼 만들었다. 근정전에서 주로 책을 읽고 주말 계획이나 가족 영화관 상영 목록을 정하는 가족회의를 한다.      


아내의 공간인 주방에는 유럽처럼 넓은 6인용 식탁을 두었다. 정성을 담아 요리를 하고 아이들은 맛있게 먹으며 학교 이야기를 나눈다. 식사를 마치면 책을 펼 수 있게 책꽂이도 옆에 두었다. 식탁 한편에는 <먼 나라 이웃나라> 전집이 있고 벽에는 세계지도가 있다. 율곡을 가르친 신사임당이 떠올라 신사임당의 식탁&서재라고 지었다. 이름을 만든 이후에는 음식의 맛과 향이 더 좋아진 것 같다. 공간에 사소한 의미를 부여했을 뿐인데 대화도 부쩍 늘어났다.

신사임당 식탁&서재

안방은 편하게 잠자는 곳이라 강녕전(康寧殿)이고 아내가 주로 사용한다. 마주한 방은 아이들이 잠자고 공부하는 ‘세자의 방’이다. 아이들은 밤마다 엄마와 강녕전에서 아빠와는 세자의 방에서 잠을 잔다. 처음엔 엄마랑만 자고 싶어 하던 아이들이 하루씩 번갈아 아빠랑도 잠을 잔다. 초등학교까지는 아이들과 같이 자면서 마사지를 해주려고 한다.     


현관 앞에 작은 방이 있다. 우리 집 도서관이고 공부방인 집현전(集賢殿)이다. 넓은 회의용 테이블과 4개의 의자가 있다. 이동이 가능한 화이트보드도 설치했다. 한쪽 벽 책장에는 아이들 책이 가지런하다. 맞은편 벽에는 한반도와 세계지도가 있다. 책을 읽다가 지도에서 바로 찾을 수 있다. 창문에는 커튼을 대신해 유튜브 크로마키 용도로 파란색 롤 스크린을 설치했다. 뉴스 스튜디오처럼 파란색은 신뢰감과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집현전은 기능이 많다. 우선 책 읽는 핫플레이스다. 읽은 뒤에 독서기록장에 내용을 정리한다. 저녁에는 가족이 1시간 정도 ‘가족 나비’ 독서모임을 한다. 평일에는 아내가 동네 아이들과 독서토론 수업을 한다. 아빠도 초등 부모님들과 독서모임 ‘사랑방’을 한 달에 두 번 한다. 화이트보드에 문제도 풀고 그림도 그린다. 사용하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전용 교실이 되어버렸다. 

집현전





위에서 소개한 공간에 붙여진 이름표를 파워포인트로 직접 만들었다. 아이들과 같이 이미지를 찾고 폰트도 설치하면서 디자인했다. 사소하지만 아이들과 같이 집안을 꾸미는 시간을 가져보는 곳도 좋겠다. 행복가족연구소는 베란다 서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다음화에서 최애 공간인 베란다 서재를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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