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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Oct 27. 2020

한 단어의 힘

원 워드, ONE WORD


1초, 1분, 1시간, 1일,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그런데 금요일은 늦게 오고 주말은 참 빨리 지나간다고 느낀다. 인간은 시계와 달력을 만들어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의 시간 매듭을 지우고 있다. 덕분에 인간만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결과를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이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한 원인이 아닐까? 그럼에도 사피엔스는 찬바람이 불고 달력이 한두 장 남았을 때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고 더 부지런했다면 하는 아쉬움으로 살아간다. 특히나 달력이 두장뿐인 요즘은 더욱 2020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리 가족은 매년 첫날 해돋이를 보고 소원을 빈다. 지난해 좋았던 것과 아쉬웠던 순간과 새해 목표를 손으로 기록하는 시간도 갖는다.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자리도 이어진다. 아빠의 2019년은 그 전해보다 아쉬움이 컸었다. 아이가 엄마에게 고마웠던 것은 무엇이고, 엄마는 아이에게 새해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마음의 거리가 한 뼘 더 가까워짐을 느낀다. 


<원 워드 ONE WORD>를 읽었다. 내 인생을 바꾸는 한 단어의 힘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생각보다 단순했다. 일 년 동안 하나의 단어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친밀함’을 원 워드로 결정했다면, 가족, 친구, 직장에서 관계를 친밀하게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집중’이란 단어로 운동경기나 학업에 더 많이 집중해 성과를 높였다고 한다. 긴 문장보다 직관적인 단어가 주는 매력에 끌렸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도 2020년 원 워드를 결정했다. 

현관 앞에 손으로 쓴 원 워드가 있다.


시니는 ‘연습’이다. 학교 축구팀에 선발이 되었기 때문에 열심히 연습을 해서 팀이 우승하는데 기여하겠다는 마음이다. 아쉽지만 코로나 때문에 축구팀 소집은 한 번도 없었다. 차니는 ‘끈기’다. 책을 읽을 때나 문제를 풀 때 집중력이 부족했다. 새로운 것에 쉽게 흥미를 느끼지만 쉽게 싫증을 내기도 했다. 엉덩이를 무겁게 해서 소파나 책상에서 30분 이상 활동을 해보겠다며 정했다. 아내는 ‘시도’다. 지난해까지 7년간 몸과 마음을 옥죄였던 난소암이 올초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건강하지 못한데 꿈이 무슨 소용이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못했던 다양한 것을 시도하는 아내를 응원하고 있다. 


아빠는 ‘가족’으로 정했다. 20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장에서의 성공이 가족의 행복이라고 믿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가족보다 일이 늘 우선이었다. 2년 전 직장에서 사건이 발생해 강제로 부서이동을 당하고 혼자 책임을 지게 되었다. 침묵으로 버텼지만, 거짓이 진실로 둔갑되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잠을 잘 수 없는 고통에 괴로워하다 결국 정신과를 찾았고 약에 의지했다. 두 달의 병가를 보냈지만, 깊은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쓸 수 있는 카드는 퇴사 아니면 휴직뿐이었다. 명예를 되찾기 전에는 직장을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육아휴직을 선택하고 오롯이 '가족'을 중심에 두고 아빠와 남편의 역할만 하고 싶었다. 일을 겪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여전히 일에만 몰두했을 것이다. 아픔은 있었지만 어쩌면 진짜 행복을 찾으라는 운명이 아니었을까. 


책에는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가족의 원 워드도 정했다. 바로 ‘건강’이다. 몸과 마음도 건강하지 않으면 불안한 감정이 긍정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아이들도 아프지 말고 엄마 아빠도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람이다.     





각자의 단어를 카드에 손으로 쓰고 현관문에 붙였다. 냉장고, 안방, 공부방에도 잘 보이도록 붙였다. ‘건강’,‘끈기’,‘연습’,‘시도’,‘가족’ 다섯 단어의 기운이 24시간 공기처럼 존재한다. 의식적으로 행동하면서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실천하고 있다. 단어 하나를 눈에 보이게 붙여 놓은 것뿐인데 집안에는 웃음이 넘치고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2021년에는 어떤 단어가 붙여질지 벌써 기다려진다. 



냉장고, 안방, 작은방 앞에 있는 가족 원 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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