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니차니피디 Oct 27. 2020

밥 먹을 자유 vs 책 읽을 자유

재미를 위한 자율독서

<리딩으로 리드하라>,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을 읽어보면 한 번쯤 이 책에서 추천하는 책을 읽고 싶은 목표가 생긴다. 작가들이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번쩍이는 깨달음이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막상 추천한 고전의 경우 문해력이 낮은 독자는 읽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자칫하면 재미보다는 고통이, 성취감보다는 좌절감에 빠져 독서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가족나비를 시작하고 책 선정의 기준은 따로 없었다. 무슨 책을 들고 오더라도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책을 고르는데 엄마나 아빠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책 선택의 자유, 읽을 시간의 자유, 읽지 않을 자유까지 부여했다. 완전 자율독서다. 책을 보고 읽더라도 나무라지 않았다. 이야기 책 보다 과학지식 책은 한번 읽고 기억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책을 꾸준하게 읽는 습관을 만들려면 우선은 책을 펴고 오래 앉아있어야 하니까. 그 시작은 아이가 선택할 자유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선택했던 책이 재미가 없어도 직접 골랐으니 최대한 노력은 할 테니 말이다.

     

자율독서를 시행하면서 <안돼 데이빗!> 같은 글자가 얼마 없는 책은 물론이고 학습만화도 이곳저곳을 펼치며 읽었다. 과학소년 같은 잡지도 들고 왔다. 손바닥 크기의 유머나 속담집으로 퀴즈 놀이도 재미있다. 종이책을 손에 들고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느낌을 알아가고 있다. 나도 책을 사면 목차를 먼저 살피며 재미있을 법한 부분을 먼저 읽기도 했다. 반드시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  

    

우리나라에는 밥상머리 교육이란 것이 있다. 가족 간의 친밀감은 높이고 재미있는 대화가 오고 가는 인성과 예절을 배우는 시간이다. 나는 어릴 때 밥 먹는 시간이 종종 두려웠다. 엄격한 아버지는 나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다. 시험 점수가 낮거나 오락실에 갔던 것이 발각된 날에는 밥상이 뒤집어지고 숟가락이 날아다녔다. 방바닥에는 밥과 국이 뒤엉켰다. 아버지가 무서워 누나와 형들이 고교부터 집을 떠나서 유학에 오른 것 같았다. 나는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싶었지만 엄한 분위기에서 자라서인지 익숙하지 않았다. 식사시간에 아이들의 학교 이야기가 듣고 싶었지만 “그냥 그랬어요.” 정도로 대답하는 아이들이 야속해 화를 낸 적도 많았다.     


첫째는 언제부턴가 밥 먹을 때 읽던 책을 들고 왔다. 아빠랑 이야기하기 싫다는 신호일까 걱정도 했지만, 책을 읽다가 등교가 늦어질 정도로 빠져들곤 했다. 밥보다 재미있다는데 막을 필요는 없었다. 둘째도 올해 독서 목표를 500권으로 정하고 나서는 식탁으로 책을 들고 왔다. 가끔 서로 같은 책을 읽겠다고 실랑이를 하는데 대부분 형이 양보했다. 아빠에게 학교 이야기를 하는 대신 책에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닌가. 놀라운 변화였다. 묻지 않아도 먼저 이야기를 하니 고마웠다. 밥이나 반찬이 책에 떨어져 지저분해져도 혼내지 않았다. 새 책을 사면 손때가 묻는 게 당연하니까. 다만 도서관이나 친구에게 빌린 책은 조심하라고 부탁하는 정도였다. 


우리 집 밥상에는 엄마의 정성이 담긴 반찬에 아이들이 가져다 놓은 책 반찬이 하나씩 더 있다. 덕분에 밥맛이 더 좋아졌다. 식사시간에는 책 대신 이야기를 나누자고 해도 아이들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시니 생각>

책을 읽다가 식사시간이 되면 읽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식탁에 읽던 책을 가져와서 계속 읽어요. 엄마 아빠가 밥 먹을 때는 밥을 먹자고 부탁하시지만, 밥은 배를 부르고 하고 책은 머리를 부르게 하는 것 같아서 계속 읽게 되네요. 대신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 많이 나누는 걸로 이해해주세요.


<차니 생각>

습관이 되어서 밥 먹을 때 책이 없으면 허전해요. 재미있는 책은 소화를 잘 시켜주는 기분이에요.

이전 08화 책이 친구가 되기까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