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li record Jan 24. 2022

서기 씨가 곱창집에 들고 온 야마자키 12년.

곱창에 야마자키라니!


무더운 여름, 공덕역.

금요일 저녁, 직장인들이 퇴근을 하고 불타는 금요일을 막 즐기기 시작한 시간. 약속 장소는 역 앞이었다. 미리 도착한 우리는 기다리다가 역 앞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튀김 냄새에 이끌려 결국 핫도그를 하나씩 주문했다. 핫도그를 먹으면서 앞에 있는 떡볶이와 순대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겠지.


핫도그 하나를 다 먹고 나니 드디어 촌뜨기 멤버들이 하나 둘 다 모였다. 시간이 흘러도 어쩜 그렇게 다들 똑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건지. 꼭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같은 모습으로 나오는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친구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곱창이 먹고 싶었던 우리는 곱창 맛집을 가기 위해 쨍한 주황색의 화려한 포장마차 거리를 지나야 했다. 아직도 그때의 거리가 이 날 갔던 식당보다 훨씬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건 이 전에 먹었던 핫도그 때문이었을 까. 아니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포장마차에서 폴폴 풍기는 냄새와 먹음직스러운 떡볶이와 튀김들의 모습이었을 까. 어릴 때나 지금이나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연기만 봐도 왠지 모를 설렘이 생긴다. 특히나 요즘에 들어서는 포장마차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니 반가운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언제나 포장마차를 그냥 지나쳐오는 것이 뭔가 미션클리어! 이런 느낌이다.


아무튼 우리는 다행히도 곧바로 식당에 도착했다.

포장마차 거리의 분위기는 식당에서도 그대로 느껴질 만큼 한 여름밤 금요일은 뜨거웠다. 보이는 곳마다 사람들이 붐볐기 때문인지 기다림 없이 바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것이 의외여서인지 여기가 맛집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앉자마자 모듬곱창에 소주를 주문하고, 다들 오랜만에 만났다는 듯이 떠들어댔지만 언제나 그렇듯 대답은 필요 없는 거 같았다. 사실 친한 이들의 대화가 그렇듯 주제도 서두도 마무리도 없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2차에 3차까지 떠들다가 귀가는 도무지 어떻게 한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런 흔한 만남이다.


먼저 도착한 소주를 잔에 따르고는 이번엔 술잔을 기울이며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굳이 맛집이 아니어도 웬만하면 당연히 맛있을 모듬곱창이 도착하고, 다들 젓가락을 들기 전 서기 씨가 짠하고 꺼낸 것은 야마자키 12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귀한 걸 왜 그렇게 술술 마신 건지. 다시 돌아간다면 야마자키 12년만큼은 다시 집어넣으라며 등짝이라도 릴 일이다.


핑계를 대자면 이때만 해도 면세점에서 6,000엔 정도에 구매할 수 있었던 위스키의 W도 모르는 우리들이 굳이 큰 맘을 먹지 않아도 손이 가게 되는 감사한 가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출시 가는 고사하고 국내에서는 30만 원 가까이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니 그때의 그 한 병을 그렇게 보낸 것이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다.


좋은 건 알았는지 사진 찍어둔 게 있다.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사진들을 열심히 옮겨둔 보람이 있다.


이때 우리는 여름방학이었는데, 다들 방학이 되기가 무섭게 귀국을 했던 반면 느긋한 서기 씨는 중반쯤 느지막이 귀국을 해서 들어오기 전 모임 약속을 하면서 그가 한 병만 사 오라며 부탁 아닌 부탁을 했던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소주와 함께 생각 없이 섞어 마실 거였으면 굳이 이걸 마셔야 했었나 싶다. 물론, 마실 마다 확실히 소주와는 다르게 맛이 있네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분명 이렇게 취하기 위해 부어서 넘겨마실 술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 진열장 가득 야마자키를 채워두고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즐기며 캐런 잔에 따라 향과 맛을 천천히 느끼면서 마실 텐데. 그리고 일부는 지금을 위해 남겨두겠지.


아프리카에 다녀온 뒤 연락이 끊긴 서기 씨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의 친구이다. 어서 빨리 힘들었던 시간 속에서 벗어나 뾰족하게 세운 가시들을  없애고 그때처럼 실없는 웃음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


실제 모습과 그림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 여름의 금요일 밤 말도 안 되게 곱창을 안주삼아 소주잔에 꿀꺽 마신 야마자키 12년은 1923년 창업한 야마자키 증류소에서 탄생했다. 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몰트 위스키 증류소로 '水生野(미나세노)'라 불리는 명수가 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안개 깊은 기후에서 탄생하는 풍부하고 단맛의 깊은 맛, 과일과 꽃을 연상시키는 달콤하며 화려하고 향기로운 향으로 많은 위스키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음용성이 좋아 위스키를 즐기기 시작한 입문자들에게 추천되는 제품 중 하나이다.


2003년에는 일본 최초의 ISC금상을 수상,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며 재패니즈 위스키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달리레코드 dali.record 

이전 03화 데낄라 한 병 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