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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record Jan 30. 2022

데낄라 한 병 주세요!

히스 씨의 특별했던 주문

언제나처럼 처음 방문한 바(Bar) 또한 우리의 가장 어른이라 할 수 있는 히스 씨의 공덕이다. 히스 씨는 우리와 달리 치열한 경쟁사회의 뜨거운 맛을 제대로 맛 본 어른이 중에 어른이었으며, 우리는 뭐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에게 달려가 서슴없이 질문을 던졌고, 그는 언제나 모르는 것도 없었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 명쾌한 답을 해주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면 시간 아끼지 않고 도와주었다. 치명적인 히스 씨의 약점이라면 항상 그의 주변에는 유학생들이 달라붙어 있어서인 지 일본어를 가장 못 한다는 것이었다.


아, 그리고 지금은 길치에 방향치인 나의 소울메이트로 업그레이드가 되어 내비게이션 역할까지 톡톡히 해주고 있다. 아무튼 바(Bar)라는 미지의 세계 또한 당연스럽게도 히스 씨는 경험이 꽤나 있었기 때문에 그의 등에 업혀 우리는 그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때만 해도 우리의 간은 싱싱한 전성기였기에 술 앞에서만큼은 호기로워질 수 있었지만 히스 씨와 달리 유니 씨와 글쓴이는 의자에 앉는 것조차도 어색하기만 했다. 이런 우리를 위해 히스 씨는 칵테일을 주문했는데 놀랍게도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안 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바텐더 분은 히스 씨에게 그 칵테일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시 것이었다. 참 희귀하게도 히스 씨가 대답을 하면 바텐더 분은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으셨고 한 참 뒤에 정성스럽게 그가 주문한 이름 모를 칵테일을 만들어 주셨다.


사실 그때는 그 광경보다 그곳에 앉아 있는 우리가 더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처음 바(Bar)라는 곳에 갔을 때는 꽤나 새로운 느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면 정말 귀한 광경이었다. 그때의 바텐더 분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 가끔 궁금해진다.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한국에 단골 플레어 바가 있었던 히스 씨가 주문한 칵테일은 색이 다른 일곱 층이 생기는 세븐 레이어였다. 히스 씨는 아쉽게도 지금은 없어진 그 곳의 얘기를 아직까지도 종종 꺼내는데, 이 얘기는 다음에 새롭게 해야겠다.


아무튼 예쁘장하지만 도수가 꽤 되는 칵테일을 꿀꺽꿀꺽 들이킨 우리의 다음 주문은 데낄라 한 병이었다.

이번 주문도 바텐더분을 당황스럽게 했는데, 데낄라를 보틀로 주문받은 것이 처음이라 가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는 일본인들이 비교적 대체적으로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매운 음식에 약할 뿐 아니라 술에도 약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보틀 주문이 처음이라 가격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른다고 하시니 우리도 의아스러워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사장님이 나오셨고, 가물가물하지만 감사하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술쟁이들에게 당시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내어주신 걸로 기억한다.

 

작은 해프닝 후에 테이블에는 호세쿠엘보 한 병과 데낄라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라임과 소금이 놓여있었다. 이번에도 히스 씨가 나서서 데낄라와 라임과 소금을 함께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손님이 우리뿐이었던 아늑하고 분위기 좋은 그 장소는 조금은 요란한 자리가 되어 우리를 더욱 즐겁게 했다.


지금은 칵테일에 들어가는 데낄라 말고는 찾지도 않고, 앞으로 언급될 일이 별로 없을 거 같지만, 그때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호세쿠엘보 한 병을 주문했던 경험은 글쓴이에겐 너무나 특별하게 기억에 남았다.


지금에서 말이지만 칵테일 바에서 데낄라 한 병을 주문하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의아할 일이 아니었다.

후문을 덧붙이자면 다음날 동네 벤치에 자고있던 유니 씨는 서기 씨에게 엎혀 들어갔다고 한다.



아쉬운 건 그때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너무 오래전이라 사진을 찍었어도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후에 자연스럽게 일본에서도 바(Bar)를 종종 가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남아 있는 사진이라곤 이거 한 장이다. 아니 이거라도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사진 속 장소는 기억에 남는 부분이 그리 많진 않은데, 그냥 술들이 늘어져 있는 모습이 예뻐서 찍어 둔 거 같다. 지금 보니 좋은 술이 꽤나 눈에 띈다. 몇 번을 쓰고 얘기하게 되는 부분이지만 이때만 해도 마냥 분위기를 즐기고 술을 마시는 게 좋았던 때라 위스키나 칵테일에 대해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 안타깝기만 하다. 만약 그때부터 위스키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은 술들을 훨씬 더 다양하고 쉽게 맛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실제 모습과 그림이 다를 수 있습니다.


호세쿠엘보는 대표적인 데낄라로 자리 잡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수출하는 데낄라 제조사이며, 가장 많이 소비되는 라인은 위의 호세쿠엘보 에스페셜이다. 데낄라는 멕시코 특산의 다육식물인 용설란의 수액을 채취하여 얻은 풀케라는 탁주를 증류하여 만든 것으로 40도 정도의 도수를 갖고 있으며, 멕시코 사람들은 손등에 소금을 올려놓고 그것을 핥으며 들이킨 수 라임즙을 빠는 방법으로 즐긴다고 한다. 이 외에도 데낄라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며 칵테일 베이스로도 많이 쓰인다.


호세쿠엘보는 1758년 Jose Antonio de Cuervo가 스페인의 왕으로부터 멕시코의 Jalisco지역을 하사 받아 여기에 작은 양조장을 지어 메즈칼(아가베 발효주)을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지금에 이르렀다.

데낄라 증류시설이 들어선 것은 그의 자손 Jose Maria Guadalupe Cuervo때이며, 증류시설은 이후 Fabrica La Rojena라는 이름을 갖는다. 데낄라는 1837년 미국에 처음 수출되었으며 호세 쿠엘보의 이름을 달고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도이다.


@달리레코드 dali.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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