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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record Feb 09. 2022

남대문 주류 구매에 도전하던 날.

던전에서의 첫 구매는 제임슨이었다.

이전의 이야기와 지금부터의 이야기를 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 졸업을 마치고 그다음부터  몇 년간 할 얘기가 별로 없다. 틈날 때마다 여행을 다닌 것이 유일한 이야깃거리이자 자랑거리지만 돌아보면 그냥 인생을 그래프 같은 걸로 나눴을 때 성장기 정도가 아닐까. 사실 대학교 시절도 유니 씨와 히스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너무나 지루하고도 칙칙한  암흑기였고, 지금 나의 위스키 라이프 또한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위스키 입문을 언제 했느냐를 굳이 따져보자면 남대문 주류 상가를 다녀오고 나서부터가 아닐까. 아니면 우연히 보게 된 너튜브였을까. 우리가 말 그대로 던전이라 불리는 남대문 주류 상가에 발을 들이게 된 건 뜬금없이 보게 된 너튜브 채널 덕분이었는데, 사실 즐겨보지도 않고 지금도 가끔 SNS에 올라오는 짧은 영상들만 보는 정도로 이때도  티비를 보다가 위스키에 대한 얘기를 보고 나서 영상을 찾아본 것이 시작이었다. 지금 어떤 영상인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외국생활을 하는 어떤 여자분이 제임슨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던 거 같다.


'집에 두고 먹기 좋은 무난하고도 가성비 좋은 위스키.' 이런 식이 었다. 몇 년 동안 잊고 있었던 유학시절의 향수가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하고 이름만으로도 왠지 모를 허세까지 느껴지는 위스키를 한 번쯤 사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마침 나의 유전자와 성미를 그대로 물려주신 아버지께 드릴 명절 선물을 사러 가야겠다는 핑계가 번뜩 생각났던 것이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히스씨와 나는 다음날 손을 꼭 잡고 남대문으로 향했다. 이게 뭐라고 그리 설레었던 걸까.  이미 지겹도록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우리는 분명 위스키를 즐겨먹었음에도 그 '위스키'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흔히 남던 이라 불리는 그곳은 정말이지 '던전'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대체 어떤 사람이 이리도 찰떡인 애칭을 만들어 준 것일까. 


곳곳에 술들이 빼곡한 장식장이 늘어져 있는 모습은 마치 동굴 속 광물들이 반짝거리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칫 방심했다가는 바가지를 쓰기 딱 좋은 곳으로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거 같은. 말 그대로 남던 이었다.


만약 이곳을 가려고 마음먹었다면 어떤 술을 건질 것인지 그 술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충분한 조사를 하고 입장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충분한 준비를 했다면 흔히 득템을 노릴 수 있으니 입문자에게도 경험자에게도 이만한 채석장은 찾기 힘들 것이다.


우리가 갈 때만 해도 코로나의 존재조차 없었고 해외교류가 원활할 때였기 때문에 다양한 주류를 저렴한 가격에 건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별명이 붙었으니 그때와는 가격이 천지차이인 것들이 많아진 지금은 더욱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어찌 됐든 정보가 힘인 셈이다.


당시 우리가 사려고 정해 놓은 건 명절 선물로 가져갈 발렌타인 21, 우리가 먹을 제임슨. 다른 건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크지 않았기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만 사고 돌아왔다. 만약 좀 더 지식이나 정보가 있었더라면 몇 병은 더 구해왔을 것이다.


아- 그리고 드디어 노징글라스라는 것을 처음 구매한 날이다! 위스키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노징글라스 한 두 종류는 구매하게 되겠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글랜캐런 글라스로 세계적인 위스키 전문지인 위스키 매거진과 전 세계 17개국 23개 도시에서 개최되는 위스키 테이스팅 이벤트인 위스키 라이브의 공식 글라스로 채택된 브랜드로 대표적인 위스키 노징글라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와 비슷한 모양의 글라스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처음 구매한 잔도 글렌캐런 글라스와 비슷한 모양의 글라스였는데, 결국 나중엔 글렌캐런 글라스를 주문했고, 그 뒤로 이런저런 형태의 노징글라스를 들였다. 가격도 브랜드에 따라 굽이가 심한데 사실 글렌캐런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도 다른 것들을 종종 들이게 되겠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자기만족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때의 제임슨은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맛있었던 제임슨일 것이다. 사실 고수들의 흉내를 내며 그 제임슨의 향과 맛을 느끼려 노징글라스에 집중하던 모습은 꺼내기 부끄러운 얘기다.

 

이제는 결혼이란 걸 할 때가 되었지를 넘어 아직도 안 했냐란 말을 지겹도록 듣고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우리에게 위스키는 여행만큼이나 너무나 좋은 둘의 취미가 되었고, 어찌 보면 지금의 걸음마가 되어준 제임슨은 요즘 종종 칵테일 재료로 만나는 중이다.


실제 모습과 그림이 다를 수 있습니다.

술쟁이들에게 일명 '자메손'이라 불리는 제임슨은 아이리쉬 위스키 증류소로 1780년에 더블린의 보우 스트리트에 설립되었다. 더블린은 세계 위스키 생산의 진원지였고, 위스키는 럼 생산 이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유명한 증류주였다. 제임슨은 처음에 6개의 유명한 더블린 위스키 중의 하나였다. 1800년대에는 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생산량이 많았으며, 1805년 세계적인 위스키로 이름을 알렸다. 세 번 증류하고 맥아 건조 과정에서 피트를 쓰지 않음으로써 전통적인 스카치위스키나 버번위스키보다 마시기 쉽고 익숙해지기 쉬운 맛을 구현하였다고 한다.


@달리레코드 dali.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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