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of intuition.
그간 대외적인 일정들을 소화하느라 내내 바빴던 탓에 오랜만에 글을 정리해 본다. 다음 글은 뭐가 좋을지 메모장에 가득 메모해 뒀지만, 이번글은 얼마 전 스페인에서 열린 크리에이터들의 페스티벌인 C de C (https://www.clubdecreativos.com/) 라는 행사에 연사로 참석해 나눈 이야기를 올려볼까 한다.
올해 4월 개최되었던 C de C 페스티벌은 약 일주일의 기간 동안 스페인에서 열리는 행사로 스페인의 전설적인 포토그래퍼, 여성 영화감독, 극작가,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Widen+Kennedy의 Creative director 등 내로라하는 분들의 스피치로 꽉 찬 행사로 'Club de Creativos'라는 그 이름 그대로 모든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을 주는 자리로 기획된 행사였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근무 중인 친구의 소개로 C de C 행사 관계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회를 수락하게 되었는데 행사일이 다가올수록. 또 나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될수록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가. 일단 2024년의 키워드가 ‘Irreplaceable'이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였기도 했으며 약 천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참관할 것이라는 주최 측의 이야기, 무엇보다 다수의 스페인 사람들 앞에 선다니 그 긴장감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조직위의 President인 Gonzalo Figari는 내가 이런저런 고민과 주제를 논의할 때마다 늘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그 주제를 좁혀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곳의 모두와 명상을 나누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스페인의 많은 사람들이 명상의 중요성에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고 또 그런 부분에서 나를 연사로 추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오늘 글에서는 'Irreplaceable (대체불가)'를 주제로 그곳에서 천여 명의 스페인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었는지 글로 정리하여 구독자분들과 다시 한번 나누고자 한다.
IRREPLACEABLE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IRREPLACEABLE definition: too special, unusual, or valuable to replace with something or someone else. 다시 말하자면, 대체불가.
이 주제는 현시대의 창작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 준 AI에 대한 화두에 관한 것이었다. 나 역시 창작자 중 한 명이긴 하지만 그에 대한 일방적 의견은 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떠들어 댄다 한들, 어설프게 점지한 그 미래는 내일이면 달라질 것이기에 과거가 될 대화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나와 당신이, 우리가 가진 힘에 방점을 찍어보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기술이라 부르는 것들은 매우 논리적인 알고리즘을 통해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진화해가고 있다. 광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맞이하는 그 변화 또한 실로 놀랍다. 단적인 예로 포토샵만 하더라도 과거에는 인물의 이미지를 하나 합성하려면 머리카락 하나하나 클릭해서 깔끔하게 정리해야 했던 그 시간이 무색하게 요즘은 그저 프롬프트 한 줄로 수초 안에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이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인사이트는 바로, ‘Let's go back to ourselves.‘이었다. 기술은 앞으로 점점 더 불필요한 노동의 시간을 줄여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시간을 이용해 우리가 가진 고유한 차별점으로, 고유한 힘의 원천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돌아가야 한다는 걸까?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먼저 내가 좋아하는 한 광고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15년 전 온에어 된 조니워커의 광고인데 한 안드로이드 로봇이 등장하여, 다음과 같은 진중한 내레이션을 읊조린다.
“I am faster than you, stronger than you. Certainly I will last much longer than you. You may think that I am the future. But you’re wrong. You are. If I had a wish, I wish to be human”. “To know how it feels to feel”. The android grabs a butterfly in his hand, then releases it. “To hope, to despair, to wonder, to love. I can achieve immortality by not wearing out. You can achieve immortality simply by doing one great thing. Keep w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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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보다 빠르고, 강합니다. 분명 당신보다 더 오래 지속되겠죠. 당신은 내가 미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틀렸습니다. 미래는 바로 당신입니다.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나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느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희망하고, 절망하고, 궁금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나는 닳지 않음으로써 불멸을 이룰 수 있겠죠. 하지만 당신은 단 한 가지 위대한 일을 함으로써 불멸을 이룰 수 있습니다. Keep walking."
이 광고에서 말하듯, 인간은 희망하고, 절망하고, 호기심을 가지며, 사랑하는 존재이다. 기계와는 반대로 비논리적인 사건에 기쁨을 느끼는 존재인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깖갈개며 숨이 넘어갈 듯 친구와 함께 웃는 순간, 힘든 순간에도 희망을 품으며 미래를 그리는 순간. 우리가 진실로 행복을 느끼는 모든 순간에는 늘 비논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 인간은 단 한 가지 위대한 일을 함으로써 불멸을 이룰 수 있다. Keep breathing. 바로 '숨쉬는 것‘으로 말이다.
바다는 밀물과 썰물로 그 생명력을 증명하고, 잎사귀 하나하나의 광합성에 숲이 생동하듯 자연은 늘 숨을 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계와 대척점에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호흡은 우리의 삶에 있어, 모든 생명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것을 간과하며, 또한 같은 이유로 많은 이들이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확실한 것은 호흡할수록 우리의 의식은 더욱 명징해진다는 것이다.
명상가이자 뇌과학자로 저명한 디팩 쵸프라는 자신의 저서 중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상의 목적은 잠시 생각을 멈추고, 생각의 안개가 옅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면의 영혼을 얼핏 엿보는 것입니다.'라고.
즉, 평소의 우리의 의식 상태는 마치 물컵에 여러 잔여물들이 떠도는 것과 같이 생각으로 가득한 상태라면 호흡하며 명상하는 동안은 생각의 불순물들이 잠시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생각의 안개가 옅어진 상태, 맑은 의식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Mind-full (가득 찬 상태)에서 Mindful (의식적인) 상태로 전환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가만히 멈추어 호흡하며 지켜볼 때, 우리는 옅어지거나 비워진 의식의 상태를 지켜볼 수 있으며 이때 오직 인간만의 대체불가한 힘이 떠오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직관의 힘'이다.
몇 년 전 호주의 원주민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가. 호주에서 큰 산불이 났을 때 그들은 어떠한 모바일 장치도 없이 서로 소통하며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였다는 놀라운 이야기 말이다. 태초의 인간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기술에 의존하며 그 능력이 약화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실 이 직관의 힘을 설명하기 위해 거창하게 텔레파시의 힘이나 초능력적인 예를 들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당신 또한 A or B의 선택지 앞에서 비논리적인 어떤 이유로 특정 방향을 향해 이끌린 적이 있었을 것이며, 돌아보면 그 선택이 당신의 삶에서 큰 영향을 미친 적이 한 번쯤을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직관의 힘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기계를 통해 학습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오직 인간만이 가진 힘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체불가한 힘이다. 이는 본능적인 것과는 별개의 것이며 또한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초능력도 아니다. 이는 명료한 의식의 상태에서 당신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초월적인 생각의 형태이자, 인간에 내재된 가장 본질적인 힘의 형태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시작점에 바로 호흡이 있다. 멈추어 가만히 호흡할 때, 밖으로 펼쳐져 있던 안테나를 거두고 당신의 안으로 의식을 되돌릴 때, 생각의 불순물들이 가라앉을 때에, 이 직관의 힘은 더 또렷하고 강하게, 일순간 당신의 고요한 의식 위로 떠오를 것이다.
진심을 담아 전달한 20분간의 스피치는 짧은 명상 연습으로 연결되었다. 관객석의 많은 이들이 함께 집중해 주었고, 나는 가장 기본적인 호흡을 나누며 무대를 마무리하였다. 양손을 크로스하여 상체를 안는 순간, 다시 무릎 위로 손을 가져다 놓는 순간. 그 사소한 바스락 소리에 천여 명의 인파가 곱해지자 그 넓은 공간은 마치 파도가 일어나듯 큰 바스락 거림으로 채워졌다.
나와 그곳의 사람들 대부분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단 7분. 우리 각자는 한 그루의 호흡하는 나무였고 들숨과 날숨의 바람으로 가득한 숲은 고요한 생명력으로 함께 진동했다. 그와 같은 높은 진동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미약하게나마 전해지길 바라며, 앞으로 전하고 싶은 글도 찬찬히 정리해 나가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