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이름, 라일리 앤더슨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 여자 아이 이름이다. 오늘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는 '라일리 앤더슨'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매우 드물게 이 영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간략히 디즈니에서 소개하는 영화 줄거리를 가져오자면 다음과 같다.
<인사이드 아웃 1>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 <인사이드 아웃 2> 13살이 된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매일 바쁘게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를 운영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그러던 어느 날, 낯선 감정인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가 본부에 등장하고,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며 제멋대로인 ‘불안’이와 기존 감정들은 계속 충돌한다.
위의 설명처럼, 라일리라는 주인공에겐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들이 존재하며, 라일리의 일상에서 그녀의 감정들은 그녀의 상태에 따라 작전을 바꾸고, 기쁨이가 아닌 다른 감정의 소중함을 강조하기도 하며 때론 불안이 같은 감정에 속절없이 잠식되기도 한다. ’모든 감정은 소중해'라는 영화 속 대사를 꼽으며, 영화를 갈무리한 블로그들을 많이 보았지만, 오늘 글에서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감정들의 역할에 공감하고 라일리에 공감한다는 건 우리들 또한 일상에서 많은 감정들에 휩싸여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2편에서 등장한 '불안이' 감정은 어른이 된 우리들에게 어쩌면 더욱 와닿는 감정일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 라일리들은 모두 불안하니까. 과거에 대한 집착, 미래에 대한 고민. 이 모두가 불안의 감정이다. 그렇다면, 흔히 생각하는 '좋은 감정들' 즉, 기쁨이나 사랑에는 불안이 없을까? 아니, 사랑의 이면에는 집착이 있다. 양가감정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양가감정이란어 떤 것에 대해 동시에 상충되어 일어나는 반응이나 행동, 생각을 말한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할 뿐, 모든 감정엔 긍정과 부정의 두 측면이 있다. 그리고 모든 감정은 그 깊은 곳에 이유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사랑의 양가감정은 집착이며, 집착의 깊은 곳엔 불안이 있으며, 그 불안을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유년 시절의 기억 혹은 개인적인 사연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지금 당신의 감정, 그 끝에 있는 감정을 ‘뿌리 감정’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깊게 감정을 파악하는 일은 왜 중요할까?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당신은 그것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제거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상태가 어떠한지 모른 채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에서 라일리가 자아를 잃고 자신답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의 상태와 같은 상태이다. 영화에서의 라일리는 혹은, 일상에서의 우리는 대부분감정에 지배된 채 살아간다. 지나간 일에 이불킥을 하고, 몇 년 뒤의 일을 걱정하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온전히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때는 언제일까?
대부분의 감정들은 과거 혹은 미래에 있다. 과거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며, 미래 역시 예측이 불가능함에도 오직 우리만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스스로 쳐 놓은 감정의 그물에서 허덕인다. 그렇다면, 당신이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일까? 바로,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 말이다. 찰나 그리고 다음의 찰나. 이 순간만이 당신이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온전히 자유롭기 위해서 당신은, 라일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주 단순하다.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길 건너의 나를, 라일리가 길 건너의 라일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유 없는 슬픔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든지, 속절없이 불안에 잠식된다든지, 가짜 긍정에 억지웃음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길 건너의 라일리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기쁨이인지, 슬픔이인지, 불안이인지 혹은 분노인지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면,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면 감정을 바라본다는 건 어떤 것이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라일리의 경우 두 친구와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못해 서운한 마음이 드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때 라일리는 까칠하게 굴어야 할지, 기쁨이가 시키는 대로 억지웃음을 지어야 할지. 슬픔이처럼 엉엉 울어야 할지 갈팡질팡한다. 오늘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당신이 뭔지 모를 기분 나쁨을 느꼈다고 생각해 보자. 대부분은 그저 기분이 나쁘다로 넘어가고 억압하며 다른 방법으로 그 화를 풀겠지만, 지금부터는 그 감정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 그리고 그것을 계속 관찰할수록 뿌옇게 가려진 그 감정이 점점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라일리의 경우, 자신만 빼놓고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정한 두 절친에 대한 속상함, 화남 그리고 그 감정의 양가감정으로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것이고, 또 그 감정의 양가감정으로 친구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애정과 같은 말인 집착이 있었을 것이다. 라일리가 그 감정을 바라보았더라면,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 또한 알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불안에 휩싸인 채 라일리스럽지 않은 행동으로 도피처를 삼은 것이다.
어쩌면 이 바라보는 연습은 순수한 아이들에게 더 쉬운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7살 딸은 영화를 본 뒤부터 어떤 속상한 상황에서 종종 '내 마음에 슬픔이가 다섯 명 있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아이들의 경우,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이유가 어른들과는 달리, 감정 억압에 대한 학습이 덜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 어른이 된 우리로써는 쉽지 않겠지만, 시간을 내어 감정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그럴 때에 당신의 감정이 대부분 과거와 미래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할 때, 당신은 지금 이 순간, 현재의 고요함과 자유로움을 마주할 준비가 된 것이다. 명상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어제 버클리에 재학 중인 뇌과학(Neuroscience) 전공자와 줌으로 뇌과학과 심리학, 그리고 명상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직관력'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대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가 과도한 자극을 줄이면, (눈을 감고 명상을 할 때, 눈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을 차단하는 상태) 뇌는 그 힘을 다른 일을 하는데에 쓰게 되지. 그런데 그 다른 일들이란 대부분 우리가 겪었던 걱정이나 처리되지 않은 감정인 경우가 많아. 그리고 명상 상태에서 깨어나면, 전에 생각했던 불필요한 생각들이 멈추거나, 해결되었거나 혹은 해결책을 찾았다고 느끼는 거야."
많은 과학자들이 명상을 할 때, 이마 앞쪽에 위치한 뇌의 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중명했다. 전전두피질은 충동을 통제하고, 깊은 감정이 올라와도 적절하게 억제하여 휘둘리지 않고 이 감정과 함께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즉 명상을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볼 때, 그저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닌 오히려 가장 이성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라일리 머릿속의 감정들처럼 날뛰며, 나를 지배하는 상태가 아닌 내가 그 감정들을 적절히 통제되는 상태, 나아가 직관력이 발휘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명상을 하기 전 나는, 너무나도 라일리 앤더슨 그 자체였다. 물론 매일 아침저녁 명상을 하고 있는 지금도 하루 간 몇 번이나 여러 감정들이 올라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감정을 바라본다. 혹시나 수년 뒤 인사이드 아웃 4가 영화로 나온다면, 인생에서 많은 감정들에 지친 중년의 라일리 앤더슨이 고요한 방에 앉아 명상을 하며 머릿속 감정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체 모를 감정들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내가 그 감정의 주인임을 알아가는, 내면이 성장한, 썩 나쁘지 않은 어른이
된 라일리 엔더슨의 엔딩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