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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현 Feb 03. 2024

무섬마을에서 울다

할머니의 유품을 챙기듯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사실 처음 영주로 향한 이유는 부석사를 가보고 싶어서였다. 배흘림기둥이 예쁘다는 그곳. 좋은 책 속에 좋은 명소로 소개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아는 분이 올해 다녀와서 정말 좋았다는 말까지 들어 몇 달 내내 마음속에 부석사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운 곳은 부석사의 기둥이 아니었다. 부석사를 나와 무섬마을의 한 고택 앞에서 나는 펑펑 운 것이었다. 

 내성천이 마을을 한적하게 감싸 흐르고, 그 위에 누군가가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양보를 해줘야 하는 외다무다리를 가진 무섬마을에는 많은 고택이 즐비했다. 고택마다 그 집을 소개하는 작은 팻말이 붙어 있었고 고택 중에는 카페로도, 숙박업소로도 바뀌지 않고 여전히 후손들이 삶을 이어가는 집들도 있었다. 아석 고택도 바로 그런 집 중 하나였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대문 앞을 구경하며 서성이다 실례를 무릅쓰고 살짝 고개를 넣어 집 안을 들여다보니, 마당 너머 안채에서 TV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누군가 베개를 머리에 고이고 이 조용한 오후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나 보다. 

 그때 익숙한 냄새가 났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늘 나던 이 냄새 - 고추나 마늘이나 매주 등이 따스히 말라가며 오랜 세월 나무 기둥과 흙벽에  스며든, 시골집 특유의 냄새였다. 얼마 만인가, 이 냄새. 익숙함에 반가움이 앞섰다. 하지만 오래 고개를 넣고 있으면 더 실례일 것 같아 발걸음을 돌려 고택 골목으로 다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두 눈에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의 정체를 나조차도 알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사연 있는 사람으로 볼까 나는 다른 사람들을 피해 한쪽 돌담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울다 나는 이 눈물의 정체가 오랜만에 맡은 냄새가 반가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잊고 있었다는 미안함, 아니 잊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나에 대한 자책이 나를 울게 했다. 단 한 번으로도 이렇게 알아챌 만큼 얼마나 익숙한 냄새였던가. 그리고 그 익숙함 정도만큼 얼마나 사랑했던 냄새였던가.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집이 헐려진 지 오래도 되지 않아 나는 내가 이 냄새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를 반기던 당신의 목소리와 나를 살찌우던 당신의 음식들. 나이가 서른을 넘어도 언제나 어린 강아지 보듯 나를 바라보던 당신의 눈동자. 당신의 큰 사랑을 손주 중에서는 내가 제일 많이 알고 있을 거라고 자만하던 나는 이렇게 할머니의 하나를 또 잊은 채 지내고 있던 것이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관광지에서 울고 있는 내가 창피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다 이렇게 돌아가면 언제 또 이 냄새를 맡게 될지 몰라서,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아석 고택을 향해 걸었다. 설사 또다시 이 냄새를 잊게 되더라도 내가 어떤 냄새를 맡고 자랐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 다시 대문 안으로 가만히 머리를 넣고 할머니의 유품을 챙기듯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할머니, 당신은 이렇게 또 저를 위해 현현하셨군요. 어떨 때는 맛으로, 또 어떨 때는 촉감으로. 그리고 이번에는 냄새로. 혹시 타지에 또 홀로 여행을 간 제가 신경이 쓰이셨던 건가요?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당신에게 전 여전히 어린 강아지일 테니까요. 당신 덕분에 그날 저는 외롭지 않게 무섬마을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처럼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앞으로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차로 돌아가는 길에 무섬마을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만났다. 

 "무섬마을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상은 자유로운 마을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과 농민이 함께 공부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운동의 본거지로 양반과 상민,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민족교육을 실시했던 아도서숙이 있었다. 6.25 전쟁 때에는 좌익과 우익이 공존한 마을이었다."

 그날 무섬마을에서의 시간이 따뜻했던 이유는 냄새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곳은 예전부터 따뜻한 곳이었다.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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