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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현 Jan 27. 2024

포개 놓은 소원

내 돌 위에 포개 놓일 다른 이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수덕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조형물들이 많이 있었다. 아마도 이응노 화백의 흔적이 있는 수덕여관이 수덕사와 함께하는 영향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조형물마다 돌을 얹어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이 올려 있었다. 조형물에만이 아니었다. 수덕사에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수를 대변하듯 절 안에도 수많은 돌탑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절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도 못다 한 소원이, 혹은 부처님께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소원이 사람들 대부분 하나씩은 있었나 보다. 

 절을 내려가는 길에 나도 돌 하나를 주어 사람들이 쌓아 올린 돌탑 위에 행복을 바라는 소원 하나를 올려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처럼 높이는 쌓이지 못하고 고작 돌 몇 개의 높이로 옹기종기 모여 군락을 이룬 돌탑들. 이들은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오고가는 사람들을 통해 생겨났을 것이다. 

 

 차를 몰고 태안의 한 서점에 들렸다가 운여 해변을 향해 가는 길에 안면암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마주쳤다. 하루에 두 곳의 절을 들리는 것이 신경 쓰여 다음을 기약했던 곳이지만 이렇게 거리에서 표지판을 만나니 반갑기도 했고, 이곳에서 멀지 않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의 숫자를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 운여 해변을 잠시 뒤로 밀어둔 채 안면암으로 차를 돌렸다.

 안면암 앞의 갯벌에는 탑이 하나 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후 태안(泰安)의 이름처럼 이 지역이 다시금 편한 곳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자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부상탑은 그 이름처럼 밀물 때 바닷물 위로 뜬다고 한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물때가 썰물이어서 탑이 물 위로 뜬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갯벌을 통해 부상탑까지 걸어갈 수는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부상탑은 세월과 바닷바람에 의해 온전치 않은 모습이었다. 더구나 전문가가 아닌 불자들이 만들었으니 그 맺음새가 완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 허술함에서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많은 진심이 모여있음을 볼 수 있었다. 탑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자 한쪽에 돌탑을 쌓을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어 돌탑들을 다시 만났다. 사실 돌탑은 여기뿐만 아니라 부상탑 앞의 비스듬한 암석 해안에도 많이 놓여 있었다. 심지어 암석에 넓적한 돌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도 있었다. 

 돌탑 하나에 세 개에서 다섯 개 정도의 돌이 쌓여 있으니 몇백 개의 소원이 이 바닷에 놓여 있는 셈이었다. 우리네 삶에는 왜이리도 빌 것들이 많은지. 그 소원들은 모두 다 이루어졌을까? 혹시 소원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바닷바람에 돌탑이 쓰러지지는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여기의 돌탑들은 바닷바람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걸까? 돌탑들을 바라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돌탑의 생김새가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돌 위에 놓여 있는 돌. 돌탑은 누군가가 놓은 돌이 있어야만 그 위에 자신의 돌을 올릴 수 있다. 이는 누군가의 소원이 있어야만 자신의 소원을 빌 수 있다는 것이며, 곧 한 소원이 다른 소원에 기대고 있다는 의미이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지만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주며 내 소원도 네 소원도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돌탑의 모습으로 드러난게 아닐까한다.

 문득 좀전의 수덕사에서 누군가의 돌 위에 나의 돌을 올려놓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어떤 돌을 올려놓았던가. 작고 둥근 돌, 다른 돌 위에 올리기는 쉽지만 그 위에 다른 돌을 올릴 수는 없는 돌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소원에 기대어 내 손원을 빌었으면서도 다른 이가 자신의 소원을 빌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지는 못하였다. 어쩌면 좀 전에 보았던 암석 위에 홀로 놓여 있던 넓적한 돌 하나는 누군가가 그 위에 편히 소원을 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허리를 숙여 넓적한 돌을 골라 암석 위에 홀로 있던 돌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 돌 위에 나의 돌을 포개어 놓자 또 하나의 돌탑이 만들어졌다. 내 돌 위에 포개 놓일 다른 이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손님처럼 방문한 안면암에서 나는  이런 소원을 빌고 운여 해변으로 떠났다.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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