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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Nov 24. 2018

여행이라는 일곱 색의 무지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곳, 하지 않아도 되는 곳

여행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선택지들이 눈 앞에 놓여 있는 것과 같다.

주인도 없는 집에 몰래 들어가 낯선 부엌에서 익숙하게 잘 차린 저녁 한 끼를 만들어 먹는 것. 그리고 다시 몰래 빠져나오는 것이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라는 것은 그렇게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 인양 취하고 돌아와서는 그것의 죄책감과 이면의 희열에 조금은 아픈 현실의 얼마만큼을 견뎌내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죄책감이 희미해질 무렵 다시 희열을 좇아 비행기에 오르게 되는 것. 여행이 선물해준 끝나지 않는 되돌이표.



홀로 잠드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여행이고, 홀로 눈을 떴을 때 약간은 쌀쌀해진 마음을 달래야 하는 것이 여행이다. 방향을 잃어버리고 걷는 낯선 거리 위에서 문득 당신과의 기억을 떠올려 다시금 탐해보기도 하고, 호기롭게 품었던 마음이 결국 내가 가질 수 없는 욕심이었음을 알고는 와인으로 벌게진 얼굴을 감춰보기도 한다.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금 벌어지는 것도, 아물지 못했던 상처가 금세 아물어 버리는 것도 여행이 부리는 마법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이 여행이고, 사실은 모든 것이 내 잘못임을 시인하게 되는 것도 여행이 우리를 위로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흘러가는 대로의 여행과, 찾아가는 여행의 두 갈림길에서 나는 매번 첫 번째 길을 선택했었다.

내가 사람과 엮이는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노력하고 싶었지만 노력하지 못했고, 드러내고 싶었지만 마음이 붉어져 몇 박자 망설였던 설익은 마음들. 그러는 동안 여러 사람이 나를 지나쳐 흘러갔었다. 나는 흘러가버린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방법을, 그러니까 몰래 몇 번인가 울고 나면 괜찮아진다는 걸 당신이 없는 길 위에서 깨달았다. 

포기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발을 빼고 향했던 마음을 거두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가 조금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또 내가 무심하게 흘려보낸 시간들도, 사람들도, 여행들도 결국 나에게 무언가를 건넨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건네받은 그 무언가의 무게가 얼마만큼 이건 그것을 받아내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것 까지. 그것 때문에 몇 번의 계절들을 계절의 감각 없이 보내게 된다 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잘하지 못했을 때 그것에 절망하기보다는 그래도 그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괜찮았던 것. 그것이 나의 여행이었다.



몇 번 인가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보트를 탔다.  

지쳐서 하늘을 몇 번인가 올려다보고, 땅이 꺼져라 한 숨 몇 번 내쉬고, 식욕은 없지만 두 세끼의 밥을 먹고, 목이 말라 생수를 몇 통인가 비워냈다. 지루한 시간들을 꾸역꾸역 지나가게 하고, 엉덩이를 비비며 몇몇의 딱딱한 의자들을 견뎌내고 나니, 드디어 시판돈에 도착했다. 시판돈은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목적지였고, 라오스의 남쪽 끝자락 어딘가 였다.

일단 그곳에 도착하고 나니 이제 됐다 싶었다. 순식간에 담뿍 만족스러웠고 결국 이곳까지 도착해버린 내가 대견해지기까지 했다. 

방향을 놓쳐버린 여행이라는 미로 속에서 어찌 되었건 난 결국, 

시판돈에 도착한 것이다.



강 근처의 적당한 숙소를 잡고는 일단 밥을 먹었다. 

숙소 아주머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빈약한 재료로 적당히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어 내오셨다. 여행 중에 뭔가 엄청난 것을 기대하면 그만큼의 실망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유별나지 않게 적당한 아주머니의 볶음밥은 시판돈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마을의 길은 전부 흙길이었고 며칠 동안 비까지 내렸으니 온통 진흙투성이다. 하지만 괜찮다.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는 맨발로 다니면 된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가기 전 근처 개울에서 대충 발을 헹구면 그만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했다. 아마 한 여름 우기 철 시판돈에서 지내는 노하우 NO.3 정도가 되지 않나 싶다.

시판돈은 수많은 작은 섬들이 서로를 이어가며 만들어진 곳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이어져 있는 섬들을 오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머무는 섬에도 다른 몇 개의 섬들로 이어진 다리가 있었지만 머무는 내내 난 내가 머물고 있는 섬을 벗어나지 않았었다. 귀찮기도 했지만 딱히 다른 섬으로 갈 아유가 없었던 것이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숙소에서 다 해결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다. 시판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며 아무 곳도 갈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말이다. 그러니 굳이 다른 섬으로 갈 이유가 없었던 거겠지.


하루의 대부분을 작은 의자에 앉아 멍하니 강을 바라보며 지냈다. 

해가 떠있는 동안, 시시각각 자신의 색깔을 바꿔가는 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서서히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한다. 내 몸의 어디에선가 ‘음. 지금은 꽤 좋은 상태야. 편안하고 나른해.’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그럴 때면 정말 나는 내 주위의 모든 것은 될 대로 되라고, 라는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며칠 째 읽고 있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는 것도, 저녁에 무얼 먹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내일 만나서 함께 축구를 하자던 동네 꼬마와의 약속도 우주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다. 

그동안 그토록 힘겹게 손에 쥐고 이를 악물고 버텨왔던, 인생에서 중요하다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이 시판돈의 무지개 빛깔 태양 앞에서 결국 사그라져버린다. 약간은 게으른 한줄기 따스함이 나를 관통하고 난 모든 게 괜찮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던 시판돈에서의 나의 몇 날들은 여전히 나의 삶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곤 내가 의미 없는 무언가에 집중한 나머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 가고 있을 때쯤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는 나에게 말은 건다. “그런 것 따윈 우주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려.”라고 말이다.

그럴 때 나는 시판돈의 태양을 다시금 가슴에 새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냈던 나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괜찮다, 괜찮다, 다섯 번쯤 중얼거린다.



하나의 따듯했던 풍경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곳에 나라는 사람이 있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따듯했던 풍경.

누군가는 쉬어갈 테고, 누군가는 풀리지 않았던 고민을 잠시 접어둘 수 있는 곳.

나에게는 그곳이 시판돈이었고, 누군가에겐 여행이라는 이름의 어느 곳이겠지.


여행이라는 무지개가 만들어낸 일곱 가지 색을 모두 가져보려 했다가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마음에 엉긴 몇 가지의 것들을 끄러 모아, 내 것이 아닌 것들을 티 나지 않게 조금씩 흘려보낸다. 

배낭 위에 짐을 모조리 꺼내어 필요한 것과 욕심이었던 것 사이에 선을 그어보기도 하고, 언젠가 자꾸만 당신에게로 향했던 마음에 그러면 안된다 그어놓았던 선들을 아무도 몰래 발로 비며 지워본다.


지금으로부터 조금만 더 멀어져, 

조금만 더 간절하게, 

아팠던 어느 날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꺼내보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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