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마지막> # 증후 ③
하필 그날은 대대적으로 낙엽쓰레기를 청소하는 날이었다. 늦은 오후 비 온 뒤 영하의 날씨가 예고됐다. 나인은 지하철 출구에 올라서며 다시 한번 오늘도 옷차림이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매번 이렇게 어긋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제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어보니 가장 안쪽에 입은 내의가 흥건히 땀으로 젖어있었다. 두툼한 스웨터는 오버라고 단정한 나인은 안에 레이어드해 입던 얇은 니트티 한 장에 엉덩이를 덮게 오는 바바리자켓만 입고 나온 상태였다. 집을 나설 때는 긴가민가 했고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던 중에는 살짝 돌아갈까 망설였으며 도착지에 내려 출구에 나와서는 완전히 후회를 하고 있었다. 나인은 매일 아침 날씨앱을 열어 온도를 체크하면서도 환절기에는 매번 옷입기에 실패하는지를 생각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옆문으로 들어설 때 나인은 돌바닥 위를 빗자루질 하고 있는 남색 유니폼을 위아래로 입은 경비아저씨 둘셋쯤과 마주쳤다. 잔디를 가로질러 놓인 현무암데크 위로 하얀 흙먼지가 이리로 저리로 쓸리는 것이 보였다. 나인은 현무암데크를 피해 잔디 위를 가로질러 걸으며 공기 중에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예 예 라거나 안녕하세요 라는 등의 겹친 소리를 옆으로 흘려 들으며 잔디를 벗어나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잇댄 도로로 접어들었을 때는 아저씨 두 분이 하수 우수 맨홀의 그레이팅을 들어 철망 위 잔여물들을 손으로 걷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두 사람은 얼른 지나가라고 손짓을 하고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나인은 주춤거리며 고민하다 주차장 쪽 건물입구가 아닌 소공원을 가로질러 건물의 다른 쪽문으로 들어가는 방향을 잡았다. 주차장쪽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조금더 빨랐지만 예기치 않은 추위에 1층 카페에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들고 들어갈 계획에 조금 우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음지진 길보다 양지바른 길을 택하는 것이다.
소공원으로 가는 도보길에 들어섰을 때 어김없이 무리진 일군의 사람들이 낙엽을 청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갈퀴로 쓸어 모아두면 몇몇이 바닥에 낙엽을 주워 마대자루에 담는 일사분란한 움직임이었다. 그제서야 나인은 관리사무소 직원 전원이 소집돼 진행되고 있는 낙엽쓰레기 대청소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무국 일과 관리사무소 일의 성격이 너무 다르기도 했지만 업무공간도 다른 건물로 뚝 떨어져 있는데다 그보다는 세대로 양분되어 좀처럼 섞이지 못했고 그래서 각자는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래도 나인은 사무국 직원 중에서 미화와 보안을 담당하는 관리사무 직원들과 대면으로 소통하며 업무협조를 요청할 일이 잦고 안부도 곧잘 나누는 사람인 편에 속했다. 나무로 우거진 우물 같은 소공원을 비켜 거칠 것 없이 하늘이 바로 보이는 테니스장 앞마당을 가로질러 가며 나인은 잔뜩 찌푸린 하늘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을 했고 동시에 인사할 타이밍을 보느라 공원 안쪽을 살폈다. 아저씨들과 나인의 사이는 목인사 정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거리로 멀어져 있다. 혹여 그 쪽에서 먼저 인기척을 느끼고 이쪽을 쳐다보면 목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나인은 뒷 목에 긴장을 유지하고 얼굴에 연신 미소를 띈 채로 느긋이 걸었다. 그때 무리 중 누군가 요새 낙엽청소 공공근로 일당이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고 누군가 우물대듯 액수를 말하기가 무섭게 택도 없는 소리 말라는 듯 또 다른 누군가 칠만원은 준다고 대꾸했다. 한 쪽에서 마대자루를 잡고 있던 아저씨 한 명이 허리를 피고 그렇게나 준다고 하고 되물었다. 쪼그려 앉은 아저씨들 중 또 한 사람이 4대보험도 들어야 해서 그 정도는 줘야 남는다고 말하자 허리를 펴고 섰던 아저씨가 다시 마대자루를 신중하게 잡는 모션을 취했고, 이만하면 전문가들 이라며 그 정도 줘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는 누군가를 따라 몇 몇이 동의하는 말들을 이어붙이며 작게 웃는 소리가 낙엽 밟는 소리처럼 까마득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분주한 나인을 아랑곳 없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예닐곱 사람들의 머리 위로 일감이 시도때도 없이 쏟아져내렸다.
나인은 Y의 보궐선거 당선 직후 생긴 S시 주민자치센터에 있을 때가 문득 떠올랐다. D구 어느 마을에서 풀뿌리지역활동을 하다가 이직해 주민자치센터 직원이 된 선생님 한 분이 제안해 한 달에 한 번씩 건물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줍거나 공간을 기록하는 번외 활동을 했던 것이다. 이 일은 뒤이어 생긴 청년혁신플랫폼, 노인복지지원센터 등의 다른 기관으로까지 제안돼 자발적인 공동체 활동으로 확대되었는데, 야외활동하기 좋은 한 철 세 번 정도 이어지다 조용히 사라졌다. 그날이 되면 다같이 섞여 단지 안팎에서 도시락을 시켜 먹었다. 어느 회차에는 젊은 직원들의 흥미를 돋우는 차원으로 팀대항 단체게임이 기획되기도 하였는데, 넓은 단지 공간을 활용해 보물찾기, 스피드퀴즈, 숨은그림찾기 등을 모티브로 한, 50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변형된 형태의 게임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40~50대의 중장년으로 구성된 팀이 우승을 차지했고 이들 팀 이름은 ‘니들이 불혹의 멋을 알아’ 였다. 우승팀에게는 인근 한식당에서 팀회식 쿠폰이 주어졌지만 실제 그 쿠폰을 이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모두는 창의테크밸리의 운영계획이 서기 전의 일이다. 당시 단지에는 막 생긴 시 산하의 중간지원기관 직원들이 가장 많이 정주해 있었고 이런 공동체활동 탓인지 지나다 잘 모르는 사람을 마주쳐도 가볍게 인사를 나눴으며 반가운 얼굴이 보이면 적의 없는 얼굴을 드러내고 곧잘 웃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가벼운 인사치레조차 이제 어려운 것이 되었다.
마침내 낙엽 줍는 아저씨들로부터 시선을 거두었을 때 나인은 꼭 다른 세계에 와 있는 착각에 빠졌다. 돌아선 얼굴은 온기 없는 종이컵에 담겨진 커피처럼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닫힌 자켓 안으로 원통형의 부피를 띄고 찬공기가 비집고 들어왔다. 인근 체육시설에서 떼어와 재활용했다는 색이 바랜 인조잔디 위 탁한 색을 띄고 직선의 건물들이 블럭처럼 솟아있고 빛을 잃은 하늘을 수평으로 가른 잿빛의 산등성이가 뜯겨진 종이처럼 납작하게 보였다. 나인은 그만 불행한 기분이 되었다. 폐허가 된 곳으로 걸어들어가는 중인 것 같았다. 낙엽구르는 것만 보아도 입 속에서 실없이 웃음이 새어나오는 단란한 풍경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불과 2년반전과 현재가 까마득하게 멀게 와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
나인이 잘 다니던 S시 주민자치센터를 7개월만에 그만둔 건 순전히 경직된 행정조직이 맞지 않아서 였다. 새 시장의 정책사업이 그 합목적성에 부합되도록 역할을 하는 시 중간지원기관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을 때였다. 새 시장의 요구라는 것은 ‘아’와 ‘어’의 한끗 차이 같지만 엄연히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건 기존 행정시스템에서 시혜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던 정책의 대상자들을 정책 수립의 직접 설계자 내지는 참여자로 사고를 전환하는 것이었고 행정의 내적 성질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으며 행정조직이 가장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새 시장은 행정혁신이라는 키치 아래 이 혁신을 주도할 선행적 전략사업으로 주민자치, 청년, 신노인복지 등을 꼽았으며, 공급자이기만 했던 행정의 언어와 규칙을 조정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민의 니즈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하여 민과 관 사이에서 매개자적 역할을 하는 기관이란 의미의 중간지원기관을 세우기 시작했다. 위로는 민간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행정시스템에 차용한다는 취지도 있었지만 아래로는 모든 예산을 시로부터 받아 쓰는 중간지원기관이 시 행정에 빠르게 종속되어 가는 것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공공행정의 필수업무를 민간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시민사회 내부로부터의 비평과 동시에 시의회로부터 시민사회의 특정 정치 세력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의심을 받으며 그 정당성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따끈한 이 신생조직들은 사방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찌그러진 양은냄비처럼 금방 헌 것이 되어갔다. 이 무르기 짝이 없는 것들은 포장지에 따라 특정 정치 집단의 일자리이기도 하면서 사회공공서비스 민영화의 초석 같은 것으로 금세 둔갑되었다. 태동부터 민간조직도 아니고 행정조직도 아닌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닌 조직이라는 자기부정을 거듭하며 결국 자기방어적 생존투쟁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었다. 이 때 하루하루가 지리멸렬해 보이던 나인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 건 당시의 센터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던 모임에 나인을 초대했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시민단체를 구상하고 있던 승곤을 그녀에게 소개했다. 승곤은 이 모임에서 내내 각 미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직된 행정조직의 밖에서 통합적으로 사고하며 사회적 미션과 가치를 재확인하고 각 정책과제를 융합해 시민사회의 새로운 실천 전략과 사회적 대안을 제시해 폭넓은 시민의 지지를 얻는 자율적인 민간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의 감각으로 좀 적나라하게 보자면 실제는 그의 선의와 다르게 보이기 쉬웠다. 행정시스템이라는 공권력의 엔진을 달고 운전을 한다는 것은 아이언맨 슈트를 착용하는 것이고 육해공으로 전천후 무기를 장착한 항공모함을 가지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한 해 20조가 넘는 예산을 집행하는 행정 수장의 조력자 또는 협치의 파트너가 된다는 것이고 보궐로 당선된 2년 짜리 시장이 재선에 성공해야 하는 절대적 이유가 되었다. 정치적 장이 열리며 제도와 사회시스템을 구성해가는 연대책임의 그룹이자 민주주의의 주체 중 하나인 시민사회운동 진영 내부도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어떤 단체는 사정거리 밖에서 시정의 견제자로써의 역할을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고 또 어떤 단체는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정의 중요한 파트너로 발돋움 하려고 애를 썼다. 시장 Y가 당선 전 설립한 혹은 설립에 참여했거나 또는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미쳐왔던 단체들은 조용히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다들 이리저리 생각이 많아지고 있을 때 승곤은 시민사회운동진영의 중지를 모아 시장 Y와 새로운 시정의 힘있고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보자고 총대를 매고 나선 사람이었다. 누구도 매라고 한 적 없는 총대였지만 승곤의 호출에 어떤 사람은 내심 기다렸다는 듯 기대를 품고 또 누구는 선거철 있는 푸닥거리처럼 피로한 얼굴로 모여들었고 이 모임은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음에도 열세차례나 진행되었다. 그건 두 번이나 비례대표 후보로 국회의원의 목전까지 갔다온 승곤이라는 구심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동시에 그가 강력한 구심이 되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처음 승곤은 배의 항로를 잡는 것처럼 정부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민사회의 필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행정조직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후배들을 발굴하는 행정의 협치 파트너로써 시민사회연합조직을 구상했었다. 모인 사람들은 이 하얗게 멀건 국 같은 승곤의 제안에 별다른 평을 붙이지 않았다. 승곤은 지방행정의 파트너가 될만한 크고 작은 단체들을 모아 연합조직을 만들어볼 생각이었지만 그 일은 그의 머리속 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두번째도 세번째 모임에서도 승곤은 같은 내용을 반복해 말했다. 세번째만의 승곤의 정치적 후배이자 어느 단체의 사무국장이라 소개한 사람이 그냥 좀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느냐고 타박했지만 승곤은 그 다음 모임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선거철만 되면 양당제 개혁, 지역갈등 타파, 범진보개혁세력의 정권 창출 또는 재창출 등의 명분으로 새로운 정치운동조직이 생겼다 없어지기가 숱했고 대체로 그 경험은 표면적 또는 내용적 실패로 끝나기 일쑤였으며 실패가 거듭되는 동안 급격한 노화를 촉진하는 스트레스처럼 시민사회운동진영 내부도 곪아갔고 어디가 고장이라도 난듯 삐그덕거렸다. 일부 선배들의 욕망 때문에 반목이 교차하는 낡고 후진 생태계가 되었다고 타박하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건 좀 나은 경우인 것처럼 이곳을 영영 떠나간 후배도 많았다. 광우병 등과 같은 사회이슈 중심으로 연대체를 구성하는 것과 달리 또다시 생태계의 노화만 촉진하게 될 것이 뻔히 보이는 이 연합조직에 함께 하겠다는 시민사회단체는 그래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 특정후보의 지지선언 같은 걸 도모하자는 말을 승곤은 기어코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라는 후배의 타박에도 끝내.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3부(three)에 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