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좋은 일인가 이 일은.

소설 <PART-마지막> #증후⑧

by 수빈조

나인에게 처음 하달된 일은 테니스장 철거 작업이었다. 예술가 M은 한동안 창의테크밸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기획한 작품들이 놓일 장소를 살펴보고 다녔다. 반대로 장소를 돌아보며 작품들을 상상해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예술가 M은 어느 날 쓸모를 잃은 테니스장을 철거하고 커뮤니티 모임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대형 가설건축물을 설치하겠노라고 밝혔다. 자문단의 최식 교수가 시간이 없으니 이대로 가자고 문짱을 설득해 계획이 최종 승인되고 난 후 꺼꾸로 센터 임시 조직인 된 프로젝트 TF 명의의 계획안이 시로 제출돼 행정적 승인 절차를 밟기까지 채 열흘이 걸리지 않았다. 어떤 의견도 달지 않은 속전속결의 일처리. 문짱과 최식 교수는 일의 처리에 있어서만은 퍽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나인은 문짱이 그를 기용한 이유를 그때 분명히 이해했다. 나인은 그가 독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일이 왜 이렇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도 특별히 의견을 달지 않았다. 자신의 권한 밖에 일이었고 그저 뇌 없는 일개 직원이라고 생각하라는 랄라의 지령도 잊지 않고 있었다. 나인은 엄밀히는 예산사용계획에 따라 진행한 공개 공모 절차의 최종낙찰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최종낙찰자가 받게 될 용역비로 처리해야할 테니스장 철거 작업을 열심히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 이것은 랄라가 말한 ‘뇌가 없이’ 할 수 있는 일인지, 별소득도 없는 생각으로 뇌에 변죽이나 치고 있다.


나인은 테니스장 이용객들에게 연락해 사용중지를 알리는 것을 1순위로 업무로 생각했다. 다행히 가장 최근의 이용기록은 작년 4월로, 1년반이 넘도록 이 테니스장은 미사용상태였다. 철거 비용은 컨소시엄의 용역비에서 처리되도록 최식 교수가 김철진에게 요청해두었다고 알고 있었다. 랄라의 지령대로 이상하리만치 문제의식은 거세된 채였다. 나인은 테니스장 철망에 붙어있는 이용안내문을 다시 한번 쳐다보고 의식을 치르듯 테니스장 내부를 두리번대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테니스장은 학교 사물함이나 채울법한 자물쇠 하나로 허술하게 바깥으로 잠궈져있다. 영원한 소멸을 앞두고 있는 장소 앞에 서서 나인은 그 마지막 숨을 끊으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 감각을 잊기 위하여 핸드폰 카메라를 들어 장소 곳곳을 기록해 둘까 고민하다가 나인은 곧바로 생각을 접었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니 왜인지 그 기록 자체가 퍽 쓸모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핸드폰 저장공간만 죽이는 것이었다. 대신 나인은 테니스장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볼 생각으로 철망 담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황토로 된 클레이코트 한 면과 콘테이너 2개동으로 구성된 이곳을 사람들은 테니스장이라고 통칭해불렀다.


1년이 넘도록 이곳은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신기할 정도로 꽤 그럴듯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인이 단지에 드나들기 시작한 후 이곳에서 테니스를 치는 사람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용안내문에 적힌 연락처는 별도 요청이 있을시 개인레슨을 해주는 인근 테니스장 코치의 것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작년까지 두 커플이 가끔 출근길에 사용을 하였으며, 정확한 출입기록과 이용자 연락처를 경비실에 남기도록 되어 있으니 그곳으로 알아보라고 말했다. 나인은 출입기록과 함께 경비실로부터 코트 중앙 양사이드에 설치된 조명탑 2개는 애저녁에 전기를 끊어두어 그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을 전해들었다. 나인은 그동안 자신이 알아본 것들을 차근히 되뇌이며 콘테이너 모서리를 돌았다. 바람이 찼다. 유리창 너머 보이는 컨테이너 내부를 애써 곁눈질로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정리 안된 짐들로 가득했다. 포대자루 더미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다 멈춘 모양으로 그대로 무너지듯 쌓여있고 한쪽에는 테니스 라켓과 플라스틱 원통형 케이스 안에 다섯개 들이로 묶인 테니스공들이 박스 안에 뒤죽박죽 쌓여있었다. 이곳에서 가끔 레슨을 했다던 인근 테니스장 코치가 쓸만한 것들을 찾아서 하루이틀 상간에 정리해가겠다고 말했던 것들이었다. 그 외 나머지 물건들은 전부 폐기될 운명이었다. 두번째 컨테이너 내부는 앞서 보았던 컨테이너동보다 딱 두 배 큰 사이즈였고 사무실로 쓰였는지 창고로 쓰이는 옆 칸 보다 훨씬 정돈된 모양이다. 철제수납장과 2인용 가죽소파 2개가 반듯이 놓여있다. 나인은 멈춰서 안쪽을 바라보면서는 이곳이 가장 붐볐을 시절을 상상했다. 이 사무공간은 막간의 휴식을 취하고 코치와 면담을 나누던 장소로 쓰였을 것이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컨테이너의 코너를 돌 때 20년일까 아니면 10년? 하며 나인은 가로 50미터 세로 15미터의 이 장소의 흥망성쇠까지의 시간이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지를 가늠해보았다. 그렇게 작은 공간 안 가득 반듯하게 놓인 가구들로부터 돌아나오다 나인은 예상치 못한 장면에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그건 과거 어떤 장면이었다. 돌아보면 그건 하나의 장면이었다기 보다 조롱, 조롱을 받았던 꽤 강렬한 감정으로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쥐구멍이 있다면 숨어버리고 싶은 감정이란 걸 난생 처음 느껴본 것이었다. 그건 시장 Y의 재선 직후 오래된 고가도로를 공공건축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일이었다.


당시 ‘씽’은 타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고가도로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중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나인은 이 프로젝트를 달가워하지 않는 지역의 이해관계그룹을 만나 관심주제를 뽑고 이들이 참여하는 갈등 해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담당자였다. 나인는 민원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관심사를 키워드 중심으로 뽑아내는 일을 주로 했다. 이 프로젝트의 최상위 의뢰자는 시 도시기반국 도시재생사업팀이었다. 담당주무관은 나인이 만나야할 인터뷰이의 목록을 착실히 작성해주었는데 대게는 지역상인회와 상가건물주 또는 그들의 대리인들, 그 외 몇 명의 지역유지들이었다. 나인은 자신이 만나야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미리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부동산 가치가 오르거나 매출의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지극히도 관념화된 덩어리로 이미지화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더 정확히는 나인은 그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도소매상이 모인 N시장의 상인들은 이 고가도로를 물류통로로 이용중이었다.


그러나 이 고가도로의 주이용객인 시장상인들과의 사전교감도 없이 정책을 내놓았다가 S시는 꼭 예상 밖의 일인 것처럼 시장상인들로부터 강력한 저항성 민원을 받고 있었고, 나인은 그 사실을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인은 기사로 알려진 것 외에 실상과 내막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나인이 어림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빅딜의 상대인 행정이 긁어부스럼을 만들듯 자신들의 밥벌이 영역 안으로 일을 만들고 나서 요청하지도 않은 협상테이블에 스스로 앉았으니 그들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도 없었고 그들의 상대는 시끄러워지는 걸 극도로 꺼리는 집단이고 반면 이쪽은 협상테이블에서 우위를 선점하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윗선에서 선이 굵은 거래가 진행되는 사이, 나인은 해외의 혁신사례에서 봄직한, 공공의 가치를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한 발씩 양보해 뜻을 모아가는 과정인 것처럼 용의 눈동자를 그려넣어 경제적 가치마저 드높은 이 명작을 드디어 완성시키는 일에 복무하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막상 나인이 본격 일을 시작 하려 하자 내내 심드렁하던 담당주무관이 걱정이 되었는지 처음 한두번의 인터뷰 자리에는 자신이 함께 가주겠다고 나섰다. 나인도 그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어떤 불길한 예감으로까지 뻗어가지는 못했다. 여타의 다른 협상테이블이 돌아가지 않는 상태에서 가장 말단의 자신이 그들을 처음 접촉하는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두번째 인터뷰이를 만나러 나인은 주무관을 쫓아 명동 먹자골목 벽과 벽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상가건물의 어느 사무실로 찾아갔다. 낯익은 풍경들이 나인의 시야로 쭉 이어졌다. 나인은 들뜬 영혼들이 흘러다니기 바쁜 이 세계의 비밀공간에 초대받은 사람인 것마냥 군중들 속에 섞여 주무관 뒤를 따라 명동거리 걸었다. 나인이 명동의 이면도로 두팔을 벌리면 끝과 끝이 닿을만큼 좁은 상가건물 앞 입구에 섰을 때까지는 꼭 리얼월드의 진짜 주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 되었다. 몸만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고 가파른 계단을 뺑뺑 돌아 올라간 사무실은 주무관이 전해준 명단에 간략하게 적혀 있던대로 부동산 관리 업무를 보는 곳이라고 짐작할 뿐 정확히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곳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 공간의 주인은 사무용테이블 앞에 서서 돋보기를 내려쓰고 책상 위에 깔린 신문을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선 채였다. 그는 이 공간을 꼭 지배하고 있는 사람같았다. 그의 뒤로 시트지를 붙인 유리창이 굳게 닫혀있었지만 공간 내부는 현광등을 켜지 않아도 제법 밝았고 누렇게 바랜 시트지 색깔처럼 공간은 온화하게 은은한 누런 빛을 띄었다. 그의 필요와 동선에 맞게 가구와 물건들이 적재적소에 공간 가득 빼곡하게 차있는 곳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질서정연했다. 대여섯평의 좁은 공간에 딱 맞춘 듯이 사무용테이블과 책장, 수납장, 진한 군청색 벨벳 소파와 탁자, 초록색 부직포가 깔린 회의용 둥근 탁자와 의자가 꽉 들어차있었다. 오랜 시간 한사람의 손길만 탄 공간같았고 그 때문에 나인은 그곳이 그의 개인 업무를 보는 곳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인은 꽉 짜여진 그의 개인공간 안에 들어와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고 있는데 그에 반해 그의 손짓에 따라 안내된 군청색 벨벳 소파에 따라 앉은 동행자가 평소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밀하고 어수룩하게 말을 주고 받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자신에게는 귀찮은 일 투성이라는 듯 매사 게을리하던 주무관이 꼭 나사를 바짝 조인 사람처럼 쉴새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 얼마간 대화가 이어진 후 주무관이 손을 돌려 나인을 가리키며 자세한 내용은 이쪽에서 설명할 것이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신호를 받았지만 나인은 한 치의 주저함이 없이 약속된 장소로 와 기약된 사람과 마주하고서 이상하게 길을 잃은 것 같이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할지 말문이 꽉 막혀버린 것 같았다. 상대가 바위같은 얼굴을 하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껏 나인에게 어떤 인사치레도 하지 않았고 명함도 따로 건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개인공간을 활짝 열어 이 낯선 손님들을 맞았지만 그것이 그대로 환영의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나인은 상대는 관심에도 없는 자기소개로 무의미하게 말문을 트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저는 일종의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 이구요”


그것이 무엇이든 상대가 자신이 찾아온 연유를 체득된 감각으로 즉각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각자의 세계는 끊임없이 충돌중이었다. 둘은 영영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 나인은 자신도 모르게 시민사회단체 라고 퉁치면서 그 앞에 “일종의”라는 모호한 표현까지 덧붙여썼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도 대세에 큰 지장이 없다거나 괜찮다는 의미였지만.


“아이고 좋은 일 하시네”

라는 반응에 나인은 상대가 무례와 적의를 표출하고 있다고 알아채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계시는 고가도로 재생프로젝트에서 갈등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갈등? 나는 갈등 같은 거 없는데. 갈등이랄 게 뭐 있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 네 그냥 저희끼리 하는 말 입니다”


그는 나인의 말 끝마다 추임새를 꼬박꼬박 넣었다. 말을 끊으려는 의도인 것인지 말장난으로 쓸데없이 시간을 죽이기 위한 것인지 당췌 알 수가 없었지만 끝끝내 적의를 접지 않는 것이 별소득 없이 허비되는 시간에 대한 보상차원이라고 생각하니 나인은 협상테이블 위 당사자도 조정자도 아닌 단순 인터뷰어로만 존재할 뿐인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워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무런 권한도 자격도 없이 마주한 사람, 단지 마음이라도 상하게 할 요량으로 그는 앉아있었고 그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나인은 그의 무례함에 흐트러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인터뷰어로써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분투가 필요했다. 무의미한 말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부단히 애쓰는 것과 같이, 그가 자신을 장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같은 그런 단어 조무래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들”, 장사하는 사람들을 대표로 앉아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행정은 여론을 파편화된 개인으로 쪼개려 애를 쓰고 어쩌다보니 자신은 그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었다. 보통은 반대편이었는데 자리가 뒤바뀐 것이 실감되었고 언제든 또 자리는 뒤바뀔 거였다.


“아시다시피 고가도로 프로젝트는 철도로 막혀 끊긴 양 지역을 연결하는 도보다리가 될 예정입니다. 도로 주변의 건물주분들이 협조해주고 계셔서.. 빌딩숲의 중간레벨로 보행길이 생기면 이 지역은 S시에 또다른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어요… 인근 상권에도 꽤 파급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래서 저희는 도보다리 인근 거주민들과 상인, 건물주분들을 만나서 프로젝트에 관련한 의견도 듣고… 요구사항이나 향후 이 프로젝트와 지역발전을 위해 해주실 수 있는 역할…. 같은 것들을 청취하고 있는데요…”


그가 어쩐 일인지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니 가만히라고 하기에는 소파에 여유롭게 등을 대고 바른 자세로 앉아 내내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였다. 나인은 그가 끼어들 틈을 만드느라 말을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했다. 또는 조급한 마음에 말이 꼬일까 호흡을 멈추는 것일수도 있었다.


“제가 최근에 만나 인터뷰한 J동 입주자협의회 대표님께서는 도보다리 위 설치된 나무들을 가꾸고 관리하는 일의 자원활동을 하고 싶다 하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그런 이야기 부터..”

“아 뭐 대충 좋은 일이라는 건 알겠고.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그런 거 됐고. 본론, 본론부터”


나인이 인터뷰를 하겠다고 본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와중에 인터뷰이가 자기 나와바리에 와있는 이 낯선 손님들을 향해 한 손을 척 하고 앞으로 내밀더니 드디어 말을 끊으며 말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주무관이 이럴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말이 없어진 나인을 뒤로 하고 몸을 상대에게 내밀고 앉아 그에게 뭐라 뭐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인은 주무관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애써 듣지 않았다. 어차피 인터뷰가 가당해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각 나인은 상대의 말 “본론”과 “좋은 일”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 본론. 끝내 그와 본론이 달랐음을 깨달았고 그가 좋은 일이라고 치부해버린 일은 관심 밖으로 제일 먼저 내동댕이 쳐졌다. 나인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좋은 일’이라는 말을 주워담을 생각없이 그저 멍해졌다. 좋은 일. ‘좋은 일’이란 두 단어의 조합이 한번도 이어붙여본 적 없던 것처럼 낯설고 생경했다. 결과적으로 가치로웠는지는 언제나 의문이었지만 세상물정에서 멀리 가있지 않게 긴장하면서 희미해져가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 나인은 이를 일을 대하는 태도로 혹은 나름의 직업의식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해가 사방으로 충돌하고 있는 싸움판 한가운데서는 이것이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 것인지를 나인은 새삼 깨닫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이기고 지기만 하는 싸움판이 아님에도 기어코 게임을 하겠다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판은 엎지도 못하면서 도덕경이나 읊고 있는 사람처럼, 때와 장소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처럼 나인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더더군다나 나인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음을 깨닫고 더더욱 창피해지는 중이다. 세상 끝에 살며 한번도 마주한 적 없다가 우연한 기회로 마주한 두 사람 중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왜 상대가 아니고 나 자신인가에 대하여. 꼭 진 기분이 되었다. 좋은, 일 이라는 이 일차원적인 단어의 조합 앞에 얄팍한 직업의식과 삶의 태도가 깡그리 부정당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무릎 내측에 신경다발에서 전기가 오르는 것처럼 바깥쪽으로 무릎이 튀어나오며 꺾였다. 마지막 컨테이너의 코너를 돌며 나인은 외투를 여미고 있던 손을 컨테이너 벽면을 짚고 섰다. 테니스장을 등지고 선 나인은 선후와 좌우가 잘려 나간 프로젝트의 그 첫 시작을 알리는 거사를 앞두고 “좋은 일” 이라는 말을 드디어 중얼거렸다. 그 때 그 곳 다초점 안경을 코 끝으로 내려쓰고 테이블 탁자에 놓인 신문을 내까려보던 그 노쇠한 남자에게 찾아가 이것은 그런 일인지 묻고 싶었다.


“좋은 일, 좋은 일, 좋은 일” 과연 좋은 일인가 이 일은.


커버사진: UnsplashTiago Aleixo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3부(three)에 속하는 것입니다.

☞ 소설 <PART - one> 읽어보기

☞ 소설 <PART - two>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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