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니루하우스

소설 <PART-마지막> #증후 ⑨

by 수빈조

그 해 2월엔 비가 오는 날이 많았다. 비가 꾸물꾸물오다가 2월 중순 어느 날에는 눈이 보슬보슬 내렸다. 시 최북단에 위치한 이곳의 겨울은 다른 곳보다 빨리 찾아왔다가 더디 갔다. 검게 언 땅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화석처럼 굳었다. 겨우내 이곳의 사람들은 시원찮은 난방시스템으로 아우성이었다. 평년과 비슷한 온도를 보였다던 이번 겨울은 이곳 사람들에게 왜인지 더 춥게 느껴졌다. 그 해 겨울 한 철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는 입춘을 넘겨 끝이 났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상징적인 시설물은 테니스장 위에 세워진 비계구조의 가설건축물이었다. 테니스장은 운이 좋게도 별도의 기초공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는 추가로 비용이 발생하지 않게 된 것에 크게 안도했다. 테니스코드 좌우의 조명탑을 그대로 두고 정중앙에 놓인 이 가설건축물은 비계와 비계사이 생긴 1.5평 남짓의 셀과 셀이 연결되어 하나의 넓은 공간을 만들어내는 복층 다락 구조로 되어있었다. 이 시설물 1층에는 넓은 홀이 2층에는 사면으로 1평의 셀들이 이어진 긴 통로들로 구성되어 꽤 다양한 공간의 변주를 이루고 있다. 임시적이고 부차적인 건축 재료인 비계와 PVC 비닐이 만들어 내는 연면적 약 100평의 이 다목적 공간은 이용자들간의 관계가 임의적으로 만들어지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공간의 내부면으로 식물화분이 놓여 외부에서 이곳을 바라보았을 때 투명한 비닐막을 통해 사시사철 자라나는 식물이 보이도록 한 것 역시 예술가 M의 의도였다. 예술가 M은 이 화분들을 통해 실험의 결과물이 자라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형상화 하려고 하였으나 씨앗만 심어진 설치 초기 육안으로 이 형상이 도드라지게 드러나지 않았던 탓에 의도한 시각적인 효과는 미미했다. 그렇지 않아도 썰렁한 이곳 겨울 풍경이 차가운 PVC 비닐 재질의 이 구조물 덕에 더욱 황량해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과 함께 공간도 변화되길 기대했던 예술가 M의 의도를 읽을 줄 아는 사람만 볼 수 있는 꽤 난해한 작품, 비계구조에 정사각 비닐이 겹쳐진 이 구조물을 사람들은 비니루하우스라고 비꼬아 불렀고 공식명칭은 ‘언플러그드라운지’였다.


단지 정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공원의 경계부에는 ‘움직이는컨테이너’가 놓여졌다. 이것은 이름 그대로 3×9m의 컨테이너 5개동과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사이 성냥갑처럼 움직이는 이동형 공간으로 이뤄진 가설건축물이다. 사용한 흔적이 묻어나는 폐 컨테이너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활용한 이 시설물은 ‘언플러그드라운지’ 보다 약1.5배 넓은 연면적 137평의 다목적 시설물이다. 이 컨테이너 구조체는 컨테이너 3개동이 나란히 같은 넓이로 떨어져 세워져있고 그 중 1개의 컨테이너 구조체가 3개의 컨테이너 방향과 수직으로 올려진 형태였다. 나머지 컨테이너 1개동은 다른 것들과 완전히 이질적인 형태로 서있는 것인데 그것은 직사각형의 가장 작은 면을 바닥면으로 하여 길게 수직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1평의 바닥면으로 길게 세워진 이 불안정한 구조체는 그러므로 어떤 활동도 수월치 않았고 다만 2층으로 올라가는 외부계단을 지탱하는 구조물 이라는 것외에 별다른 효용이 없었다. 비계 재료로 세워진 외부계단을 이용해 이 구조물의 2층에 올라서면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북한산을 거칠 것 없이 조망할 수 있었는데, 이건 단지 내 야외공원 어디서든 손쉽게 볼 수 있었던 북한산 조망권을 반납하고 얻은 것이었다. 오랜 시간 뿌리 내려 자연스럽게 가꿔진 작은 숲은 이 나열된 컨테이너 구조물의 어두운 색감과 육중한 질감에 압도되어 푸른 빛을 잃는 것처럼 보였다.


5명의 건축가들이 만든 5평 남짓의 가설건축물들은 앞에는 모두 ‘모바일’이라는 단어가 달렸다. 이 모바일하우스들은 1~2인 규모로 사용가능하게 설계되었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사용이 용이해보이지 않았다. 다만, 건축박람회장에 온 듯 사진 찍기에 좋았다. ‘모바일키친’은 하얀 폴리카보네이트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놓여진 북파공작전우회 건물인 T동의 누런 뒷벽면 색과 대비되어 보였다. 엄밀히 말하면 조리가 불가능한 다이닝 공간인 이 모바일하우스의 내부는 나무로 만든 접의식 테이블과 의자를 가벽처럼 둘러두었다가 필요시 펼쳐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실제 이를 사용해보는 사람이 내내 없었는데 이 시설물이 만들어지고 1년이 지나고 비전력카페가 들어와 다행히 사용되었다. ‘언플러그드라운지’ 부근 빈 땅에 놓여진 ‘모바일워킹스페이스’의 외부 마감은 고무 같은 재질의 스타코플렉스로 되어있으며 외부 마감의 느낌과 다르게 내부는 목재로 만들어진 수납형 가구와 철재가벽으로 구성되어있다. 양쪽으로 밀고 열면 안에는 빔프로젝터와 스피커와 같은 전자기기들이 설치되어 회의도 하고 업무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전기수급의 어려움으로 활용에 제약이 많았다. A동 뒷 마당 콘크리트 바닥에 놓여진 ‘모바일작업실’은 철재로 마감되었으며 2평 남짓한 유닛 3개로 쪼개진 이동가능한 가설건축물이다. 유닛마다 간단한 공구가 구비되어 있으며 각 유닛에는 바퀴가 달려서 원하는 규모와 방식으로 공간을 만들 수 있게 움직이도록 되어있었지만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바닥면 때문에 실제 움직여보는 사람도 잘 없었다. 외관에 분홍색 플라스틱 화분용기를 다닥다닥 붙여 마감한 ‘모바일도시농장’에는 다양한 식물 씨앗을 뽑을 수 있는 씨앗 디스펜서와 도시농업 관련 서적들이 비치되어 있다. 다음해 어린이날 행사 때 어린이들이 게임공간으로 활용되었을 뿐 그 외 이용객은 없었다. 5미터 높이의 원통의 형태로 시선 높이 위로 천창이 나있는 ‘모바일음악감상실’은 내외장재 모두 원목으로 만들어져 제법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다. 후문 중고장난감가게 옆 잔디가 무성하게 자란 관리 안된 공터에 자리 잡은 이 날렵한 구조체 역시 실제 이용하는 사람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재활용장난감으로 만든 예술작품들과 나란히 서서 꽤 이질적인 인상을 주었는데 의무 존치기간이 당도하기도 전에 없어진 다른 것들에 비하여 비교적 오래 남겨진 시설물이었다.


예술가 M이 디자인해 설계자들의 스케치업 도면에 따라 재현된 정글짐과 시소는 각각 소라와 잠자리 모양의 연두색 철재로 만들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구했다는 바다모래 봉분에 이것들은 삐딱하게 올려져 균형을 잡고 서있지 않으면 잠깐이라도 밟고 올라서기 힘든 까닭에 7세 미만 아이들에게는 금지된 놀이기구 였다. 예쁘지도 않은 쓰레기를 잔뜩 만들어놓았다는 입주그룹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의무존치기간이 다 차기도 전에 시 허가도 없이 센터 시설관리 직원이 무단으로 폐기해 관계 직원이 징계를 받는 해프닝이 있었다. 징계를 받아도 괜찮을만큼 철물점에 비싼 가격에 철재 재료를 팔아넘겼다는 소문도 함께 였다.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예술가 M은 시설관리 직원이 보잘 것 없이 방치된 100% 철로 된 이 값비싼 예술작품을 알아본 것에 대하여 감탄인지 탄식인지를 했다.


3~5평 규모의 숙박시설 2개와 노래방, 트레일러, 포장마차 등의 가설구조물들은 예술가 M이 섭외해온 조형작가 5인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각각 40일 동안 손수 지어진 이 시설물들 중 숙박시설로 만들어진 ‘에너지자립생존키트’는 약 3평의 한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으로 나무를 태워 바닥과 공기를 데워주는 구들난방시스템이 설치된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종종 쪽잠을 자는 장소로 활용되곤 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허가받지 않은 숙박시설이 창의테크밸리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주민 민원이 시로 접수되자 센터에서 업무시간 외 사용을 불허했다. 트레일러는 짧은 시간에 작가 1인이 손수 만들었다고 하기에 제법 견고하고 완성도 있게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법적으로 차량등록이 필수였던 트레일러는 제작자에게서 센터로 소유권을 이동하는 과정에는 센터 직원과 제작자 사이의 소동이 있었으나 결국 의무존치기간이 다 되도록 소유권 문제는 정리되지 않고 최종 철거되었다. 김철진의 주도로 기획된 창의테크밸리 홍보관은 그 다음해 봄 국가기록원 건립공사에 따라 설치된 가설울타리가 진입로를 막는 바람에 기록원 공사 완료시까지 그러니까 3년 뒤 10월까지 일반시민들이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야외마당 곳곳으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탄생한 야외시설물들이 설치된 그 해, 혁신가의 놀이터 프로젝트를 물 밑에서 이끌어왔던 자문단의 최식 교수도 센터로 출근을 시작했다. 틈틈이 시에, 정확하게는 문짱에게 혁신 정책의 확장과 성공의 기반을 만드는 시 산하의 연구기관 설립을 제안해왔던 그에게 맡겨진 자리는 센터장 K의 뒤를 잇는 것이었다.


커버사진: UnsplashAnnie Spratt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3부(three)에 속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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