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마지막> #증후 ⑪
랄라는 아직 노조 가입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사무실 입구 서랍장 위 A4용지박스를 활용에 비치해둔 노조가입신청서를 랄라는 손수 챙겼다. 이름, 주소, 생년월일, 나이, 근무처, 직책, 경력사항, 월조합비 항목까지 적어두고 기타의견사항의 칸을 텅 비워둔 신청서를 클리어파일에 넣어 책상 책꽂이에 꽂아두고 마감일이 다 되도록 제출을 미뤄두고 있었다. 랄라는 제출마감일 하루를 남겨두고 이 날 저녁 지역노동조합 연구자인 김지양 선배를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자신의 첫 조합 활동을 앞두고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를 넘어 사회변화를 촉진하는 일상활동으로써의 조합 운동에 대하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라고 랄라는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랄라는 그녀와 약속을 잡으며 설명하기로는 센터 내 제2노조 설립으로 노노간 갈등이 촉발되고 급기야 폭력사건까지 있었는데 자신이 보기에 새 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세력이 패권적인 계파싸움에 익숙한 인물들인지라 갈등이 더욱 번지고 있는 것 같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랄라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구름이 거쳐 해가 드러나는 것 같이 무력감이 저만치 물러서는 기분에 깜빡 속고 있었다.
김지양은 G역 근처 몸살림센터에서 운동이 끝나는 시간에 보자고 답을 했고 조금이라도 일찍 보려면 자신이 운동하는 센터 근처에서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랄라는 저녁 8시 10분까지 G역 2번출구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겠노라고 답했다. 지하철 두어 정거장쯤 걸을 요량으로 7시를 조금 넘겨 사무실을 나온 랄라는 그녀가 최근에 출간한 책 <저는 지역돌봄노동조합 조합원입니다>를 읽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늦가을 저녁 바람이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다. 랄라는 A동 현관 앞에 서서 지도앱을 켜기 전 인터넷서점에서 김지양의 책을 골라 주문했다. 그리고 지도앱으로 현위치에서부터 G역까지 도보로 걸리는 시간을 체크했다. 이 앱은 최단거리로 도보 총 31분이 걸린다고 알려줬다. 랄라는 앱에서 최단코스로 알려주는 길이 아닌 단지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B역에서 Y역을 거쳐 G역으로 가는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고도 거뜬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총 네 가지 코스로 길을 안내한 지도앱으로 보자면,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과 같은 구불한 니은자 길 대신 대로변 따라 걷는 길게 늘어진 기억자 길로 걷는 코스였다. 조용한 주거지역 대신 상가가 밀집한 복잡한 거리를 걷는 코스인데 대신 E시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D시장을 지나쳐 가는데다가 큰 대로변을 따라가는 길이라 중간중간 지도앱을 켜서 위치와 방향을 재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었다. 랄라는 겨울등산점퍼를 걸쳐입은 마네킹들이 서있는 스포츠용품매장들을 스쳐 지나 발광하는 햐얀 조명 아래 동일한 영상이 수없이 돌아가는 영상송출기계들이 진열된 가전제품매장 앞 횡단보도를 건너, 배를 갈라 넓게 튀긴 닭들이 차곡차곡 겹쳐 놓여진 옛날통닭집과 길고 동그랗고 벌겋고 하얀 만두 수십개가 매대 위 동그란 채반에 놓인 만두집, 온갖 봉투에 다양한 크기로 담긴 갖가지 상품들이 바닥에서부터 쌓여 놓여진 도소매점에, 가격표를 배에 붙이고 얼음 박스 위에 길게 놓인 생선가게들이 있는 D전통시장을 지났다. 온통 주위에 시선을 빼앗겨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시장을 빠져나왔을 때야 어둠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와있음을 깨달았다. 랄라가 G역에 당도했을 때엔 남청색으로 차갑게 주변을 맴돌던 공기가 짙은 남색으로 바닥 끝까지 내려와있었다. 운동이 된 모양인지 모직자켓 안이 후끈했다. G역 2번출구 앞에 당도해 주위를 둘러보는데 김지양이 건물 옆 주차된 차 옆에 구부정하게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몸살림센터에서 실컷 몸을 풀고 나와 구부정한 자세로 담배나 태우고 있는 꼴이라니 랄라는 웃음이 피식하고 나왔다.
“밥은?”
우뚝 서있는 랄라를 발견한 김지양이 서둘러 담배를 바닥에 눌러 끄고 담배갑 안으로 꽁초를 대충 구겨넣더니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밥은 먹었느냐고 물어왔다.
“대충? 이제껏 안 먹은거야?”
“나도 대충. 그럼 간단하게 어디 가서 사케나 한잔할까? 날도 추분대~ 여기 내가 자주 가는 사케집 있어. 아! 좀 많이 걷는구나. 괜찮아?”
“괜찮지”
김지양은 군더더기가 없고 빈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생각하면 이상한 인연이었다. 랄라가 김지양을 처음 마주친 곳은 지역돌봄과 돌봄노동 제도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어느 토론회장에서였다. 그녀는 단상 위 네 명 중 한 명의 패널로 앉아 있었고 랄라는 이삼십명쯤이 모인 청중들 사이에 끼어 있는 한 사람이었다. 김지양은 이 자리에서 독립주거공간과 돌봄을 위한 물리적 공간 확충을 최우선적 과제로 자원이 쏠리는 지금의 지역 커뮤니티케어 정책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처럼 빈약한 토대 위에 세워지는 것과 같다고 우려하며 치료 및 진료, 방문간호, 주거환경개선 등의 분야별로 돌봄통합네트워크를 단단하게 구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가 끝나고 따라간 선배에게 소개 받아 그녀와 인사를 나눴는데 단상 위에서 말을 할 때와 사뭇 다르게 그녀는 주의력이 산만한 사람으로 느껴졌고 아니나 다를까 그 뒤 어느 모임에서 재회했을 때 김지양은 랄라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대신 자신이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김지양에게 랄라는 그날 정신이 많이 없어보이셨다고 되받았는데 김지양은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고 며칠 있다 김지양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고, 그녀는 어느 지역 돌봄센터의 후원의밤에 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랄라는 이 낯선 통화에서 무엇보다 낯설었던 것은 함께 가보자는 것도 아니고 와보라고 초대하는 것도 아닌, ‘와보지 않을래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독특한 화법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랄라는 그녀가 호스트로써 자신을 초대하는 것인지 그저 함께 가보자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난감했고, 몇 번 되지 않는 그녀에 대한 단상을 떠올리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일정을 살펴보겠다 하고 끊고는 결국 그녀의 초대에 응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 자신의 행사의 패널로 그녀를 부르고 그 다음에는 김지양이 자신의 연구발표회에 랄라를 초대하면서 빚을 지고 갚는 모양으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김지양이 데려간 사케집은 테이블 없이 바에 앉도록만 되어 있는 시 외곽 가난한 동네의 작은 이자카야 같은 모습이었다. 먼지가 꾸덕하게 낀 고양이 마네키네코 인형이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드는 그렇고 그런 동네의 일본식주점이었다. 김지양과 나란히 앉은 바테이블 위로 주인장이 간장에 조린 파를 올려먹는 튀김요리를 내주었다. 김지양이 자주 오는 식당인 듯 주인장 마음대로 음식과 술이 나왔고 무심한 듯 보이는 주인장과 김지양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어보였다. 랄라가 주인장을 한번 김지양을 한번씩 쳐다보자 김지양이 조용히 “아니야” 라고 말했다. 뭐가 아니라는 것인지 랄라는 피식 웃고는 주인장이 뜨끈하게 덮여 준 사케를 목을 추길 정도로만 살짝 흘려마셨다. 따뜻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랄라는 몸이 뎁혀지는 걸 느꼈다. 랄라는 김지양에게 신간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두었다고 말했고 김지양은 자신이 술과 음식값을 치르겠노라고 기분 좋게 말했다. 펜던트 조명이 테이블에 놓인 튀김요리를 은은하게 비추자 랄라는 홀린 것처럼 젓가락을 들어 튀김요리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래서 뭐라도 하게?”
“뭘 해 하긴. 그냥 그렇다는거지”
“그 조직을 애정해? 그 정도로 가치가 있어? 시장 바뀌면 없어지는 그런데 아니야 거기?”
“아무것도 안한다니까”
애정이라. 가끔 지독하게 애정하는 것 같다가도 내가 복무하고 있는 곳이 무엇을 위해 굴러가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그저 밥벌이라고 가치절하를 하다가도 건강한 공동체라는 바다에 물 한 컵 정도는 붓는 일이라는 작은 소명을 품어보기도 했다가, 그런 곳이었다. 나의 일이란 것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여기저기로 마음이 들락날락 하는 것을 보면 보통 애정이 아닌 것도 같은데 애정하냐는 직설적 물음에는 좀처럼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냥 노조 가입만 하던지. 뭐 바꾸려고 하지 말고. 너 에너지 좋잖아. 좋은데 써. 뭣하러 그런데다가 에너지를 빼. 니가 그런다고 걔네가 바뀌는 게 아니야”
“그럼 선배는 그 일 왜 해?”
“난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거고. 그러다보면 뭐 바뀌기도 하고”
“잘났다 씨”
애정하지 않았다. 이전투구의 현장, 자중지란의 형국, 관성적 충돌과 갈등, 노도와 같이 맞부닥치는 정치적 위기의 순간과 순간과 순간들, 봉착과 교착으로 매순간 빠지는 한계상황 속을 내내 걷는 것 같았다. 암담할 뿐인 이 절망의 커튼이 눈 앞에 내려와 모든 걸 뒤덮고 있어도 혼이 빠지고 심장이 뛰도록 내 모든 촉수를 지배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희망의 틈새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불굴의 시야가 자신에게는 없는 것 같았다. 눈 앞에 보이는 것들에 절망했고 그 때문에 한 발도 떼지 못했다. 어쩌면 김태진과 노규원에겐 있을지도 모를 그 것. 얻고 싶고 갖고 싶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쟁취하고 싶은 그 무엇이 자신에겐 애초에 없었을런지 몰랐다. 그러나 애정했다. 서있는 곳이 꽃밭이 아니어서 슬펐다. 꺽지 않고 밟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허용된 자유 중 일부를 세금 처럼 반납하며 이곳이 꽃밭이 되기를 수동적으로 소망했다. 애정하기 때문에, 애정하고 있어서.
김지양이 금방 해야할 일을 끝내고 자신의 신간에 대하여 떠들기 시작했다. 그 책을 쓰기 위해 8인의 인물을 만나고 13개의 현장을 쫒아 다녔다나 어쨌다나. 김지양이 침을 튀기며 떠드는 사이 둘 사이로 작은 화로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전골요리 하나가 들어왔다. 랄라는 뇌에 낀 서리가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 속이 깨끗하게 비어지는 기분을 김지양으로부터 얻어내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바람이 되지 못했다. 애정하느냐니. 그런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이나 받자고 김지양을 만난 것이 아니었다. 왜인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이거 다 선배가 사”
“어어. 내가 사. 근데 너 배 안 부르니?”
랄라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든 손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며 실소와 한숨을 섞여 흘려보냈다.
“근데 너 틈새분업이 뭔지 아니?”
상대에 대한 사전 수색을 마친 김지양이 어느덧 자신의 책 이야기로 관심을 돌릴 모양이었다. 성실하게 대화에 참여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어느새 화제를 돌려버린 그녀를 덮어두고 원망할 수 만도 없었지만 금방이고 타인에게서 자신의 관심사와 목소리에 빨려들어가듯 몰입해버리는 그녀의 이 이기가 오늘따라 랄라는 얄미웠다. 생각해보면 아빠도 그랬다. 처자식이 안중에 없는 사람처럼. 지금 랄라 앞의 김지양처럼. 한참 동네 학교 여기저기로 전교조 신문지를 돌리고 다니던 아빠가 랄라가 다니던 초등학교도 찾은 적이 있었다. 등교길 1층 좌측 현관문 앞에서 실내화로 갈아신고 있는데 딸의 뒷꼭지도 못 알아보고 신문지 뭉텅이를 옆구리에 끼고 스치며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가던 아빠와 지금의 김지양의 모습이 겹쳐졌다. 다만 달랐다면 자신은 그런 아빠를 얄미워할 수 없었다는 것. 어느 집회에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대규모의 인파 속에 끼어 아빠를 따라 행진을 하는데 앞만 보고 걸으며 한 팔로는 열심히 팔뚝질을 하던 아빠가 손을 놓아버릴 것 같아 꼭 쥐고 걷던 그때의 어린 ‘내’가 이제 상대와 눈을 맞출 만큼 성장해 김지양 앞에 앉아있었다.
“그게 말이다 요즘에는 앱으로 지역에 소소한 일거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잖아. 돌봄서비스도 마이크로 단위로 쪼개서 제공되는거야. 예를 들면 한 끼 설거지라던지, 약 대리수령과 같은 간단한 심부름까지 말이야. 문제는 이게 이렇게 쪼개지다보면 비용이 더 커진다는거고 한 사람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할 수 없다는건데. 그렇다고 나라에서 제공하는 돌봄서비스가 어디까지 촘촘해질 수 있느냐...거기서 말이야..“
귀담아듣고 있지 않은 상대의 상태에 아랑곳없이 말을 쏟아내는 김지양에게서 랄라는 다시금 시기와 질투를 느꼈다. 자신은 불혹의 나이가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타자에 의해 규정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며 사는데 그리고 이제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탈피하려고 이토록 애를 쓰는 것인지 알 수 없어진 채인데. 이제와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의 나는 누구인지 묻고 또 물어도 꼭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것 같이 나의 자아는 금방이고 바닥 아래로 쪼그라들 것만 같았는데. 그래서 괴롭게 묻는 것을 포기하고 반정립으로 정립된 자아 역시 나 라고 인정하기로 하였는데. 이토록 혼신의 힘을 다해 자기의 생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랄라는 그만 초라해지고 만다. 랄라는 그녀의 이야기에 호응하지 않고 손바닥 길이만큼 짧은 플라스틱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연달아 떠먹었다. 호로록 호로록 소리내 조심히 목구멍 안으로 흘려보냈다. 국물의 온도는 데일 정도로 뜨겁지 않았고 알맞게 따뜻했다.
위원장 선거는 위원장 김태진, 사무국장 노규원이 단독 후보 나서 가부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그들은 예상대로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창의테크밸리유니온의 초대집행부로 추대되었다. 기권표 몇 장을 제외하고 반대표는 딱 한 표였는데 공공연히 반대표를 던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들과 가깝게 지내오던 여진이었다. 랄라는 노동조합 가입신청서를 내지 않았고 2층 사무실에서 조합원이 아닌 사람은 랄라뿐이었다. 랄라가 제2노조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건 김지양을 만나러 가는 길 D시장, 가격표를 배에 붙이고 얼음바닥 위에 누워있는 생선들 앞을 지날 때였다. 아니 그보다 앞서 공동행동의 네 사람이 V동 1층 라운지에 앉아 격론을 벌이다가 흩어져 나인과 둘만 섰던 은행나무 밑에서부터 였는지도 몰랐다. 김지양을 만나고 난 후에도 랄라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을 뿐이었다.
커버사진: Unsplash의 Andrew Dunstan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3부(three)에 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