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마지막> #함정 ①
랄라는 커서를 옮길 때마다 따라 움직이는 광고배너에 결국 눈살을 찌뿌렸다. 기사제목 위로 갖가지 신발이 길게 늘어진 신발전문브랜드매장 광고와 화면하단 총천연색으로 어지럽게 돌아가는 폰케이스판매숍 광고는 어떻게 피했지만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광고배너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영어 문장 안에 적절한 전치사를 골라넣는 4지선다형 문제가 직사각형 배너 안에 알맞게 들어차 있었다. 랄라는 꼼꼼히 영어문장을 읽고 “on” 이라고 읊조리고는 정답확인 버튼 대신 우측상단 엑스표식을 천천히 눌러 껐다.
광고배너가 사라지자 말끔하게 드러난 화면에 두 장의 증명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반명함판 증명사진 속 두 사람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랄라는 꼭 화면 속 사내들과 눈싸움을 하듯 눈을 깜빡이지 않고 번갈아 이 둘을 둘러보았다. 연한 회색을 배경으로 비스듬히 단정한 테로 서 온화한 얼굴을 한 왼쪽의 인물에 비해 파란색이 그라데이션된 배경 앞에 굳은 얼굴을 한 오른쪽의 인물에게 시선을 좀더 빼앗길 뻔 했지만 랄라는 애써 두 사람 모두에게 같은 양의 관심을 쏟기 위해 노력했다. 오른쪽의 남성은 5년쯤 전에 찍은 것처럼 빛이 바랜데다가 칙칙한 얼굴색에 헝크러진 머리카락, 어색하게 경직된 표정을 하고 사진보정 마저 거부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괴팍한 성미까지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오해 없이 자신을 증명하는데 부적절한 사진처럼 보였음에도 랄라는 이상하게도 두 사람 모두 고위직 공무원 같은 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사제목이 주는 편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는데, 심지어 오른쪽의 인물과는 불과 얼마전까지 사무실에서 부대끼며 그 괴팍한 성미를 실제 경험하고도 그랬으니 꼭 알지 못했던 사람이라기 보다 앞으로 다시 못 만날 사람 같이 영 대우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 낯선 감정은 최신버전으로 미처 교체하지 못해 한참 젊어보이기까지 한 사진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랄라는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럴리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흰머리가 덜 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머리숱이 지금보다 더 많아보이긴 했다. 이 낯익은 얼굴은 정지사진 한 장으로 랄라 앞에 약력과 함께 박재되어 있다. 랄라는 이 사진들과 어느 지자체의 공익광고를 사이에 두고 화면 상단에 볼드의 고딕체로 큼지막하게 내걸린 기사제목을 다시 한번 힐끔거렸다.
청와대, 언론비서관에 손철호..경제정책비서관 최식 내정
“출세했네”
랄라는 기사제목의 그 어느 부분쯤에 걸려 시선이 머무를 때 이 소식을 구두로 먼저 전해들은 나인의 반응을 떠올렸다. 헛웃음과 함께 터져나온 나인의 말은 “출세했네”가 다 였다. 도저히 심경을 알 수 없던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랄라는 이제야 그 말이 퍽 촌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출세라니. 빈정대며 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랄라는 과거급제 만큼이나 철지난 시대착오적 단어라고 생각하면서 지속적으로 출세라는 말이 이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아른거렸다. 그리고 랄라는 스크롤을 내렸다. 밧줄로 우물을 길어올리는 것처럼 증명사진 속 두 사람의 얼굴이 위로 균등한 속도로 감겨 올라가더니 코 아랫부분만 보이게 화면에 남겨졌다. 기사에는 두 사람의 약력 중심의 내용들로만 간결하게 실렸다.
청와대 대변인실은 지난 2일 신임 언론비서관에 손철호(56) 전 제일신문 편집국장을, 경제정책비서관에 최식(57) 한영대학교 국제경제학 교수를 내정하며 청와대 일부 참모진을 교체한다고 밝혔다. 손철호 편집국장은 민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제일신문에 1989년에 입사해 정치, 문화, 사회부 기자를 두루 거치고 데일리부장, 취재총괄 부국장을 거쳐 2013년부터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그 외 민주언론연대 자문위원 등을 거쳤다. 최식 교수는 민주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석박사를 거쳐 한영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경제전문대학원 부원장을 거쳤고, 경제민주화실천연대 정책위원과 대안경제연구소 이사 등을 역임했다. 또한, 2017년 대통령 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인수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는 최식 비서관은 가장 최근까지 S시창의테크밸리를 총괄운영하는 창의와혁신을위한모든지원센터 센터장을 지냈다.
이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해당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뤄진 이번 인사 개편으로 최우선 국정과제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또 시민사회비서관과 디지털소통센터 등 추가적인 인사 교체 가능성도 시사하며, 임기 중반을 맞아 국정운영의 중점 과제를 중심으로 참모진을 재편할 것임을 시사했다.
가장 아래 문장을 읽으면서는 드디어 그가 누구도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듯 인사위가 열리기 전 스스로 직을 내려놓으며 책임을 회피하고 돌아선 자신의 상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는데, 문장 아래로 마구 달려드는 폰케이스 광고 때문인지 랄라는 잠시 울렁거리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고도 랄라는 화면 하단 정신없이 움직이는 폰케이스 광고배너인지 기사의 마지막 문장의 아랫부분인지를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눈 앞이 혼미 해져서 기사가 실린 인터넷 창을 끄기 직전까지. 그리고 나타난 검색창에 커서를 두고 딜리트 버튼을 두 번 눌러 최식 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출세 라는 단어를 쳐 넣고 엔터키를 눌렀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신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됨, 서울에서 출세한 삼촌은 우리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등의 사전적 의미와 예문들을 읽은 후 랄라는 연이어 자랑과 유명이라는 단어도 검색해 의미를 찾아보았다. 유명을 달리하다, 성공, 성취 등의 단어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이대로 덮어두기 위하여.
커버사진: Unsplash의 The Climate Reality Project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3부(three)에 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