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마지막> #증후 ⑫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나인이 V동 현관을 등지고 섰을 때 내내 말이 없던 랄라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조퇴하고 귀가하는 민지 그리고 협력업체와 미팅을 마저 하고 복귀하겠다는 율무와 헤어지고 V동 1층을 막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 때 누군가 계단을 뛰어 올라 느리게 내려오던 나인의 옆을 순식간에 지나치더니 자동문 센서 버튼을 빠르게 연사하듯 누르는 등의 중첩된 소리를 내며 바위문을 열고 동굴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나인과 랄라가 있던 곳으로 사라졌다. 나인은 이 요란한 소리에 시청각의 감각을 모두 빼앗겼다가 소리를 잃은 것과 같이 갑작스런 적막상태에 놓여 잠시 눈 앞이 멍해졌다. 랄라는 틀림없이 곤란한 질문을 할 모양이었다.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던 시간엔 딴세상에 앉아있는 것처럼 말이 없더니 사방에서 온갖 소음이 날라드는 이 야외마당에 서서야 듣고 싶은 말이 있다고 나인을 붙잡아 세운 것을 보면. 지나가는 말처럼 답해도 된다는 소리인지 둘이 긴히 할 말이 있다는 것인지 헷갈린 채로 나인은 말없이 끄덕이며 침이 꼴딱하고 넘어가는 걸 숨기려고 텀블러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후회 안해요? 청년플랫폼 그 일?”
랄라가 말한 청년플랫폼 그 일이란, 단지 내 입주기관이자 S시 산하 청년정책지원 중간지원기관인 청년혁신플랫폼의 내부 갈등 문제에 나인이 끼어든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웃집 문제에는 들어도 못 들은 척 무관심과 무대응 모드로 초지일관하는 것이 동네 미덕인 건 소셜섹터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으므로 이 일에 타 기관 직원인 나인이 끼어들어 기어코 사단을 낼 것이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그야말로 커다란 사건이었다. 나인의 이 돌출행동은 문짱의 계획을 어그러트리고 문짱의 눈치를 보던 센터장 C의 신경까지 벅벅 긁는 그야말로 사건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창의센터에서 나인은 와장창 금이 간 얼음바닥 위에 간신히 자리를 부지하고 선 것처럼 고립무원의 상태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건 그녀가 자초한 일이었고 그 덕에 산적한 조직 과제에 대하여 팀장으로써 의견을 낼 때마다 그녀는 번번히 곤경을 면하지 못했다. 민지의 일만 해도 그랬다. 공동행동 멤버 중에 단지 내 특정 세력을 드러내놓고 비토하고 특정 인물을 끌어내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인물이 참여하고 있다며, 공공연하게 문제를 삼는 사람들의 얼굴 없는 뒷이야기들이 센터 안팎으로 흉흉히 나돌았다. 랄라 홀로 감당할 몫이 만만치 않아졌을거였고 그녀의 질문은 실제 생각을 듣고 싶어서라기보다 꼭 그랬어야 하냐고 타박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나인은 짐작했다.
“후회..”
그러나, 나인은 후회라는 말 주변을 맴돌았다.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당장이라도 힘주어 말하고 싶지만 다시 돌아가 똑같이 행동할 수 있느냐 라는 자문의 고리에 목덜미가 붙잡혀 제자리에 머무를 뿐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저격과 제거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반대를 위한 반대로, 민주주의적 자유에 기대 의견을 내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자부하면서도 쫄지 않고 계속해서 소수의견을 조직의 결정과정에 남길 수 있느냐 하면 그마저도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나인은 언젠가부터 이유를 알 수 없게 어깨가 굽고 목엔 긴장이 바짝 섰으며 역력한 불안의 빛을 얼굴에 띈 채로 단지 안을 자주 배회했다. 그러므로 후회하지 않느냐 하면, 후회하고 후회했고 그러나 후회하지 않아야 했다.
시장 Y의 초임부터 재임에 이르기까지 2년여동안 제3섹터의 아젠다들이 S시의 주요 정책 과제로 빠르게 세팅되었던 것과 달리, 청년정책은 재임 직후 후발주자로 이들 대열에 합류했다. 청년의제가 다소 늦게 안착된데는 시정의 카운터파트너로 인정할만한 대표성을 가진 청년그룹이 명확치 않았던 탓이 컸다. 느슨한 관계설정과 미시적 의제에 주목하며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좋아하는 세대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것인데, 이와 다르게 이 시기 각계의 제3섹터그룹은 강력하게 연대하고 연합조직의 해체와 재조직화에 단련된 노련함과 관성으로 주민자치, 주거복지, 저출산, 고령화, 사회적경제, 노동 등 사회의제에 따라 거버넌스의 멤버쉽을 빠르게 구축해 나가던 때였다. 이 무렵 청년혁신플랫폼 초대센터장을 맡고 있던 문짱은 외려 보폭을 넓혀 스타트업, 뉴미디어, 문화예술, 청년정치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다양한 정체성의 청년들을 만나 청년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모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문짱의 이 같은 행보는 스스로를 대표하는 청년들이 청년정책 방향을 협의하고 결정하는 청년의회와 정책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로 확대 발전되며 시장 Y의 눈에 띈다.
거시적 변화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 속에도 로컬 이라는 미시적 영역에서 대안적 세계를 구축하며 통시적 변화를 주도해온 새로운 시민사회세력과 이들의 사례에 주목해온 시장 Y는 분야별 거버넌스가 완성되자 S시 5대 시정 계획를 발표하고 이 중 핵심사업으로 정책적 사각지대에 놓인 새로운 정책 수요층과 정책과제 발굴을 목표로 하는 혁신 정책 추진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며 그 혁신정책의 행정수장으로 문짱을 지목한다. 혁신정책이란 관성화된 시민의 정책참여 프로세스를 더욱 광범위한 제도영역으로 확장하고, 공동육아 등 미시적 생활 문제를 해결해오던 동네 품앗이와 커뮤니티를 사회적 자본화 하는 한편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한 청년들의 다양한 사회경로들을 발굴해 지원하도록 제도와 행정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의 종합적 지원 창구가 될 목적으로 설치된 창의테크밸리와 창의센터를 비롯해 주민자치센터, 청년혁신플랫폼 등 다변화되는 수요에 민감하게 대체할 수 있도록 행정과 시민 사이에 설립된 중간지원기관들이 혁신정책의 제도적 확장과 함께 불현듯 생겨난 것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S시의 공무원들은 시장 Y가 꼽은 전국의 벤치마킹 사례지들을 부지런히 돌고 성실히 이들 케이스를 붕어빵 기계로 찍어내듯 대량화 하는데 몰두하기 시작했는데, 이름 마다 ~식, ~형의 모방사례들이 지역 곳곳으로 봇물처럼 불어나 증식된데에는 이 불도저식 제도화 과정 때문이기도 했다. 대대적인 행정력의 동원 속에도 이들은 좀처럼 한데 묶어 묵직하게 설명하기엔 무수히 많고 작은 것들이 간지럽게 반짝거릴 뿐이었고, 간헐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지는 프로젝들도 많아서 괄목할만한 성과로 잘 드러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주렁주렁 잠재력을 매달고 금방이라도 툭하고 열매를 틔울 것 같은 재목으로, 진흙에 진주처럼 빛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청년정책의 성과들이었다. 세대담론의 사회적 부상과 함께 청년정치인들이 중앙정치에서 중요한 캐스팅보터로 입지를 다지고 새로운 소비의 주체로 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전방위적 확장의 조건이 갖춰진데다 혁신정책의 초기 성과에 목마른 총괄국장인 문짱의 갈증과 시장 Y의 청년정책에 대한 편애까지 한데 묶여 청년정책 사업은 그야말로 활황이었다. 비진학, 미취업 등 불완전성을 나타내는 언어를 대체하고 실패의 안전망을 만드는 갭이어 프로그램과 실패박람회와 같이 아이디어에 기반한 사업들이 초기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중앙정부로 정책이 역도입되고 타 시도의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위하여 찾아오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러한 사업 초기 성과가 발판이 돼 이후에는 생활비, 주거비, 인건비 등 청년을 직접 지원하는 형태로 정책이 발전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매끄럽지 않게 진행돼 갈등이 더욱 증폭되었다고 나인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 초기의 성과가 단단히 뿌리내리기도 전에 방향타가 선회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물론 증폭 이전 갈등의 불씨는 문짱이 시 국장으로 옮겨가면서부터 촉발된 것이었다. 문짱의 빈 자리를 경원이 메우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와 문화운동단체에서 연을 맺어 실장으로 청년혁신플랫폼에 결합하였다가 그가 시로 자리를 옮긴 후 센터장이 되었다. 센터 내부에 이렇다할 자기 세력이 없었던 경원을 센터장으로 앉힌 것을 두고 사람들은 조직세가 강한 특정계파 세력의 힘에 의하여 청년센터가 작동되지 않게 하려는 문짱의 선견지명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 세대의 특성상 보통의 청년들이 어떤 특정 계파에 몸담는 것이 아니라 관심 주제에 반응하며 개별적으로 활동하는데 반하여 청년의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며 움직이는 청년그룹이 청년혁신플랫폼 내부와 당사자그룹에 대거 운집해 있었고 이들이 과대대표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문짱이라고 하는 강력한 힘으로 균형을 맞추던 추가 다른 추로 교체되며 기괴하게 흔들리기 시작한 건 이 부조화 때문이었다. 조직 내부 협력자 하나 없는 혈혈단신의 센터장과 정파로 뜨겁게 무장된 실팀장그룹 이라는 부조화. 다양한 정체성의 청년들을 느슨하게 연결하는 생태계를 지향하는 쪽과 각 제도영역 내 청년의 입지를 넓히는 청년정치운동을 지향하는 쪽은 공생의 방법을 모르고 번번히 부딪히는 듯 싶었는데, 문짱이 있을 때는 표면화되지 않던 갈등이 그가 사라지자 본색을 드러내며 첨예하게 갈라졌다. 행정조직에 들어가 보니 대단위의 가시적 성과가 필요했던 문짱까지 합세해 위아래로 경원의 권한을 무력화려는 시도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아쉬운 스타트와 다르게 중반 스퍼트가 남달랐던데에는 정파적 색채를 띄고 강력하게 조직된 청년 그룹의 우세적 성장과 문짱의 동행 탓이었고, 이는 어떤 이에게는 문짱의 변심으로 읽혔고 때에 따라선 변덕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런 내부 갈등이 주민자치센터라고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들에게는 운동진영 내 세력싸움으로 생태계 전체가 전쟁 후 폐허와도 같은 상태에 놓여봤던 경험치가 있었고 그 때문인지 각자는 넘지 말아야할 선 같은 것을 보이지 않게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장 Y가 만든 거대한 우산 아래 과거 정파색 구분 없이 풀어야할 문제와 과제 중심으로 모여든 것인데, 누구말마따나 종교대통합과 같은, 불가사의한 평화적 휴전지대 같은 곳이 생겨난 것 같았다. 정치적 신념은 조금씩 다른 모양이지만 서로의 밥벌이만은 존중한다는 듯 비즈니스 협상테이블에 앉아 아슬아슬한 휴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때되면 돌아오는 선거시즌에도 공직에 있던 없던 조직적으로든 개별적으로든 대게는 적극적 혹은 비판적 지지 조차 하지 못했는데, 나인은 이것이 건전한 정치 풍토에 이바지 하는 것인지는 언제나 미지수였다. 정치적 언어가 혐오의 언어로 쓰이며, 민주사회에 필수불가결하게 가져야하는 정치적 지향마저도 드러내기 쉽지 않은 시대였다.
주민자치센터를 둘러싼 주변 비즈니스 생태계에서는 비공식적 담화들이 공식적 결정과 여론을 전복시킬 만큼 세력을 키우지 못하는 분위기가 아슬아슬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꼭 마을에 큰 어른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적당히 눈치를 보며 행동했고 손아랫 사람들이 적당히 까불거리면 손윗 사람들이 적당히 눈감아주는 정도의 분위기도 늘 있었다. 한번은 ‘뉴라이트’로 전향했다 돌아온 인사가 주민자치센터의 주요 보직을 맡은 것을 두고 풀뿌리 활동가들 사이에서 비토와 힐난의 말이 나돌았던 일이 있었는데, 이 뒷이야기들이 센터의 주니어 그룹에까지 들어오자 센터의 주요 임원진들이 풀뿌리조직 내 주요 인사들을 비공식적으로 만나 센터의 인사 방향에 대해 해명하며 문제를 적극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뒤 꼭 짜기라도 한 것처럼 비공식적으로도 그에 대한 언사가 깜쪽같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나인은 이 아슬아슬한 평화적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직접적 원인은 다양한 연령과 성별로 조직이 구성된 탓이라고 평가했는데, 물론 성폭력 사건 앞에선 이 조직도 세대와 성차로 판판이 갈라지긴 했지만 조직설립 초기 닥 그때까지만해도 분위기는 그러했다.
그러나 청년혁신플랫폼 내부 갈등은 양상을 달리 했다. 문화예술, 스타트업, 미디어, 정치 등 활동의 다양성을 길러내는 생태계와 문화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청년 진영의 정치적 힘과 권력을 우선적으로 키우려는 청년정치운동그룹이 이러한 다양한 종의 성장을 막는 집단주의적이고 패권적인 조직 운동이라고 비판했고, 반대로 청년정치운동그룹은 종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생태계 혹은 문화운동그룹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구조적 혁신을 요구하지 않고 부루주아적으로 사고하며 낭만주의적으로 세상을 관조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청년정치운동그룹의 문제제기가 상대의 비판을 일거의 무력화할 정도로 위협적으로 비춰진 건 이들이 조직 내외부로 특정 정파적 색채를 띄고 규모있게 모여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알력행사는 그 외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게 하는 어떤 말과 언어도 존재해선 안되는 것과 같은 강력한 힘으로, 상대의 건강한 비판마저 마치 청년 정치세력화 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하려는 것으로 보이기 충분했고, 실제 집단적 괴롭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버티던 경원이 센터장을 사임하겠다고 밝히고 단지에서 사라진 날은 청년혁신플랫폼 내부 직급으로 3순위 안에 드는 정책실장이던 박민정이 “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일방적인 계약만료 통보에 대한 사과와 정규직 전환”과 “용역(업무위임) 형태의 편법적인 계약직 인력충원 중단”, “폐쇄적 조직운영 개선”, “장시간 노동에 대한 S시와의 긴급조정”을 요구하며 센터장 규탄 성명을 내고 창의테크밸리 야외마당에 피켓을 들은 날로 3일이 되던 날이었다. 그리고 이 피켓시위는 꼭 원하는 것을 다 이룬 것처럼 경원이 사임한 다음날로 종결되었다. 박민정이 피켓과 규탄성명에 제시한 4가지 요구사항에 대한 후속조치를 시나 모법인 등 어느 곳에서도 약속받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라는 것은 센터장 권한 밖의 요구이며, 매년 시 예산승인에 따라 정해진 티오를 정하고 전년도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계약직 인력의 규모를 시와 센터의 임원진이 함께 결정하는 일이란 걸 청년혁신플랫폼에서 주요 보직을 맡아온 피켓을 든 이도 모르는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피켓시위는 더더욱 센터장 한 명 몰아낼 목적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는데, 심지어 사실상 이 문제의 공범과 같은 조직의 임원급 인물이 실질적 문제해결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모법인이나 S시와 같은 문제해결의 본질적 주체를 우회해 공론화했을뿐더러, 이 여론재판과도 같은 이슈화 이후 다시 문제를 덮어버린 이 무책임한 공론화 과정이 더 큰 문제로 보였다. 누군가로부터 발화된 공론화 과정은 센터장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으로 무의미하게 해산되고 감쪽 같이 없던 시간이 되었는데, 그렇게 무의미해질 뻔 한 문제를 다시 꺼내든 사람이 바로 나인이었다. 나인은 문짱을 포함한 청년혁신플랫폼 운영위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공론화의 전후과정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던 공동체에 책임있게 설명하라고 요청했다. 타 기관 일개 팀장의 이 당돌한 메일의 파장은 표면적으로는 없는 듯 하였으나 비표면적으로는 나인에 대한 일부 청년정치 운동진영의 기이하고 이상한 인신공격과 센터장 C의 불신과 실질적 압박으로 이어졌을 뿐이고 이에 책임있게 응답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다만, 문짱이 나인에게 좀 가만히 있으라는 투의 우회적 메일을 보냈을 뿐.
“이제와 하는 말인데요. 저는 나인이 좀 과했다고 생각해요. 뭐랄까. 신성한 노동운동의 구호를 어디 세력다툼 하는데 갖다 써 라고 하는 것 같은. 그냥 막 대놓고 비열하다고 욕하는 느낌이었달까. 비도덕적이고 공동체 윤리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요. 근데 그게 도덕과 윤리로까지 가야할 문제인가 싶거든요. 문제를 조금 간결하고 이성적으로 제기할 순 없었나.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하면서요”
그러나 나인은 여전히 랄라의 이어진 평가 보다 ‘후회’ 라는 말에 더 몰입하고 있다.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 지금의 나라면 어땠을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모르는 척 해야 할까, 모른 척 하고 싶어질까. 메일을 쓴 이후 자주 되돌아가 보는 시점, 나인은 왜인지 그 대답을 먼저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단지 스스로를 괴롭힐 목적으로 후회라는 단어를 꼽씹고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무던한 척 가면을 쓴 것이 자신을 위한 방어였는지 가면 속 자신조차 무감해지도록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이, 무엇이 리얼인지 이 리얼타임의 자신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더 깊이 들어가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의 질문이 꼭 그것 같았다. 후회하는가. 나인은 목이 뻐근한 듯 고개를 들어 긴장된 목을 좌우로 돌려 풀었다. 눈을 살짝 감고서.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 랄라를 봤을 때는 어느 덧 둘은 A동 후문 주차장을 주변으로 샛노란 잎을 흩뿌리는 어느 혼돈의 시기 늦가을 은행나무 아래 서있었다.
“비도덕적 매도. 맞아. 이성적 대응이라면. 비리 뭐 횡령, 아니면 무슨 절차적 문제로라도 걸고 넘어졌어야 했을까? 빼도박도 못하게? 그게 오히려 본질을 호도하는 것 아니야? 나는 단지 게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게임에도 룰과 원칙이 있다고 이야기한 거 였어 랄라. 의견이 다르면 의견이 다른 것 가지고 치고 박고 싸워야지. 갑자기 상대가 선수 자격이 없다고 하는 건 반칙도 아니야. 선수로 설 자격도 없는거지. 물론 내가 심판이 아니니까 그런 판단을 자격이 주어진 것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단지 사람들이 전체가 돌아다니는 야외마당에 돗자리 깔고 피켓을 왜 들어. 세상 사람들 제 말 좀 들어보세요 했으면 그 세상 사람들에게 판단한 권한 준 거 아닌가. 그런 게 싫었으면 이해관계자만 알려서 문제를 해결했어야지. 그리고 그렇게 대대적으로 폭로 해놓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접는 건 또 뭐야. 그런 걸 전형적인 여론몰이라고 하는거야. 여론도 공공재고 그런 식으로 사유화하면서 여론이란 공공재를 쓰니까 이제 진짜 늑대가 나타나도 다들 반응을 안하는거야. 적어도 이 판에 책임자라면 공공재는 신중하게 써야지. 진짜 공공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랄라말대로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라서 내게 더 허점이 많았지. 상대가 나에게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매도하느냐 무슨 근거로 내부 알력다툼이나 하는 것처럼 확신하느냐 라고 되물었다면 오히려 내가 더 불리해졌을거야. 내가 청년센터 내부사람도 아니고.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그들도 내 메일에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못한 거. 내가 보낸 메일에 별 반응 없었던 거. 그리고 뒤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리저리로 나를 괴롭힐 생각뿐이었던 거. 할 말 없는거잖아. 내가 너무 정곡을 찔렀나? 근데 랄라의 말을 듣고 보니 신성한 운동의 구호, 뭐 이렇게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들렸을 수 있다 싶네. 운동 구호가 신성화될 것도 아니고. 그건 치기 어린 마음으로 그랬던 것도 같아. 그게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쉬워. 좀 점잖게 메일을 쓰도록 노력할 걸 이런 생각도 들고. 팀원들이 팀장인 나에게 불만을 토로할 때 갑자기 내가 계약직 노동자를 양산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냐는, 누구도 반박 못할 정의의 도구를 들이대며 내 권한 밖에 일을 나에게 묻는 방식으로 공격을 하는 친구들이 있거든. 근데 그거야 조직에서 가장 약체인 친구들이니까 내 속은 썩지만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그러나 박민정은 그러면 안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 아닌가? 노동조합 가입도 안되는 실장 이상급 임원. 시와 매년 인력구조 문제로 협상테이블에 앉는 사람. 싸우려면 청년정책 방향 뭐 이런 거 가지고 각을 세우고 싸우던가. 그게 뭐냐. 비겁하게. 돈도 없는 것들이 가오도 없는거지. 어디서 되먹지 않게 운동을 배운거야? 운동권들이 싫어하는 비즈니스 세계에도 상도의란 게 있어.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상도의도 없다니? 시나 모법인하고 앞으로 그렇게 화이팅 있게 싸우지도 못할 일을 왜 위탁기관 유기계약직 센터장에게 물어. 그 비정규직 양산의 공범자면서. 자기들은 책임이 없어?”
A동 뒷마당 피켓을 달아 파라솔을 깔아두고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앉았던 박민정의 자리에는 연식이 좀 되어보이는 하얀색 SUV 자동차 한대가 몸에 듬성듬성 은행나무잎을 묻히고 주차되어 있었다. 단지 곳곳에 붙었던 전단이 경원과 함께 3일 만에 사라지고 두 달여가 지난 후였다. 나인은 그곳을 돌아보았다. 두 달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인은 머릿 속으로 노트북의 화면을 위로 벌컥 열어 토시 한 자 바꾸지 않고 다시 메일을 꾹꾹 눌러 적고는 보내는 이의 빈 칸에다가 메일주소를 알고 있는 너댓의 청년센터 운영위원들을 정성껏 추가한 후 sand 버튼을 눌렀다.
후회하지 않았다.
커버사진: Unsplash의 Erwan Hesry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3부(three)에 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