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마지막> #함정 ③
보낸사람: “민지”
받는사람: “나인”
제목: 사라지는 사람들
오늘 시청 근처에서 조찬회의가 있었어요.
긱노동자 플랫폼 구축 사업 관련 미팅인데 그 덕에 매주 한번씩 이른 아침 어스름할 때 버스를 타고 있네요.
오늘 새벽은 유독 밤으로 가는 저녁 같더라고요. 밝아지는 게 아니라 어두워지고 있는 것 같았달까요.
그렇게 말하면 다들 그러더라고. 내 마음이 그런 것이라고요. 정말 그런걸까요?
나의 바깥은 한결 같은데 내 마음이 문제인건가. 마음 먹기에 따른 것일까. 새벽 버스를 타고 회의장소로 가는 길 나인에게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같은 버스에 올라탄 승객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걸 힐끗보다가 머리속이 실타래처럼 꼬여 잠이 들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하면서요.
그렇게 신촌을 지나왔을 무렵 인적이 없이 썰렁한 보행로 끄트머리에 간결하게 펜스를 치고 제대로 된 보호장구도 없이 맨홀 뚜껑을 열고 맨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두 명의 노동자를 보았어요. 그리고 저 안으로 저도 함께 사라지는 상상을 했지요. 이미 제가 그 안에 있고 그들이 저를 구하러 온다는 상상은 하지 못했어요. 이 도시에서 어떤 이도 타인을 구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나에게만은 닥치지 않을거라 굳게 믿는 나쁜 사고는 펜스 저 안쪽에 놓여있는 것처럼들 생각하죠. 금방이라도 저들이 경계쳐놓은 펜스를 걷어낼까봐 걱정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외면해버려요. 어떤 사람은 피하는 것도 피곤한듯 자신의 눈 앞에서 없어지길 바래요. 그렇게 지하 세계로 숨어들어가요. 전 그렇게 도시의 이면에서 보이지 않게 숨죽이며 살아야할 것만 같아요. 사라지길 바라는 불편한 이웃, 그 사람이 바로 저 인 것 같았어요. 회의 하는 내내 빛 하나 없는 맨홀 안에 웅크리고 있는 기분으로, 그리고 공동행동과 진상조사위원회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내내 비슷한 기분으로 지나왔다는 걸 불현듯 알게 되었어요. 나는 사실 매순간 혼자였고 고립된 기분으로 있었구나 하구요.
랄라도, 율무도, 나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외로웠어요.
언제나 격정적 감정에 육체와 영혼까지 송두리째 휘둘리고 있는 나에 비하여 합리와 이성으로 무장을 하고 한치도 치우치지 않으려 애쓰는 심판자들 속에서 더 확실해지더라고요. 나는 혼자고, 이들과도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요. 모두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과 사건 그리고 사람이라는 것도요.
단 한순간도 닮기를 원치 않는, 완전한 타인들에게 나 자신의 아픔을 증명하는 일에 힘들고 지쳤어요.
저야말로 잊을수만 있다면 잊고 싶어요. 근데 잊는 데에도 꽤 큰 노력이 필요해요. 제 온몸 불태우는 노력 같은 거요. 그렇게 해서 지워질거라면 백번이라도 나를 태워 지우고 싶다고요.
타의에 따라 결국 문제 해결의 시작에도 당도하지 못했고 이순간 이 고백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나인에게만은 전하고 싶었어요.
항시 외로웠다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그랬다고요.
나인은 자율신경에 따라 깜빡거린 것처럼 초연하게 눈을 떴다. 본래 크기보다 과장된 파장으로 아래로부터 방출된 전자기파가 천장벽 모서리에 부딪혀 꾸겨진 모양을 하고 빈 영상화면과 같이 천장에 펼쳐졌다. 덕분에 나인은 프레임이 없는 매트리스에 누워 좁아진 시야 속 밝은 면을 따라 하염없이 초점을 잃은 상태로 다시 꿈 속으로 돌아갈 것처럼 어느 차원의 틈에 한동안 끼어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못 돼 손 쓸 새도 없이 눈 앞의 경계들이 하나둘 뽀족하게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이내 눈 앞으로 벌겋기도 하고 누렇기도 한 둥근 빛더미의 경계 밖으로 검회색의 물체들이 다양한 명도와 양감을 띄고 놓여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검은 눈밭 같은 벽으로부터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에서 째깍째깍 소리가 났다. 나인은 어림잡아 두시간쯤 지났다고 확신했고 곧 낙담했다. 단 1mm도 멀어지지 못했다는 현실을 자각한 후 사위가 천장으로부터 바닥으로 꾸준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검은 공기가 덮쳐오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나인은 원심을 따라 멀리 도망친다는 또렷한 착각 속 꾸준히 제자리걸음중인 자신으로부터 도리어 멀어지는 사람들을 고문처럼 지켜본다. 일으킬 수 없는 것인지 일으킬 의지가 생기지 않는 것인지 나인은 반듯하게 누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날아드는 의식과 짓눌린 육체가 연결되는 걸 굴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각이라는 찰나의 시간이 잔인하게도 교교히 흐르고 가슴 위로 서서히 무게가 더해지며 손바닥과 긴 손가락 다섯개로 심장을 쥐어잡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꼭 삶을 포기하는 것처럼 잠을 청한 뒤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도피처에서 깨어나고보면 공포스럽도록 명징하게 삶은 꾸준히 자신을 벼랑 끝으로 떠밀어내고 있었다. 나인은 눈을 떴을 때만큼이나 초연하게 다시 눈을 감았다. 왜 이렇게까지 한거니. 나인은 민지에게 꼭 선택지가 있었던 것마냥 그녀를 원망했다. 주위 한 눈 팔지 않고 곧장 그녀에게 가닿은 이런 종류의 원망은 정말이지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식의 궤도는 꽤 드라마틱해보였다. 국제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공공정책에 관여해온 그는 거기에 더해 진보진영의 유능한 선거전략가로도 통했다. 그는 S시 단체장 보궐선거 당시 범진보진영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무소속이던 Y에게 유리한 경선룰을 이끌어내고,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던 제1야당의 후보를 제치고 Y를 단일 후보로 만드는데 성공하며 끝내 선거승리로 이끈 주역이자 진보진영의 독보적인 선거전략가로 기사에 명시되었다. 이어, 이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시장Y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았지만 S시의 고위직을 전부 고사하고 비교적 한직에 속하는 S시 산하기관장을 맡아 주변으로부터 근래 보기 드문 희생적 리더십이라는 호평을 받았고, 시정 경험 1년이 못 돼 단숨에 청와대 비서관에 발탁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그는 내내 묘사되는 듯 했다. 그러다 기사는 클라이막스에 다다라 그가 자체 진상조사에서도 위계에 의한 성폭력으로 인정된 성희롱 사건의 가해 당사자라고 언급하며, 자신의 성비위 사건을 숨긴 채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한국 최고 권력기관으로 도피한 그의 추락사로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여직원의 손을 잡고, 귀가하는 택시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여직원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대는 등의 비교적 상세한 정황도 복기되었다. 그리고 기자는 마침내 결론에 다다른 듯 성추문 인사를 걸러내지 못한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는 야당 관계자의 반응과 더불어 M정부식 신경제정책의 시동을 앞두고 제동이 걸렸다며 인사개편의 부분 보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여당관계자의 반응을 번갈아 실었다.
비교적 평이한 사실관계와 익명의 제보로 직조된 기사는 알파벳 첫 자로 지칭된 제보자와 최식의 대립, 그러니까 익명의 민지는 기사의 서사구조 안에서 드디어 그와 대등한 대립 관계를 성취한 것인데, 아쉽게도 이 극적인 대구는 나인의 눈에 현 정권의 패착을 드러내는 소스로 적절하게 활용될 뿐으로 보였다.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정리된 것처럼 가장된 그러나 문제 해결과 제보자 신변 따위 안중에도 없는 원고를 읽는 동안 나인은 수시로 얼굴과 겨드랑이와 가슴과 배의 표피 아랫부분이 저릿한 기분을 느꼈다. 정교하게 구상된 최식의 계획에 들어맞게 세상이 돌아가준 것만 같아 괜시리 심사가 뒤틀리다가, 그의 미래를 저당잡아 후하게 죗값을 치른 것으로 호탕하게 퉁쳐버릴 것처럼 푸푸 대다가도, 예상된 진로를 벗어나 갑작스런 선회한 방향타에 맞닥들일 파고와 여파를 가늠해보느라 가슴이 덜컹거리기도 하는 상태로 갈피 없이 나인은 우왕좌왕거렸다. 그러나 기사를 다 읽고 난 후에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 얼굴과 겨드랑이와 가슴과 배 그리고 허벅지 앞부분까지 신경다발을 중심으로 피부조직이 형태 없이 갈기갈기 조각나는 것처럼 온몸이 화끈거리고 휘청거렸다. 그건 분개라는 주체적 상상이 가능한 존재에서 공포에 휩싸인 억압의 존재로 느닷없이 전환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기사창이 노트북 화면에서 사라지고 “[단독] 성추문 교수 청와대 비서관에 낙점, 진상조사 도중 사직하고 청와대로 도피?”라는 제목 한 줄이 새 창 포털 메인에 걸린 걸 보고부터 나인은 피해자와 가해자 이 두 사람이 대등하게 마주선 것에 뜨겁게 위안을 삼으려 부단히 애를 썼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도망쳐 버리거나 민지에게로 달려가 온갖 독하고 쓴 말들로 악다구니를 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혼자 감당할 처지도 못되면서 공동행동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는 짓을 하였느냐고, 일언반구 논의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무서운 짓을 감행할 수 있었느냐고. 그리고, 다함께 도망치자고!
보수 매체로 분류되는 언론사 인터넷판 단독기사로 포털메인을 깜짝 장식한 이 기사는 30여개 매체가 받아 쓰며 논란이 확대재생산되는 듯 하더니 반나절도 안돼 최식의 사퇴로 싱겁게 일단락되는 양상을 띄었다. 대통령께 심려를 끼쳤다는 짤막한 언급만으로 표명된 최식의 사의 소식은 내용 없는 제목 한 줄의 속보로 처리되어 포털메인에 올랐다가 곧 화면에서 사그라들었다. 일과 시간이 익명의 민지와 최식의 시간으로 점령되고 하루가 저물어가던 찰나의 고요 속에 어둠이 서슬퍼런 푸른 빛을 띄고 바닥으로 내려 앉자 이번에는 개인 네트워크 기반으로 돌아가는 소셜미디어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민지의 신상이 텔레그램 단체방으로 나돌고 캡쳐된 민지의 활동사진 밑으로 아군의 수장을 끌어안고 동반수장한 엑스논개라는 칭호가 따라붙었다. 엑스논개는 내부의 적 이라는 의미의 엑스맨에서 따온 엑스와 논개를 합성한 단어라는 걸 나인은 읽자마자 바로 유추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 나인의 피드에는 최식의 무고를 주장하는 글들이 골조를 세우듯 차곡차곡 쌓여갔다.
밥먹다 손 좀 잡은 걸 가지고 성폭력으로 신고하면 무서워서 어디 여자랑 일을 하겠냐거나 명백한 증좌도 없이 한 쪽의 증언만으로 마녀사냥식 심판이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전도유망한 인재들이 희생되는 걸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글에 특히 반응이 좋았다. 페친들은 ‘가여운’ 가해자에게 더 쉽게 감정을 대입하는 것 같았다. 다음 차례에 희생될 전도유망한 인재가 꼭 자신인 것처럼 널을 뛰었다. 여자가 대놓고 꼬시는데 안 넘어갈 남자가 어딨냐거나 서로 좋아서 연애하다 마음이 틀어진 걸 왜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느냐는 등 피해자의 원인행위에 따라 도출된 값으로 단정해 쓰여진 글들도 간간히 보였다.
나인은 몇 분 전까지 서로에게 지표가 되어준 준거집단 전체가 사회적 얼굴을 벗어던지고 말초적 욕구만 남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과 같은 기분에 휩싸여 단단하게 구축되어가는 보복적 세계의 데이터들에 눈을 떼지 못했다. 팔과 허벅지의 안쪽 여린 부분만 찾아 작은 커터칼로 쉴 새 없이 자해하는 기분이 들면서도 새롭게 생겨나 빠르게 소비되어가는 게시글과 늘어가는 좋아요수에 나인은 눈이 팽팽 돌도록 빠져들었다. 법 이전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문화와 풍토와 절차와 제도를 만들겠다고 거리로 나왔던 사람들. 생계적 수단을 공유하며 개인의 삶과 추구하는 사회적 방향의 격차를 줄여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함께 노력했던 이들. ‘이들은, 나의 30대 가진 것의 전부였던 내 몫의 시간과 20대 쓰다남은 열정까지 탈탈 털어 복무했던 세계의 동료시민들이었다’
철학도 원칙도 사라지고 깃발만 나부끼던 세계, 조직 보위와 권력의 선취만이 목표로 남은 이 옹졸하고 비루한 세계의 민낯을 나인도 모르지 않았다. 선택적으로 침묵하며 동조했고 능동적으로 복무해왔으며 적극적으로 행동해온 암묵적이자 묵시적 공범자. 드러난 피해가 가해이자 자해로 관계를 전복시키며 집단혐오를 더욱 공고히 해온 세계의 복무자. 가라앉아 있던 죄의식의 침전물들이 몽땅 일어난 것처럼 나인의 눈 앞이 혼탁해졌다. 나인은 자신이 가해자인지 그저 자해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그리고 그 어느 한 쪽으로도 편리하게 접어지지도 자유로워지지도 않는 상태로 입을 옴짝달싹거리며 웅얼거렸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더불어 누군가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할지 알면서 선택한 침묵. 시공간을 잃고 부유하는 것처럼 허우적거리던 두 팔과 다리 사이로 불쑥 가느다란 돌풍이 밀려 들어왔다. 발끝을 뾰족하게 세우고 선 한 쪽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민지를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는 랄라의 요청에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본가에 가있겠다 하니 카톡으로 안부를 물으며 각자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좋겠다 하고 퇴근을 서두른 나인은 발걸음을 딛을 때마다 건조한 흙무더기가 표면과 부딪혀 부서져나가는 것처럼 덜컹거리며 걸었다. 분리된 방 한 칸이 딸린 자신의 원룸의 현관에 들어섰을 때 나인은 무너지듯 주저 앉아 신발을 벗고 기어들어가 매트리스에 몸을 부렸다. 나인은 그렇게 당도한 자신의 동굴 깊은 곳에 움츠려들어서도 몸을 벌벌 떨었다. 어느 덧 단두대에 오른 마녀가 한참동안 주위로부터 뭇매를 맞는 현장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관음적 상태와 화형의 당사자가 된 것 같은 상태 사이를 오가며 나인은 꼭 세상을 등질 것처럼 멍한 상태로 천장을 응시했다. 취하고 있는 행위와 영 딴판으로 다시 홀로 남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커버사진: Unsplash의 Pawel Czerwinski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3부(three)에 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