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의 시간

소설 <PART-마지막> #함정 ④

by 수빈조

랄라는 사무실 중앙 통로에 들어서 자신의 자리 건너편 벽측을 따라 사선으로 놓인 파티션들 중 한 곳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하얀벽에 걸린 동그란 벽시계에서 시간을 확인하는 양 의식적으로 시선이 위쪽으로 향하다 말고 머무른 자리는 한낮에도 온통 그늘이 져있다. 그때 누군가 출입카드를 단말기에 찍고 딸깍거리며 사무실 조명 스위치를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열등의 불빛이 하안벽으로 부서지듯 길게 드리우며 반짝거렸다. 4명씩 그룹을 이뤄 앉도록 바람개비 모양으로 빼곡하게 배치된 구역마다 한두사람씩 듬성듬성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환하게 들어왔다. 출근 마감시간이 30여분이나 지났음에도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채워진 곳보다 더 많아 보였고 그 덕으로 어떤 빈자리가 특별히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랄라의 시선이 머무른 곳 파티션 위로 윤기 없이 푸석한 갈색톤의 머리꼭지 하나가 동그랗게 올라와보였다. 안구가 건조한 듯 힘주어 감았다 뜬 눈꺼풀 밖으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여기저기를 헤매는 동안 랄라는 창측 자신의 자리로 가 가방을 창틀에 올려놓다 말고 처음으로 창가에서 벽을 바라보는 뷰보다 벽쪽에서 창측을 바라보는 편이 더 나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쿠션감을 잃은 사무용의자에 털썩 하고 앉자마자 랄라는 노트북의 전원을 눌러 켰다. 덮지 않은 스크린 화면이 감색으로 바뀌다 전자제품 회사의 로고가 뜨다 사라지고 이내 모래사막과 거짓말처럼 파랗게 개인 하늘의 두 면이 소실점 한 가운데로 모여드는 장면이 한없이 정지된 채로 눈 앞에 펼쳐졌다. 모래사막 위로 하얗게 찍힌 글자 몇 자가 눈에 거슬려보였다. 오전 10:34, 2018년 5월 10일, 두 줄로 희미하게 보이는 글자들이 지각임을 알리고 있었다.


두 번의 낮과 밤이 꼬박 지나고 맞는 세번째 아침이었다. 최식의 전력이 담긴 기사가 포털 메인을 장식한 그 날로부터 민지는 삼일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민지는 기사가 난 날 아침에서야 기자와 접촉해온 사실을 공동행동 나머지 세사람에게 알려왔다. 공동행동 4인의 카톡대화방에 불현듯 등장한 그녀는 더이상 세사람에게 짐지우고 싶지 않아 홀로 벌인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모두를 곤경에 빠지게 했다며 담백한 사과를 건냈다. 그녀의 카톡 메시지를 읽고난 후 몇 번의 키워드 검색 끝에 최식으로 검색해 찾은 기사제목을 맞닥들이고 랄라는 뒤통수를 가격당한 것처럼 얼얼한 기분에 사로잡혀 한동안 기사 내용을 살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끝내 기사를 끝까지 읽지 못하고 카톡대화방으로 돌아온 랄라는 누군가를 원망할 새도 없이 지난 3주 동안 기자를 긴밀히 만나오며 절대적 힘이라도 가진 것 마냥 힘이 났고 그를 벌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느껴졌다는 민지의 고백에 덜컥 마음이 걸려버렸다. 표정 없는 그녀의 메시지에서 자책과 괴로움이 읽혔다. 무어라 답신을 하면 좋을지 망설이고 있던 차 메시지 하나가 휘릭 소리를 내며 대화창에 올라왔다. 나인의 메시지였다.


독하게 마음먹되 견디기 힘들면 여기서 다 그만 둬도 되요 여기보다 좋은 직장 널렸잖아 세상은 넓으니 자신을 가두지 마요 능력있는데 뭐~


나인의 메시지를 더듬더듬 읽다가 빼꼼히 고개를 든 랄라는 해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부처럼 건너편 파티션 위로 이마만 내놓고 앉은 나인의 얼굴과 표정을 어림잡아 보느라 골똘해졌다. 잔뜩 찌푸려진 미간을 왼손 검지와 중지손가락 끝으로 툭툭 누르듯 치며 정신을 다잡고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돌아왔을 때 오른쪽 하단으로 알림창 하나가 불쑥 올라와 보였다. 작은 포스트잇 모양의 팝업창 안으로 “센터장과 실장단은 S시의 요청으로 열리는 긴급회의 참석을 위해..” 라는 이하 생략된 메시지가 빼곡히 눈에 들어와 박혔다. 평소 같으면 알림이 화면에서 사라지기 전에 팝업창을 클릭해 상세한 내용을 확인해봤을테지만 랄라는 단체행동에 나선 상대의 동태가 꼭 선전포고처럼 느껴져 팝업창이 펄럭이듯 사라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말았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들고 압력으로 꽉 찬 광활한 우주공간에 둥 떠있는 것처럼 한 점 인기척조차 없는 정막 속 사무실 풍경을 이리저리로 둘러보며 왜인지 사무실 공기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자리를 찾아 숨어든 열두어 명의 사람들이 듬성듬성 행성처럼 두둥실 떠 있는 장면을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살피던 랄라는 죽은 듯 위장을 하고 파티션 아래로 숨어 드는 모양으로 목을 움츠렸다. 대체휴일이 끼어 하루 늦게 시작된 새로운 한 주의 아침은 파국을 암시하는 신호들로 깜빡거렸다.


두눈을 지그시 감고 뒷목의 근육이 팽팽해지도록 고개를 숙이며 랄라는 평소와 다름 없이 행동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리고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꼿꼿이 세워 들고 두 손을 노트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자 자연스럽게 응시하게 된 모니터 속 화면에는 공동행동 4인의 카톡대화방에 새롭게 올라온 두 개의 메시지가 헌 것들을 위로 밀어올리듯 아래에서부터 쌓여있었다. “나인 말대로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스스로 다그치지 말라”는 율무의 메시지와 미안하고 고맙다는 민지의 짧은 응답이 나란히 올라와있었다. 그리고 오전 반차만 내두었는데 도저히 혼자 있을 상황이 못되어 본가에라도 잠시 다녀와야겠다는 민지의 메시지가 뒤따르는 중이었다. 랄라는 몇 번의 딜리트 키를 섞어 누른 끝에 공개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최식과 법인의 반응을 살펴본 뒤 그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의미의 율무와 나인의 답변이 제각각으로 연달았다. 랄라는 거기에 더해 당분간 SNS를 끊고 지낼 것과 아침 저녁으로 근황과 소식을 전해줄 것을 당부했고 율무는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입발린 말을 했다. 사무실에 계시는 분 중 한 분이 병가처리가 가능한지 경영지원실장과 상의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율무의 조언에 나인이 본인이 처리해보겠다고 이어말하는 사이 민지는 다시 한번 고맙다고 짧게 대답을 했다. 랄라는 민지에게서 새삼스레 격을 두고 되도록 간결하게 메시지를 달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몇 시간 뒤 나인이 4일간 병가 처리 소식을 전하고 다니는 정신과에서 소견서를 받아와달라는 경영지원실장의 전언을 전달했을 때 별다른 답신이 없던 민지는 퇴근길 무렵에서야 엄마집에 도착해 낮잠을 자고 저녁식사를 하려던 참이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퇴근을 서두르는 나인에게 본가에 찾아가서라도 민지를 한번 만나보아야 하는건 아닌지 혼잣말처럼 물은 건 그 어느 무렵이었다.


오전에 있었던 간부급 긴급회의 개최 공지 후 추가 알림 없이 센터장 이하 실장단 4인은 하루의 일과가 종료될 때까지 사무실에 복귀하지 않았다. 랄라는 일곱시 퇴근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서둘러 퇴근하는 실장 P의 모습이 파티션 너머 자신의 시야 안으로 잡히는 걸 감지했다. 곧이어 나인이 비슷한 모양으로 그러나 그보다는 삐걱대며 평소보다 느리고 조용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랄라의 시야 안으로 들어와보였다. 랄라는 나인에게 민지를 만나보지 않아도 괜찮을지를 둘만의 카톡방에 물었고, 곧바로 나인에게서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답신이 달렸다. 그리고 랄라는 지하철 8번출구 계단 아래 통로에서 만나 같이 가자는 메시지를 넣어두고는 책상 위를 부시럭 거리며 정리하는 척하고 책상 아래 서랍장을 열어 뒤적거리는 무의미한 행동을 하느라 일이분의 시간을 흘려버리다가 때가 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벗어날 때는 구령에 맞춰 행진하는 군인 것처럼 지체 없이 움직였다. 이내 사무실을 완전히 벗어난 랄라가 나르듯 잰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1층에 멈춰 서서 방향을 잡고 건물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던 나인의 모습은 1층 카페를 지나 V동측으로 난 문을 벌컥 열고 5월 어느 저녁 봄바람에 잠시 멈칫하고 섰을 때 멀리 주차장 너머 V동 앞을 지나며 T동 앞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랄라는 나인의 옆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서있다가 주춤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다 말고 철퍼덕 내려앉아 운동화끈을 고쳐맸다. 랄라는 운동화끈의 끝부분을 매만지며 자신이 본 사람이 나인인지 민지인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문제로 머리가 산란해져 어리둥절하게 앉았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계단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는 주차장 옆으로 난, 발목 위까지 한참 자란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었다. 따꼼하게 피부에 와닿는 잔디밭길을 걷고 T동 앞 콘크리트 바닥에 섰을 때 건물과 건물 사이 땅 밑까지 내려온 구름 아래로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도시공간을 향해 걷고 있는, 팔뚝만큼 커진 나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랄라는 비틀대고 덜컥거리며 걷는 어깨인지 등짝인지 또는 팔뚝 등과 같이 그녀의 몸 어느 부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뒤를 쫓 듯 걸었다.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단히 흘러가던 시간이 영영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멈추고 초침 끝 점과 같은 날카로운 시간 위에 아슬아슬하게 끼어있는 것만 같았다. 타의에 의한 처분이 내려질 때를 기다리며 서로를 외면한 채 각자의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정처 없이 하루를 보냈다. 초침의 타격마저도 감각적으로 느껴지던 영겁의 시간, 여덟시간 이십여분의 시간이 삼만초로 낱낱이 쪼개져 흐르던 시간이었다. 시간이 꼭 징벌이었던, 그 감옥의 시간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고대하던 그녀와의 유대가 한순간 저멀리로 계속적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둘의 사이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하고 랄라에 의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벌어지다 가까워지다를 반복했다. 징벌과 같은 시간의 감옥 안으로 자신에게 벌을 주는 것처럼 스스로를 유배해버린 나인의 뒷모습이 더 깊은 지하세계 아래로 자취를 완전히 감추는 것을 보며 랄라는 그녀가 꼭 민지인 것처럼 느껴져 가슴이 덜컹거렸다. 이대로 그녀를 보내면 안돼.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랄라는 발이 땅 밑으로 빠지는 기분으로 한참을 서있었다.


징벌 같던 시간은 다음날 고문 같아졌다. 일시적 단절을 선언한 나인이 민지의 모습을 하고 사무실 안과 밖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랄라는 하루종일 파티션 아래 몸을 숨기고 파티션 너머의 세계를 힐끗거리며 좌우 전방을 살폈다. 산책과 식사와 같은 간략한 활동이 담긴 민지의 메시지가 오전과 오후 한차례씩 카톡대화방에 올라왔고 그 외 3인은 카톡방 안에서 아무일 없는 듯 간략하게 대화를 주고 받았을 뿐 그 외 다른 장소에서는 내내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인의 앞모습을 마주한 건 그 일이 있고 꼬박 이틀을 보낸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물 속을 걷는 것처럼 계속 뒤로 밀려나며 걷는 나인이 전화기를 붙잡고 사무실 밖을 나서는 걸 목격한 랄라가 무엇에 홀린듯이 방패막을 거두고 구름 아래 분홍색 빛 속으로 빨려가던 그 날처럼 나인의 뒷모습을 쫓았다. 건물 밖으로 나가 느리게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아봤을 때 꼭 여름의 어느 날처럼 쨍쨍하게 밝은 5월의 볕 아래에 온 몸을 드러내놓고 앉은 나인이 보였다. 그녀를 지켜보던 랄라가 수화기를 내려놓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와 같은 모습으로 쪼그려앉아 그녀의 어깨죽지에 손을 사뿐히 올렸다.


“나인. 무슨 일이에요?”


나인의 얼굴이 천천히 랄라쪽으로 돌아와섰다. 그녀의 얼굴이 텅 비었다.


커버사진: UnsplashAnne Nygård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3부(three)에 속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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