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마지막> #파트 ①
도로 이면 미음자 구조의 한옥을 개조한 양식점은 출입구 옆 긴 주방을 옆으로 끼고 중정을 지나 홀로 들어서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기존 한옥식 창호 전체를 유리창으로 바꾸고 동서양의 고가구와 장식품들로 꾸며진 이 식당은 국적불명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입구부터 중정의 돌 징검다리를 둘러 손님을 지나는 길을 따라 걸린 알전구 때문인지 야외는 내내 은은한 노란 빛을 띠었다. 음식점은 금요일 저녁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한산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5백 명대로 급증하면서 시가 사회적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천만 시민 긴급 멈춤 기간’을 선포한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른 저녁이었던 까닭인지 홀에는 한 커플만이 설레는 얼굴로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보고 긴가민가 했는데 리뷰가 좋아서 잡아봤어요. 어때요?”
랄라가 테이블을 두고 맞은편에 서서 두리번거리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피며 다소 긴장되는지 얼어붙은 듯 동작을 멈춘 채 물었다.
“나는 좋아. 한번 와 본 것도 같기도 하고”
한동안 격조하여 지내온 탓에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진 나인은 몸을 돌려 천장부터 홀 내부를 살펴보는 행위만으로도 살짝 환기되는 기분을 느꼈다. 나인은 한동안 관계를 멀리하며 지내왔다. 여기저기 해체된 인간들이 널려있는 것 같았다. 살아온 궤적과 질감, 기저의 경험과 사건, 삶의 배경과 근거, 관계성과 밀도와 맥락들을 탈색한 채 어떤 이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사직 후 10개월 동안은 S시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의 본가에서 엄마의 밭일을 도우며 지냈고 최근 1년여간은 프리랜서로 선배들의 요청으로 작은 용역을 받아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므로 문주선배와는 3년만이었고 랄라는 시민사회 트렌드리포트 발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업무차 최근 재회했다.
“좀 이른 송년회 하는 것 같고 좋다 랄라”
문주선배가 두 사람의 머뭇거림을 눈치채지 못하고 설레는듯이 몸을 흔들며 말했다. 세 사람이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앉자 매니저가 사람 수에 맞춰 메뉴판을 놓고 떠났다.
“오늘은 내가 살테니 먹고 싶은 거 골라 봐. 내 것까지”
“우와!”
랄라와 나인이 각자의 메뉴판을 열어보는 사이 문주선배가 다정하게 말했다. 이윽고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속닥거리며 메뉴를 골랐다. 메뉴고르는 일에도 별 일 인 것처럼 웃음이 나던 두 사람은 샐러드와 파스타, 스테이크, 사이드 메뉴에 있던 토마토스프까지 각 카테고리별로 하나씩 골고루 주문을 넣은 후 랄라가 문주선배에게 와인 한 병을 시켜 마셔도 되는지 야무지게 물어보았지만 메뉴판을 펼쳐 와인 가격을 보더니 결국 잔 와인을 한 잔씩 시키는 것으로 메뉴선정은 종결되었다. 매니저에게 음식을 주문할 때쯤 또 한 커플이 홀로 들어왔다. 그래도 일하는 사람이 손님보다 여전히 더 많아보였다.
“내년도 사업계획은 얼추 마무리되신거죠?”
“뭐 우리야 사장님 처분대로 가는거니까”
랄라가 능란하게 먼저 문주선배의 근황을 물었다. 문주선배는 청와대 행정관직에서 자리를 옮겨 현재는 어느 중앙부처 비서실에 몸담고 있었고 예전과 다름 없이 직장은 공장으로 그곳의 최고결정권자는 사장님으로 칭하고 있었다.
“랄라네 그 동네는 여전하고? 이 질문이 맞는거지?”
문주선배가 범상한 얼굴로 랄라의 근황을 묻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사람처럼 등을 뒤로 기대며 나인 쪽을 쳐다보았다.
“여긴 여전하죠. 사건사고가 없는 날이 없어요. 별 일 없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아나. 얼마 전에는 노조 간부들이 팬데믹이라는 이 엄중한 시기에 업무공간에서 음주하다 걸리지를 않나 아주 난리도 아니죠”
랄라가 비일비재한 사건 중 하나를 꺼내들며 무던하게 말을 했다. 기브앤테이크처럼 두 사람이 근황을 서로 주고 받는 와중에 식전빵 하나를 들어 발사믹식초가 종지 바닥 아래 넓게 깔려있는 올리브오일을 찍다 말고 나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랄라를 쳐다봤다. 나머지 두 사람의 얼굴이 자신에게로 집중되자 랄라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을 들어 살짝 흔들어보이더니 식전빵 하나를 들어 자신의 앞접시로 옮겨두었다.
“이제 이런 일은 우습네. 실무율이란 게 내게 적용되고 있나봐요”
랄라는 앞접시에 놓인 식전빵을 두 손으로 잡고 수제비 떼듯 신중하게 한 입 크기로 떼어내 올리브오일을 뚝뚝 두번 찍고는 얼른 입 안으로 쏙 넣었다. 나인이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손에 든 식전빵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식전빵이 입 안에서 쫀득거렸다. 잠시 낯빛이 어두워진 문주선배가 화제를 전환했다.
“바뀐 센터장은 어때?”
“공공기관 경력이 있는 냥반이라 그런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아는 것 같아요. 별 의지가 안보이죠. 나야뭐. 따박따박 월급 나오다 못해 매년 조금씩 오르고 일은 손에 익고 지긋지긋한 관계도 이제 별스럽지 않고 월급루팡 하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만 참으면 신수 편해요. 그 꼴뵈기 싫던 노규태도 시청 본관으로 떠나고”
“우리 랄라 잘 버티고 있네. 멋지다!”
랄라가 입을 오물거리며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자 가만히 팔짱을 끼고 듣고 있던 문주선배가 씁쓸한 얼굴로 그녀를 다독였다.
“그럼 2020년도 나쁘지 않았네!”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인이 식전빵 하나를 해치우고 어느덧 뒤로 물러나 저쪽에서 이쪽으로 여러개의 흰 접시들을 두 손과 팔뚝 위에 올려두고 다가오는 매니저를 예사롭게 지켜보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웃었다. 올해가 그저 나쁘지 않았다고 읊조린 것을 두고 나인은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백의 시간이나 메울 요량으로 가볍게 흘리듯 한 말도 아니었다. 그 격려의 주 대상이 자신인지 타인인지 헷갈렸지만 나인은 오랜 빚을 청산하는 기분으로 고단했던 지난 시간들을 잘 지내왔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자신도 그런 말을 건넬 자격이 충분하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나인은 이 관계가 오늘이 끝인 것인지 시작인 것인지를 생각하다 말았다. 이 모든 나쁜 결과들 중에도 낙관이란 걸 해보자는 위로만은 해보고 있었다.
나인은 매번 돌이켜 생각해도 창의테크밸리에서의 기억은 2017년 그 해 12월에서 멈춰 섰다. 그 이듬해 7월까지 두 개의 계절을 그곳에서 더 보냈고 5월에 대형사고를 겪고도 그곳에서의 기억은 언제나 그랬다. 사직의 결정적인 이유라면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었던 조직 관계에 대한 절망 때문이라기 보다 차라리 사직 8개월 전 그 일들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해 12월도 사업결산과 동시에 이듬해 사업계획을 정돈하느라 여념이 없다. 연말로 들어서 창의테크밸리에 입주한 중간지원기관과 창의센터의 사업이 마무리될 때면 단지의 유동인구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므로 그 해 겨울은 어느 해 겨울과 다르지 않다. 이곳의 겨울은 어느 쇠락한 지역의 버려진 놀이공원처럼 허울만 남아 짧디 짧았던 어느 날 영광의 흔적들이 이곳을 더욱 욕보이게 할 뿐이었다. 정리되는 건 사업만이 아니었다. 새해의 인력운용계획에 따라 사람들도 이때 정리되었다. 눈엣가시 같은 나인이나 민지가 이 시기 정리되지 않은 건 그래도 정규직이었기 때문일 거였다. 창의테크밸리유니온이 정규직 티오 여덟 자리를 시로부터 확보해냈다고 대대적으로 떠들어댄 것도 그 12월이었다. 노조 설립 허가가 11월 중순께였으니 노조 설립 한 달 만에 쾌거였다. 나인과 민지는 이것이 노조가 이뤄낸 성과로 포장되는지 한참을 이해하지 못했다. 비단 노조가 개입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8명의 정규직 티오가 발생했다는 건 비정규인력이 준다는 것이었고 22명의 계약직 직원 중 3분의 2만이 정규든 비정규든의 형태로 계약을 갱신하고 나머지는 모두 그만 두어야 한다는 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노조에서 비정규직 직원을 대상으로 정규직 전환 의사를 묻고 다닌다는 말이 흉흉히 나돌았다. 정규직 전환 인력 선정은 온전히 노조 집행부의 몫이었다. 그들은 별도의 기준 마련도 없이 전환의사서만 들고 다니며 꼭 선착순으로 손을 든 사람에게 정규직 전환을 보장해줄 것처럼 돌아당겼다. 당장 12월31일자로 계약이 종료되는 직원이 22명이나 되었으므로 빠르게 결정을 요한다는 것이 모든 것에 앞섰다. 그 결과, 한정된 자리 누군가의 배제를 내포한 거수 방식에 가타부타 의사를 밝힐 수 없었던 비정규직 직원 7명은 결국 계약 연장도 거부하고 센터를 그만두는 결정을 했다. 거기엔 율무와 공동행동을 조용히 지지했던 팀원급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일종의 시위와도 같은 이들의 사직은 그저 아이러니하게도 노사 모두에게 편리하게 일이 정리되는 수순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을 위한 별도의 공식 송별행사가 없었던 것은 비단 같은 날 함께 사직한 센터장 C 때문만은 아닐 거였다. 센터장 C는 센터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자신과 관련된 사진과 글 하나 흔적 없이 지워달라는 것과 사직 직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위해 자신의 입맛대로 만든 인사위원회 유효기간을 내년 2월까지 하겠다는 것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겼다. 그 해 마지막날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던 사람은 사직을 위해 인수인계서를 작성해야 했던 7명과 그들과 함께 사무실에 남아있던 나인이었다. 그녀의 동료들이 기억 속 배경 안에 모두 존재하는 때는 그때까지였다. 그 해 마지막날 나인은 그들이 노닥거리며 인수인계서를 작성하는 동안 사회생활을 시작 후 처음으로 자신이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일말의 소명의식과 할 수 있는 한의 실천과 가끔씩 어디선가 튀어나오던 그러나 그다지 쓸만 하지 않은 의지와 타인에 대한 관심, 오지랖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과 티클 같은 양심과 남의 일도 가끔 내 일 같이 느껴지는 연대의식 따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오로지 무력만이 무력함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명징했다. 그 해 겨울이 어느 겨울과 다르지 않을 터였고 또 언제나 그렇듯 유달리 춥게 느껴졌다.
커버사진: Unsplash의 Jack Stapleton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3부(three)에 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