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빈조 Mar 14. 2024

표류

소설 <PART-two> #무력⑤

나인은 방 한 칸에 부엌을 겸용으로 쓰는 거실과 한 개의 방으로 구성된 11평 남짓한 자신의 자취방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고서야 발목통증을 느꼈다. 평소라면 신발을 내버리고 동시에 바지 지퍼를 내리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느라 정신이 쏙 뺐겠지만 이날은 그러지 못했다. 무릎이 무너지듯 앞으로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나인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반쯤 일어나다가 그대로 거실로 연결되는 현관 턱에 주저앉았고 말았다. 그리고 양발을 차례차례 흔들어대며 신발을 한짝씩 벗어 던졌다. 나인은 무릎을 꿇고 양 손을 이용해 방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으아아 곡소리를 내며 그대로 매트리스에 몸을 뉘였다. 그제야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돌아서 가던 랄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마 뒷모습은 보지 못하고 먼저 뒤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녁을 같이 먹을 걸 그랬나 하는 뒤늦은 후회는 염치상 해보는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 전에 집 앞 세탁소에 맡겨달라 부탁한 택배를 받아와야 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몸은 바윗돌처럼 무거웠다. 마음의 의지 따위론 손끝 하나도 들썩이지 못했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얼마 후 눈을 떴을 때 침대 맞은 편 벽에 붙은 동그란 시계가 희미하게 8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벌써 아침인가 생각 했지만 나인은 여전히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몸은 침대에 달라붙어 도통 움직일줄 몰랐다. 실 눈을 뜨고 눈 알만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집안은 어둑했다. 커튼을 치지 않은 창에서 옆 집에서 새어나오는 빛나는 전구의 노란빛이 겹쳐보였다. 살짝 열린 창문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났다. 앞집에서 전기밥솥에서 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나인은 꿈 속에서 엄마가 해준 고추장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아빠의 표정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왜 밥상머리에 그러고 앉았어 라고 타박을 하고는 아랑곳 없이 나인은 흰 쌀 밥에 고구마줄기김치를 올려 개걸스럽게 먹으며 쩝쩝 소리를 냈다. 부모님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고추장찌개에서 두부를 건져 먹다 나인은 혀를 대였다. 손에서 놓친 숟가락에서 하얀 밥풀이 튀었다. 인상을 구기며 나인은 에이씨 하고 성질을 부렸다. 나인은 바닥에 떨어진 숟가락을 집어들다가 손에 묻은 밥풀을 곧장 입으로 가져가 떼어먹었다. 엄마와 아빠에게서는 여전히 별다른 기척이 없었다. 나인은 무표정했던 엄마의 표정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었을까. 몸을 일으켜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그뿐이었다. 의식은 어지럽게 표류하다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나인은 다시 혼자였다. 어지럽혀진 방 안의 수납장을 열고 무언가를 다급하게 찾고 있었다. 책을 하나씩 꺼내 바닥에 툭툭 던져두었다. 책을 다 꺼내고 나니 이번에는 크고 작은 박스들이 보였다. 선물꾸러미 같지 않았다. 나인은 제일 위에 있는 박스 하나를 두 손으로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박스를 흔들어댔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박스 상자를 열어서는 여기저기 쏟아 부었다. 그리고 다른 상자를 들어 똑같이 쏟아 부었다. 그렇게 몇 박스 째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무엇이 쏟아져내리는지 알 수 없었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와중에 나인은 엄마~ 엄마~ 내 학생증 어딨지? 엄마 못봤어? 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에게서 대꾸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드디어 수납장이 텅 비었다. 내다던진 박스들로 어지러져 있을 줄 알았던 방바닥은 까맸다. 꼭 검은 안개로 뒤덮힌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보이지 않아서. 나인은 고개를 돌려 수납장 안으로 얼굴을 파묻어보았다. 수납장은 나인의 어깨 너비만했다. 수납장 안은 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다. 나인은 이리저리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이제 나인은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하던대로 찾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나인은 속이 너무 답답했다. 주먹으로 가슴을 콩콩 치고 싶어졌다. 찾고 있는 물건이 어디에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꼭 있어야 했다. 낙담한 나인이 수납장 안에서 무언가를 찾는 시도를 그만두고 수납장 밖으로 얼굴을 거둬 들이려 할 때 저 안쪽에서 삐이이익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려왔다. 나인은 모든 시도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저 어둠의 안쪽을 응시했다. 응시. 응시. 어둠에도 층이 있었다. 나인이 손을 뻗었다. 어둠의 층을 따라 움직이던 손이 전혀 다른 농도의 어둠의 색을 쭉 하고 밀어냈다. 나인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얇게 뜬 눈 안으로 창에 동그란 빛이 둥실 떠있는 것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이 바로 보이는 1.5층 자취방의 밤 풍경, 낯익은 광경이다. 특별히 안도 하지 않았다. 나인은 가로등 불빛이 거슬리지 않았다. 그래서 커튼은 늘 젖혀진 채였다. 삼겹살파티는 끝난 모양이었다. 대신 티비 스피커에서 음악소리 비슷한 것이 흘러 들어왔다. 누군가 도망치고 있는 모양이군. 긴박감이 넘쳤다. 그 사이 밖에서 누군가 통화를 하며 지나갔다. 주소를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닥이 딱딱한 플라스틱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도 들렸다. 연이어 어느 집 반려견이 컹컹하고 화답하듯 짖어댔다. 몇 시쯤 되었을까. 나인은 맞은 편 벽시계를 보려고 눈을 꿈틀거렸다. 눈꺼풀이 할머니집 솜이불처럼 무거웠다. 가슴이 답답해 거둬내려해도 거둬지지 않던 할머니네집 그 무거운 솜이불처럼 아무리 떠보려도 해도 눈 앞이 시원히 열리지 않았다. 안구의 신경조직은 온통 시계로 향했지만 시곗바늘이 선명히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눈 앞은 자꾸만 흐릿해졌다.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인은 물속에 있다. 온 몸이 물속에 빠져있는 상태다. 나인은 허우적거리지 않았다. 숨 쉬는데 별다른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 떠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물속은 처음이라 어느 물 속 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한 치 앞까지 눈 앞이 밝았다. 바다 생태계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보던 심연 속도 꼭 이런 생김과 밝기가 아니었던가 했지만 그건 방송용 조명을 밝혔기 때문이잖아 하고 나인은 직전 자신의 생각을 뭉개버렸다. 부유하는 것 하나 없이 물도 너무 맑았다. 저 쪽으로 좀만 헤엄을 치면 곧 유리면이 닿을 것 같이 좁은 수족관 같기도 했다. 자신이 왜 수족관에 들어와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또 굳이 손을 뻗어 미지의 공간 저쪽의 표면을 알고 싶지 않았다. 저 먼 곳까지 가보고 싶지 않았다. 이미 이 자체로 미지의 영역같았다. 나인은 한참을 그렇게 떠있었다. 자유로움과 평화로움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떠있는 것, 그게 다 였다. 다만 머리 위에서 출렁임이 느껴졌을 때 고개를 들었을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보았을 때 물 밖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웅성웅성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는 구체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소란스럽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상이 찌푸려 지지 않았다. 사람들에게서 자신 만큼이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손가락질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웅성거리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뿐인 것처럼 보였다. 나인은 그들의 웅성거림으로부터 안정을 느꼈다. 자신의 심장박동과 유사한 파동을 느꼈다. 저들이 왜 이쪽을 보고 있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나인은 저들 중 혹 내가 아는 사람도 있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 때 저 위에서 불쑥 아는 얼굴이 떠올랐다. 감정은 출렁이지 않았다. 식별은 어려웠지만 분명 아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애쓰지 않았다. 이곳과 저곳 모두 미지의 공간, 그냥 그런 채였다. 머리 속으로 보고싶은 사람을 떠올려 보면 저 위에 그 얼굴이 떠오를 것 같았다. 보고싶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 나인은 처음으로 애를 썼다. 그럼에도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을 하고 또 해도 마찬가지 였다. 할수록 더욱 머리 속이 텅 비어가는 것 같았다. 나인의 몸이 휘청하고 균형을 잃었다.  


나인은 어느 새 집 안에서 다림질을 하고 있다. 짐이랄 게 없는 휑뎅그레한 검은 방이었다. 나인은 둘러보지 않았지만 자신의 자취방인가보다 했다. 어디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나인은 무언가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하얀 셔츠의 어깨 선에 꽂혀있다. 나인의 감각은 달랑 10센치 시신경 안에 갇혔다. 눈 앞에 보이는 건 5센치 가량의 셔츠 어깨 끝선과 다리미의 뾰족한 끝 날이 전부다. 나인은 셔츠 어깨선의 날을 세우기 위해 모든 신경을 세우고 있었다. 그 덕에 나인의 어깨는 움츠려들대로 움츠려들었다. 눈과 물체간 사이는 최대한으로 좁혀져있다. 이따금씩 나인은 다리미의 버튼을 눌러 쉭쉭하고 수증기를 분출한다. 그때 눈 앞이 잠시 뿌애지며 모든 신경을 집어삼킨다. 한동안 눈 앞이 뿌옇다. 그래도 나인은 자세를 고쳐 앉지 않는다. 눈 앞이 따뜻해지고 눈에서 물방울이 맺히는 걸 느낀다. 수증기가 걷히고 눈 앞으로 천천히 새하얀 셔츠의 어깨 끝선과 다리미의 뾰족한 끝날이 차례로 들어온다. 나인은 천천히 어깨 선을 따라 다리미 날을 꾹 누르듯 밀어올린다. 열중한다기 보다 맹렬하게 라는 말이 더 맞는 말이다. 나인은 맹렬하게 다림질을 하고 있다. 그때 잠깐 나인은 이렇게 다른 일을 했더라면 지금쯤 뭐라도 되었겠다는 허망한 생각을 한다. 별로 웃기지 않은데도 웃음이 나왔다. 얼마만큼이나 이 행동을 반복해야 자신이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다만 만족할 때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할 생각이었다. 다시 나인은 어깨 선을 따라 다리미 날을 꾹 누르며 천천히 밀어올리고 내린다. 버튼을 눌러 쉭쉭하고 수증기를 분출한다. 안구가 따뜻해지는 걸 느끼고 눈에 물방울이 맺혔다. 눈 앞이 뿌옇게 시야를 가렸다. 그래도 손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육감적으로 이 행동을 쉰 번은 반복해야 할 것이라고 느껴졌다. 마음이 급해졌다. 오른손에 힘을 주어 밀어올리고 내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급한 마음에 쉭쉭하고 때이른 수증기를 내뿜는다. 눈 앞이 다시 뿌애졌다. 근데 이 셔츠는 누구의 것이지. 불현듯 이 셔츠의 주인이 자신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인은 셔츠의 주인을 떠올리기 위해 처음으로 시선을 대상에서 거둬들였다. 내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 나인은 처음으로 고개도 들었다. 움츠러든 어깨가 펴지며 몸이 선다. 시야가 공간 전체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어디인지 금방 알아채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현관에 어지럽게 놓여있는 검은색 로퍼구두였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가 쭈그려앉고는 한참을 혀를 차다 말한다.


“신발이 달아날라고 하네!”          


커버사진: UnsplashDaniele Franchi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소설 <PART - one>  읽어보기

이전 12화 편의점 앞 파라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