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빈조 Mar 11. 2024

편의점 앞 파라솔

소설 <PART-two> # 무력 ④

랄라는 조금 전 눈 앞에서 사라진 나인의 얼굴을 지우려 노력했다. 한번도 누구에게서도 본 적 없는 황망한 얼굴. 영영 본 적 없는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놀란 마음으로 허둥거렸다. 가슴에서 주먹만한 심장 한덩어리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랄라는 골목 끝에서부터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나인을 진즉에 보고 있었다. 무게를 잃은 그녀의 몸이 종잇장처럼 흔들거렸다. 청명하게 개인 파란 하늘 아래 주위를 환기하는 따뜻한 봄 바람 속에서 그녀는 위태롭게 걷고 있었다.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그녀와 대비되는 청춘의 풋내가 골목 가득 피어올랐다. 왠일인지 눈 앞이 총천연색이야 싶도록 마술샐로판지로 눈 앞을 살짝 가려놓은 듯한, 이 봄날의 낮 풍경은 도주로 없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녀에게 퍽 잔인한 풍경이 되었다. 그 때 그녀의 몸이 기우뚱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한쪽 발목이 접혔다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튕겨오른 자신의 오른 발목을 살피지도 않고 또다시 걷고 있었다. 저 동작을 몇번이나 반복중인 것인지 랄라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골목의 중간쯤 다달았을 때 희미하던 그녀의 형태가 조금 또렷이 보였고 그때 눈에 들어온 건 그녀의 입이었다. 그녀는 누군가 통화하듯 연신 입을 움직였다. 그리곤 일순간 정지상태로 머뭇거리는 게 보였다. 어디에 두고온 물건이라도 생각난 사람처럼 뒤돌아가려다 다시 멈칫 하는 동작을 두어번,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골목 건너로 가로질러 다시 걷는 것까지 보고서야 랄라는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를 맞이할 채비를 하는 것이지만 고개를 숙인 랄라는 이내 이 날 이 곳에서 나인을 기다리고 있던 것을 후회하고 말았다. 자연스러운 것은 둘째고 경찰서에 사망한 동료의 생활과 그 난맥상을 진술하고 돌아온 사람을 직면할 때 불사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채비도 없이 가까이 다다른 나인의 얼굴을 맞닥들이고 랄라는 그만 놀라 온몸이 굳었다. 그건 흡사 공포에 대한 반사적 감각이었다. 나인의 얼굴은 이완된 근육으로 이뤄진 얼굴 피부조직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신경조직에 겨우 달라붙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인이 음료를 사러가겠다고 말할 때는 오른쪽 뺨에서 살짝 경련이 일었다. 몸의 동작은 마디마디 끊어져 분절적으로 이루어졌다. 랄라는 의지와 다르게 말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술만 달싹거렸다. 딸랑하고 편의점의 문이 열리고 그녀가 랄라의 시선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랄라는 끝내 지켜보지 못했다. 종의 잔 울림이 공기 중에 진동했다. 이 진동이 끝나기 전에 도망갈 수 있을까. 랄라는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치고 싶은 욕구를 짓누르고 앉아있다. 누군가의 텅 빈 얼굴을 볼 자격이 자신에게 없었다.


업무상 재해에 따른 휴가로 처리해주겠다는 경영지원실장의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인은 개인 연차를 사용해 조용히 다녀오겠다고 했다. 왜 그랬냐고 굳이 묻는 말에 나인은 그냥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 끝에 집 앞 편의점에서 언제나처럼 기다리겠노라고 힘주어 말해두고 앉아 있는 참이었다. 달라진 공기 속 타인 보다 낯선 얼굴로 그녀를 마주하기 전까지 랄라는 그녀에게도, 자신에게도 각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때 다시 한번 둔탁한 두 개의 금속체가 부딪히며 공기 중으로 공명했다. 그리고 조금 달라진 얼굴로 나인이 앞에 서서 편의점에서 사온 물건들을 비닐봉지에서 꺼내 하나씩 테이블 위로 올려두었다. 하얀색, 노란색, 주황색, 초록색 물체들이 하나씩 꺼내져나왔다. 나인이 물체를 하나씩 꺼내놓을 때마다 테이블이 흔들거렸다.    

                                   

“맥주는 하나만 샀어요?”

“아. 그랬네”             


그게 끝이었다. 나인은 별다른 조치 없이 플라스틱 의자를 바닥에 드르륵 뒤로 끌어 빼고는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랄라는 그러려니 했다. 나인은 자리에 앉아 자기 몸 앞에 부풀린 채 널부러진 비닐봉지를 짚어 딱지 모양으로 정성스레 접기 시작했다. 랄라는 나인이 자신이 마실 것을 먼저 집을 때까지 그대로 있을 예정이었다. 랄라는 자신의 손에 들린 진청색 전자담배 릴에서 담배스틱을 빼내어 반쯤 비워진 담배종이곽에 넣었다. 진청색 전자담배는 하얀색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오래 기다렸어요?”


나인이 다 접은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가만히 올려놓으며 말했다.


“기다릴 수 있을만큼 딱 그만큼이었어요”   


아니요 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었다. 랄라는 그러지 않았다. 랄라는 나인의 물음에 답하며 지금은 그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돌고 돌아 고비용의 말을 하리라 하고 랄라는 마음을 다졌다. 왜 왔느냐고 타박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덜 무안했다.


“발목은 괜찮아요?”


이번엔 랄라가 물었다.


“발목?”


나인이 뜻밖이라는 듯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 잠시 골똘해진 얼굴을 했다.


“좀 시큰한 것도 같고. 글쎄”


나인은 몸을 뒤로 젖히더니 테이블 밑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돌아오며 말했다. 그리고 별스럽지 않다는 듯 금새 신경을 발목으로부터 거둬들였다. 나인은 테이블 위 주황색 캔음료를 집어들어 딴 후 그대로 테이블 위에 두었다. 랄라는 하얀색 맥주캔을 집어들어 따고는 입으로 바로 갖다대고 맥주 두모금을 들이켰다. 입 안에 청량감이 돌았다. 랄라는 차가운 맥주캔에서 입을 떼지 않고 곧바로 다시 한모금 했다. 이번엔 안구 깊숙한 곳까지 시원한 기운이 올라왔다.


“나인 한모금 해요. 오늘따라 맥주가 너무 개운하다!”

랄라는 곧바로 멸치와 땅콩이 든 노란색 스낵봉지를 들어 옆구리를 무심하게 뜯었다. 편의점 로고가 가운데 그려진 티슈 위에 내용물을 흔들어 반쯤 쏟았다. 스낵봉지는 티슈 위에 언제라도 더 부어질 자세로 놓였다. 나인이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랄라가 가운데로 밀어놓은 맥주캔을 집어들어 조심스럽게 한모금을 하곤 다시 랄라에게로 밀어두었다.


“음~ 랄라 말이 맞네”


나인의 얼굴에서 잠시 산뜻함이 묻어났다. 나인은 랄라가 부어놓은 스낵에서 반달 손톱 모양의 멸치 하나를 집어 들어 입에 던져 넣었다. 랄라는 그때 검지 손톱으로 자신의 얼굴 가장 여린 살부분을 살짝 그어보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대신 랄라도 멸치 하나를 집어들어 입안에 넣고는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보통 때 같으면 여백으로 느낄, 그러나 명백한 공백이었다.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밥 맥여서 들여보내고 싶은데 나인이 집에 얼른 들어가 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제안을 안하고 있는 거에요”

랄라는 혹여 나인이 같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하면 그럴 생각이었다.  

                 

“알지. 미안”

“저는 이 맥주 한캔만 마시고 갈게요”


나인이 짧게 랄라의 제안을 거절했고 랄라는 오래 붙잡아 두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랄라는 종이곽에서 새 담배스틱을 꺼내 궐련형 전자담배 홀에 끼워넣었다. 랄라는 나인의 답신을 듣고 담배 한대만 더 태우고 갈 생각을 했다. 봄바람이 랄라의 뒤에서 불었다. 미용실 갈 시간을 놓쳐 기른 머리를 겨우 묶어 드러난 목으로 따뜻한 바람이 닿았다. 랄라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입에 대기 전에 잠시 바람을 느꼈다. 어떤 충동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그보다 담배연기가 나인에게 흘러가지 않을까 바람의 방향을 느껴보는 것이었다.    


“랄라”

그때 나인이 랄라를 나지막히 불렀다. 눈이 감기던 랄라의 눈이 뜨였다. 랄라는 나인의 이 부름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다시 한번 네 손가락의 손톱 끝으로 허벅다리 위쪽을 빨간 자국이 나도록 긁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왕이면 막 깍은 손톱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어제 나한테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어봤잖아요. 랄라는 그냥 가만히 있을걸 하고. 자주 후회 안 한다고”

“제가.. 그랬나요….?”    


랄라는 어제의 일이었지만 한 10년쯤 일처럼 까마득했다. 어제부로 시간은 종국의 정지상태를 향해 흐르는 것 같았다. 민지의 엄마로부터 나인이 민지의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점심시간 내내 야외벤치에 기대 쭈그려앉아 있었다. 왜인지 눈물이 나지 않던 날이다. 솔잎의 알싸한 향이 나는 싱그러운 봄날이었다. 다리가 저려왔고 털썩 흙바닥에 주저앉아서도 두 사람은 꽤 긴 시간을 흘려보냈다. 옷이 더러워질 것 따위 고려하지 않고 그렇게 흙바닥에 앉아본 것이 얼마만인지 몰랐다. 두 사람은 보기에 따라 계절의 은총을 온몸으로 받아 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주저앉아 얼마가 지났을까 랄라는 자주 후회했다는 고백의 말을 꺼냈다. 그렇게 재회한 후 두 사람 사이에 처음 공명한 말이었다. 공동행동 시작할 때부터 아니 그 전에 율무에게 제안을 받을 때부터 흔쾌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고백이었다. 그리고 나인에게 후회한 적 없느냐고 돌아보며 물었을 때 랄라는 당췌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나인의 옆얼굴을 보고 그 어느 때보다 깊은 후회를 했다. 이 결말의 당위를 우리에게서 찾는 것 같아서였다. 나인은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 긴 침묵 속에 두 사람은 한참을 있었다.


“나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거든. 그냥 앞으로만 가고 싶었어. 엄마처럼 맨날 한스러워 하면서 사는 거 싫잖아. 난 다르게 살고 싶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마음 먹고 그래 까짓거 한번 뒤돌아 가보자 하고 복기를 하는데. 그러면서 알았어. 내가 얼마나 후회로 가득한 사람인지. 40평생 똘똘 후회로 가득하더라. 그 중에서도 뭐가 제일 한스러웠는지 알아요?”


랄라의 머리가 진동했다. 손톱 끝이 덜덜 떨렸다. 아직 한모금도 태우지 못한 전자담배 휠이 랄라의 손 안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갑자기 어디서 찬 바람이라도 부는 것인지 랄라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저항했다. 손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손바닥을 펴 짙은 청색의 전자담배 휠을 내려다보았다. 몸에서 물이 뚝뚝하고 떨어지고 있었다. 랄라는 숨이 턱하고 막혔다. 랄라는 자신의 의자 아래를 살폈다. 랄라는 다시 날 바닥으로 밀어넣지마 라고 주문을 외우듯 조용히 읊조렸다.  


“나 자신도 지키지 못하게 무력한 거”     


나인은 랄라의 딴짓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젖은 교복을 입고 앉은 나인의 눈 앞에 욕조 안에서 솟아 나온 랄라가 흠뻑 젖어 헐떡이는 것처럼 앉아있었다.     


커버사진: UnsplashAndrea De Santis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 소설 <PART - one>  읽어보기

이전 11화 참고인 조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