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two> #무력 ③
랄라는 스스로 지정한 자리에 앉아있었다. 플라스틱 의자에 깊숙하게 앉아 반쯤 접힌 모습을 한 그녀의 전신이 나인의 눈에 바로 들어왔다. 랄라 앞으로 진회색의 구형 SUV 차량 한 대가 느리게 지나갔다. 썬팅이 안된 차창 너머 랄라는 아랑곳없이 주먹쥔 왼손을 입으로 연신 가져다댔다. 전자담배를 태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전자 릴을 손에 꽉 차게 틀어쥐고 담배액상을 태웠다. 다시 랄라의 온 몸이 가릴 것 없이 훤히 드러나자 핸드폰 액정을 위로 천천히 쓸어올리는 그녀의 오른손이 함께 보였다. 그녀는 이 두가지 동작을 몇번째 하고 있는 것일까. 나인은 도통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인은 자신이 예상된 시간보다 얼마나 지체한 것인지 시계를 보고 확인하지 않았다. 랄라는 이 동네 가장 비싼 목에 앉아있었다. 웃돈을 주고산 인스턴트 커피 한 컵을 앞에 두고서.
나인은 창의테크밸리에서 지하철로 세정거장 거리에 있는 S시의 최북측 빌라 밀집 지역에 살고 있었다. 편의점은 동네 오거리 코너에 위치해있었다. 어느 곳으로 와도 통하는 길목, 이 동네 최고 명당자리였다. 그래서 24시간 동네를 밝히는 등대 같은 역할을 했다. 나인은 가끔 야심한 시각이면 골목이 꼭 일렁이는 밤바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멀리서 이 편의점을 보면 집에 거의다 왔다는 생각을 했다. 나인 역시 편의점 앞을 늘상 지나쳐갔다. 언젠가부터 나인은 간편식이나 간식거리 등을 사갈때면 ‘천만원짜리’라는 생각을 했다. 한 끼나 대충 떼우려고 하는 행위들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는데, 편의점의 월세값을 알고난 후 부터였다. 우연과 필연을 거쳐 각인된 효과였다. 출퇴근길인 버스정류장에서 오거리로 향하는 골목길을 지나다 배달대행 지점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으로부터 들은 것이 첫번째 우연이었다. 이 동네에서 밀려나 조금더 외곽의 옆 동네로 가게를 옮긴 어느 사장님에게 하는 말을 지나가다 우연히 듣게 된 것인데 그 자리가 결국에는 1천만원까지 가드라는 말이었다. 거기서 끝이 였다면 뭐 그러려니 했을 것인데 나인은 그 뒤로 편의점 월세값에 대하여 한번 더 듣게 되었다. 그땐 나인이 직접 들은 것이었는데 나인이 이용하는 동네 미용실에서였다. 뿌리염색하러 들른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져주던 사장님이 나인에게 편의점 월세값에 대해 이런 동네에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기냐고 구시렁댄 것이었다. 에이 무슨 이 동네에 천만원짜리 월세가 있어요 라고 웃으며 받아쳤는데 그 말은 진심이었다. 하여간 이 동네 사장님들에게 편의점의 월세값은 큰 화젯거리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밀려나거나 밀려날 운명에 놓인 사장님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쯤으로 편의점 월세값을 불렸을런지도 몰랐다. 곧이곧대로 믿지는 못했지만 나인은 그래도 이 편의점을 지날 때면 자주 월 천만원짜리 편의점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편의점은 심지어 변변한 구획도 없이 차가 다니는 길가에 파라솔까지 두고 영업했다. 이 고비용의 월세값 때문인지 민원도 딱히 없는 모양이었다.
나인의 집으로부터 버스로 세정거장 거리에 혼자 살고 있는 랄라는 가끔 이 편의점 파라솔에서 나인과 맥주 몇 캔 까고 주점부리를 하며 그보다 가끔 주사를 부렸다. 랄라의 주사란 것은 웃음이 많아지고 평소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표현과 말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이 곳은 랄라에겐 비교적 잔소리를 덜 들으며 눈치껏 담배를 태울 동네에서 거의 유일의 장소였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자기 갈 길로 지나쳐가기 바쁜 곳. 적절히 사람구경하며 앉아있기 편하고 자리는 늘상 비어있는 편이었다. 인구통계학적 수치로 확인한 바 없지만 확실히 이 동네는 아이들이 별로 돌아다니지 않았다.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지역이라는 건 주말 정오쯤 동네 편의점이나 동네 식당만 가봐도 알 수 있었다. 혼자 나와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 많았다. 1인 남성 가구원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은 일부러 피해다니는 경계심 높은 1인 여성 가구원인 나인이 유일하게 마음 편히 이용하는 곳이 이 편의점이었고, 특히 랄라와 함께 일 때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 날 만큼은 랄라의 모습이 크게 다가올수록 나인은 그녀를 피해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포식자를 발견한 피식자처럼 상대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인은 랄라의 행동거지를 예의주시했다. 왼편의 골목에서 자동차 한 대가 2시 방향 골목으로 돌려나갈 때 3시 방향 골목으로 뛰어들어가 좌측 담벼락에 붙어 집으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지만 그 최선의 타이밍은 언제나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하는건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민지의 남동생이 혼자 가겠다는 걸 극구 이기고 쫓아 나온 민지의 엄마가 조서가 작성되는 내내 고개도 들지 못하고 얼굴을 두 다리에 파묻고 있었다는 말은 할 수나 있을까. 그래도 혼절을 하시진 않았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고. 이 말이 조금 위로가 될까. 말을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 어머니 하고 말을 시작하더라는. 그러니까 수사관이 아니라 나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고 접이식 간이의자에 겨우 중력을 이기고 앉은 민지엄마의 파르르 떠는 등에 대고 내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구나. 저기요 어머니. 민지에게 성폭력 피해가 있었어요. 작년 7월 무렵에요. 민지의 역량을 알아보고 중요 임무를 맡기고 기용했던 센터장이 가해자. 네. 센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죠. 뭐 풀기 어려운 이슈였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잖아요. 민지 일에 공감하고 재발방지를 요청하는 일. 여기에 각자의 이름을 걸고 함께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이 저 말고도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사람들의 의지와 열망을 모아 차근차근 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사과도 받고 가해자에게 적절한 징계도 내리도록 조직에 요청하는 그 일이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뭐. 근데 그러다가 징계위가 꾸려지기 직전에 가해자가 사직을 했지 뭐예요. 우리 모두 너무 충격이었죠. 물론 민지가 제일 힘들어겠지만요. 그리고 3개월이 안돼 글쎄 그 놈이 한국에서 가장 상층부에 자리한 권력기관. 어머니 어딘지 짐작 가시죠? 거기에 높은 자리로 지명을 받아서. 아 근데 어머니. 그 성폭력 사건이라는 게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그 정도로. 아니 어머니가 걱정하실 만하게 중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다시 돌아가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는 그런 말. 랄라 근데 그 말 말이야 중하고 안 중하고 뭐 이런 거 따지는 말 말이야 그거 참 우습더라는 말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어머니 민지가 그 때 참 힘들어했어요. 저희가 인권위에 재소도 하고 방도를 찾아보자 그러면서 여성단체도 만나고 물어물어 변호사도 만나보고 했는데요 어머니. 민지가 그 때 뭔가 많이 불안했나봐요. 저희도 모르게 몇군데 언론사 기자들에게 연락을 해 제보를 하고.. 그러다 기사가 터진거죠. 사실 소스가 좋잖아요. 자신의 성비위 의혹 덮으려고 했던 수석비서관의 행실이니 뭐니 시민사회 전체를 싸잡아서 그 동네 인사도 별거 없다느니 구멍 뚫린 인사검증 시스템이라느니 이런거요. 결국 그 가해자 라는 놈도 지명 한 달 만에 자진사퇴를 했는데 그 뒤에~ 시민사회운동한다면서 남 말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더 가관이었어요. 집단적으로 망상에들 사로잡혀서 민지가 무슨 적군에서 심은 논개쯤 되는 것 마냥 난리를 난리를. 어휴. 이게 무슨 시민사회운동진영에 대한 뭐 총공세라도 되는 것 마냥 난리들을 피우는데 어머니 그거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러니 걔가 살겠어요 누구라도 제 정신에 못살죠. 이거는 그. 잘난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적 타살. 그거라구요. 어머니도 들어보셨죠. 라고. 말이란 게 있잖아 하다보니 금새 남 일 같아지더란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그 말을 하는 동안 책상 너머 앞자리에서 다리를 덜덜 떨고 앉은 수사관을 쥐어박고 싶었다는 생각을 수차례. 아니 그보다 말이란 게 또 우습더라 랄라. 말을 하다보니 심드렁할 뿐인 수사관 보다 있잖아 민지한테 화가 그렇게 치밀어 오르는거야. 이 망할 년 지금 내 눈 앞에 네 년이 있었다면 말이야 내가 응. 너 내가 너의 뺨을 100번을 치고 또 칠거라는 생각을 했더란 말을. 그러니까. 이 망할 년. 이 망할 년. 이기적인 년. 동생 낳은 직후 몸 풀라고 눠있는 엄마가 꼭 죽는 줄 알고 두 눈이 시뻘게 지도록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는 네 년이 네 년이 죽어! 그 마음이 어떤지 아는 네 년이! 이 나쁜 년! 이기적인 년! 이 천벌을 받고 또 받을 년!
어느 새 나인은 그렇게 또 거친 말을 내뱉고 있었다. 어떻게 걸어나온지도 모르게 빠져나온 경찰서에서부터 나인은 그렇게 망자를 향한 저주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므로 무어라 할 말이 없다기 보다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는 말이 더 정확했을지도 몰랐다. 나인은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욕지기를 꿀럭꿀럭 삼키며 머리 속에 끝없이 펼쳐진 하얀 용지 가득 10포인트 글자로 빼곡하게 욕 무더기들을 쏟아내고 눌러담았다. 입 밖으로 나오지 마라 마라 하고 빌면서. 평소 같으면 최단거리를 서치해 버스로 이동하는 경로를 선택했겠지만 나인은 무작정 경찰서를 나서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20분을 걸었다. 지하철역에서 한정거장 이동 후 환승해 또 두정거장,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에서 내려서도 마을버스를 타야 했지만 그 역시 선택지에 없었다. 다시 걷기로 한 나인은 15분째 걸으면서도 머리 속으로 밀려드는 생각들을 끝내 떨쳐 내지 못했다. 이 모든 심리적 동인을 거스르며 집으로 돌아온 나인의 얼굴은 드디어 고통에 일그러졌다. 그리고 고역에 찌든 얼굴을 감출 겨를 없이 랄라를 맞닥들였다. 그래도 내가 아는 곳으로 왔다, 아는 사람 곁으로 왔다는 안도감 조차 없었다. 소태를 질겅질겅 씹는 것과 같은 고통이 여실하게 드러난 얼굴을 하고 그녀를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저 막막함이었다. 걷던 몸이 잠시 휘청댔다. 나인은 속도를 줄이고 최대한 몸에서 흔들림을 지우려 노력했다. 몸에 정신을 집중 하니 머리 속에 장 하나가 쿵 하고 닫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랄라의 몸에서 그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면 나인은 그대로 지나쳐 집으로 들어갔을지 몰랐다. 그러나 몸의 자세를 고쳐 않으며 동태를 살피던 랄라에게 나인은 그대로 들키고 말았다. 목표물이 다가오는 걸 확인한 랄라는 하던 모든 동작을 일시에 멈추고 몸을 앞으로 길게 뺐다. 나인은 어색하게 손을 들어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실망한 얼굴을 감췄다. 상실감도 함께 이길 바라며. 나인이 랄라에게 다다랐을 때에도 랄라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말을 먼저 꺼낸 쪽은 오히려 나인이었다.
“나도 음료 하나 마셔야겠다. 랄라 뭐 더 필요해요?”
랄라는 나인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인은 촐삭맞게 딸랑거리는 편의점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나인의 시야에서 랄라의 시선이 사라졌다. 그제야 몸이 뇌의 신호와 재접속되는 것 같았다. 나인은 편의점 두 벽면을 가득채운 음료냉장고 앞으로 가 서성거렸다. 눈 앞이 온통 색채로 가득했지만 어떤 것에도 매료되지 못했다. 얼마간의 방황 후 연두색 포도 알맹이가 그려진 캔음료에 시선이 꽂혔다. 기억은 곧바로 떠올랐다. 민지의 자취방에서 넘겨보았던 사진첩 속 한 장의 사진이었다. 기억 속 희미한 사진 한 장을 떠올리며 민지는 진정된 감정을 추스리고 있었다. 민지는 울음을 멈추고 난 후 벌개진 눈을 하고 시선을 허공에 둔 채 한 손으로 쥐기도 힘든 음료캔 하나를 어색하게 쥐고 어느 병실 침대 끄트머리 보호자 의자에 앉은 모습이었다. 그와 반대로 병실 침대에 길게 누워있는 사람은 그녀의 엄마다. 민지의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듯 침대에 누워 한 손에는 종이신문을 쥐고 읽고 있다. 나머지 팔 하나는 머리 뒤를 받혔다. 출산 뒤라기엔 해사한 얼굴, 젊은 시절의 민지의 엄마였다. 나인은 민지가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면 전쟁 같은 출산 뒤 풍경일거라고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었다. 뱃속에 자신보다 여섯해나 늦은 동생이 있었던 것을 알면서도 홀쭉해진 배를 하고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자 민지는 엄마가 곧 죽을 것처럼 눈물을 쏟아냈다고 했다. 알맹이가 씹히는 달달한 봉봉 하나면 누구라도 쫓아갈 정도로 좋아했다던 그 마성의 음료를 아빠에게 건네받고 울음을 멈췄는데 그렇다고 그것을 맛있게 마시지도 못하고 그저 엄마 발 아래 침대 끄트머리에 어색하게 앉아있는 거라고 민지는 정성스럽게 설명했다. 그 날 민지는 유독 신나 보였고 이 날의 기억 때문에 나인은 더욱 힘들어진 것도 같았다. 민지는 아빠로부터 자초지종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봉봉을 받아들고 나서야 엄마가 죽지 않을거라는 걸 안 거 같다고도 했다. 갖고 있는 것 중 울고 있는 유일한 사진이며 그 이유 때문에 이 사진을 좋아한다고도 했다. 그 말까지 듣고서야 나인은 사진첩을 넘길 수 있었는데, 우는 사진이라 좋다니 무슨 심보냐는 한마디를 하면서였다.
“배은망덕한 년”
나인은 봉봉 음료 아래칸에 있는 오렌지맛 탄산음료 하나를 집어들었다. 평소에 잘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 탁월한 선택 같지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주류코너 앞에서는 조금 더 망설였다. 가지런히 도열된 맥주캔들을 들여다보며 나인은 결연해졌다. 이제 자신만 내 자리로 돌아가 앉으면 되었다. 랄라와 나눠 마시던 스텔라 캔맥주 하나를 꺼냈고 뒤에 있는 것들이 차례로 도로록 내려와 빈자리를 채웠다. 돌아서면 보이는 안주코너에서 능숙하게 멸치와 땅콩이 섞인 스낵도 하나 집어들었다. 계산대 앞에서는 자일리톨껌 하나를 골라 쇼핑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쇼핑바구니를 올려두고 잠시 망설였지만 더 필요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렵지 않아. 나인은 계산대에 서서 중얼거렸다. 바코드를 찍던 점원이 눈을 치켜뜨고 손님의 얼굴을 살폈다. 손님은 언제나처럼 점원의 시선을 피한 채 서있다.
커버사진: Unsplash의Emily Morter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